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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실패한 지하의 이념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리뷰

by 유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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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었다.


자기만의 세계인 '지하'에 사는 한 남자가 세상에 대한 경멸과 증오의 독백들을 늘어놓은 얘기이다. 이 소설에서 지하는 ‘관념’이고 지상은 ‘현실의 삶’이다. 책을 통해 학습한 ‘아름답고 숭고한 것’에 대한 이념을 가진 지하인은, 지하 세계에서는 낭만주의와 이상주의에 고양된 인물이다. 그는 지하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자연법칙이나 수학공식과는 다른 변덕스러운 욕망과 자유로운 의지를 찬미한다. '2×2=4'가 아니라 ‘2×2=5’도 “이따끔씩은 정말 귀여운 녀석이 아닌가”라며.


“나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실상 여러분이 감히 절반도 밀고 나가지 못한 것을 내 삶에서 극단까지 밀고 나갔을 뿐인데, 여러분은 자신의 비겁함을 분별이라 생각하고 이로써 스스로를 기만하면서까지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여러분보다는 훨씬 더 ‘생기로운’ 셈이다.”


하지만 지하인은 지하에서만 존재하는 영웅이다. 지하인의 자폐적인 의식, 세상에 대한 허무주의적 냉소는 현실에서 실패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지하에서 만들어진 이념을 지상의 현실에 적용하려던 시도들은 모두 실패한다. ‘살아있는 삶’과 유리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하인은 “더 이상 ‘지하에서’ 이렇게 쓰고 싶지 않다”며 이렇게 말한다.


“사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령 내가 지하의 구석방에서 정신적인 부패에 시달리고 환경의 결핍을 맛보며 살아 있는 것으로부터 유리되어 허영심 가득한 분노나 키우고 그럼으로써 정작 삶을 놓쳐 버린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것은 맹세코 재미없는 일이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에는 이처럼 지하에서 만들어진 자신의 이념을 갖고 지상에서 광기적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 인물들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다. 1인 독백으로 구성된, 그리 쉽게 읽혀지는 소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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