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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Jan 29. 2017

다비드가 그린
마리앙투아네트의 마지막

츠바이크의 소설에 나오는 '비열한' 루이 다비드

루이 다비드의 작품은 그 웅장한 스케일에서 보는 사람을 빨아들인다.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에서는 옳은 삶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전해주었고, <마라의 죽음>에서는 혁명가의 죽음에 대한 애절한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그는 프랑스 대혁명기의 ‘혁명화가’로서 앞의 <마라의 죽음> 이외에도 <테니스 코트의 서약>(1791),1<루이16세의 죽음, 1793년 1월 21일> (1793) 등 많은 작품을 그렸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의 혁명동지였던 다비드는 테르미도르의 반동 이후 새로운 독재자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다하는 작품들을 그린다.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1800),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1806) 등에서 그려진 나폴레옹의 모습은 부풀려진 영웅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 그림은 호송마차에 실려 기요틴으로 가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거리 골목에서 기다리던 다비드가 그린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에 보면 이 때 다비드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츠바이크의 작품은 소설이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쓰여진 작품이다. 철없던 소녀가 왕비가 되어 단두대로 가기까지 있었던 내면의 성숙을 그린, 인간 마리 앙투아네트를 다룬 작품이다. 흥미로운 많은 얘기들이 나온다.) 츠바이크는 다비드를 “그가 바로 가장 비열한 인물이며, 또한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나중에 역시 기요틴으로 가는 호송마차를 탔던 당통은 다비드를 향해 “못된 종놈 근성 같으니”라고 경멸의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단숨에 그렸을 이 스케치도 사실 대단하다. 죄수 호송마차를 타고 손이 뒤로 묶인 굴욕 속에서도 꼿꼿한 자세와 표정으로 품위를 지켰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이 잘 그려졌다. 하지만 이 대단한 화가는 시류에 맞추어 권력에 그림을 바쳤던 존재였다. 어떤 다비드를 먼저 말해야 할까....


사실 이 책을 손에 잡았던 것은 박근혜가 감옥에 가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순간을 자세히 알고 싶어서였는데, 좀 엉뚱하게 다비드 얘기를 올리게 되었다. 사실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내 생각이 아직 정돈되지 못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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