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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의 <대리사회>

대리기사가 된 대학 시간강사의 '사유하는 고발'

by 유창선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낸 적 있던 저자 김민섭은 지방대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괴물이 되어버린 대학사회’를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떠난다. 그가 글을 쓰면서 먹고살기 위해 택한 일은 대리기사. 이 책은 저자가 대리기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소재로 ‘대리사회의 괴물’을 고발하고 있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은 것은 그것이 분노하는 고발이 아니라, 사유하는 고발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사유하고 세상을 사유하는 저자의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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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잠시 말이 없다가 내가 이번 달에 받은 생활비가 이거였구나, 하고 말했다. 집에 들어가서 맥주 한잔을 하면서 그날 번 돈을 모두 주었다. 차비가 너무 비싼 게 아니냐고 하자 아내는 웃었다. 그날 이후 아내에게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아이의 장난감을 사왔기에 저건 얼마야, 하고 묻자 “응 저건 대리를 두 번 뛰면 살 수 있어”라고 했다. 모든 물건을 살 때마다 1대리, 2대리, 하고 화폐의 단위처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 정말 사야 할 물건만 사게 된다고 해서, 나는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를 고민했다. 하긴, 그러면 무엇도 쉽게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책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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