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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Jan 12. 2017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사랑의 관계가 끊어진 순결한 슬픔

1977년 10월 25일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부터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를 그리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죽음을 기호로 한 메모와 글들을 모은 책이 <애도일기>이다.  

   


바르트에게 어머니의 상실은 사랑의 관계가 끊어진데 따른 슬픔이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1977. 11. 5.)      


“내 슬픔은 삶을 새로 꾸미지 못해 생기는 게 아니다. 내 슬픔은 사랑의 끈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1977. 11. 6.)     


프로이트에게서 애도는 다른 사랑의 대상을 찾았고, 우울증은 사랑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바르트에게 어머니의 상실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패인 고랑’이다. 즉, 어머니의 부재(不在)에 따른 해결할 수 없는 슬픔이다.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롭게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 (1977. 11. 9.)    

  

“외로움= 대화를 나눌 사람이 집에 없다는 것. 몇 시쯤에 돌아오겠노라고, 또는 (전화로) 지금 집에 와 있어요, 라고 말할 사람이 더는 없다는 것.” (1977. 11. 11.)     


“이 당혹스러운 부재의 추상성. 그런데도 그 추상성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비로소 추상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추상은 부재이면서 고통이다, 그러니까 부재의 고통. 그런데 어쩌면 이건 사랑이 아닐까?” (1977. 11. 10.)     


그의 슬픔은 어머니를 잃고도 잘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물음을 던질 정도로 순결하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1977. 11. 28.)      


“한편으로는 별 어려움 없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이런저런 일에 관여를 하고, 그런 내 모습을 관찰하면서 전처럼 살아가는 나. 다른 한편으로는 갑자기 아프게 찌르고 들어오는 슬픔. 이 둘 사이의 고통스러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아서 더 고통스러운) 파열 속에 나는 늘 머물고 있다. (1977. 11. 21.)      


"나는 그녀와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동시에) 죽지 못했다."(1979. 5. 1.)     


바르트의 슬픔은 남들과 같지 않고 고유하다. 그래서 사회가 코드화한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1978. 7. 18)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8. 6. 24.)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누구나 죽게 되어 있는 것, 어머니를 상실했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슬픈 일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바르트의 절대적인 사랑, 그리고 순결한 슬픔에 대한 감정이입이 됨을 느꼈다. 그래서 바르트의 이 말을 기억하면서 책을 덮었다.   

  

“애도 작업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속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도덕적 존재, 아주 귀중해진 주체이다.” (1977.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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