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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Jan 21. 2017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애도법

다니엘과 이별하는 케이티의 애도법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는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숨져간 다니엘 블레이크에 대한 슬프고 아픈 얘기이다. 노년의 목수 다니엘은 심장 건강 이상으로 일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진단으로 일을 놓는다. 그래서 질병수당 신청을 했지만 탈락하고 만다. 납득할 수 없다는 다니엘의 항의는 사람의 눈빛없이 기계적으로 일하는 공무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신 구직수당 신청을 하지만 구직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이 되어 다니엘의 삶은 위기에 봉착한다. 

복지행정을 맡은 관료들은 다니엘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문서와 규정으로만 말할 뿐이다. 항고를 한 다니엘은 그의 이웃이 되었던 싱글맘 케이티의 인도로 사무소에 찾아갔지만, 그곳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숨지고 만다. 그를 죽인 것은 심장병이 아니라 영국의 관료적인 복지시스템이었다.


다니엘의 외로운 장례식에서 케이티는 이렇게 말한다.


“오전 9시는 가난뱅이 장례식이라 부른대요.

그 때가 장례비가 가장 싸니까요.”


그리고는 추도사를 대신해서 다니엘이 남긴 쪽지를 읽는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살았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니엘이 그 사무소를 찾아가면서 준비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게이티는 다니엘을 이렇게 애도한다.


“우리에게 다니엘은 부자였어요

그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을 줬죠.”

다니엘이 케이티에게 주었던 것은 사랑과 연대였다. 역시 삶의 사각지대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살아야했던 케이티 가족을 아무런 조건없이 돌봐준 다니엘이었다. 그런 버팀목을 잃은 케이티의 애도법은 다니엘을 이렇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을 준 부자’로 귀환시키는 것이었다. 다니엘과 그렇게 이별해야 케이티도 치유가 되고 아이들과 함께 삶을 견뎌낼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사회가 케이티를 살도록 내버려둘 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가난한 자들 끼리의 애도는 과연 살아남은 자의 치유와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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