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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Feb 13. 2017

케테 콜비츠, 자식을 잃은 아픔

민중 작가에서 반전  작가가 된 콜비츠

독일의 판화가이자 조각가였던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1867~1945)는 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민중들의 가슴 아픈 삶의 조건을 애틋하고도 슬프게 표현해낸 프롤레타리아트 화가였다. 그런데 1914년 10월 22일, 전쟁에 나갔던 아들 페터가 전사한다. 그 이후 콜비츠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깊고 끝없는 슬픔을 일기로 남긴다.


“언제나 똑같은 꿈을 꾼다. 그 애가 아직 곁에 있는 꿈, 그 애가 살아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는 꿈. 그러다가 꿈 속에서도 그 애가 죽었다는 걸 깨닫고 만다. 씨앗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 (1915년 2월 6일)


몇 년의 시간 동안 그녀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고통스러워 한다.  


“나는 그 애를 도울 수 없고 아무 것도 줄 수 없다. 모든 게 변했다. 나는 더 불쌍해졌다. 어머니로서의 삶은 이제 다 끝났다. 가끔 나는 그 시절이 미치도록 그립다. 그 애들과 전처럼 춤을 추는 건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다. 봄이 와서 페터가 꽃을 가져오면, 우리는 함께 봄날을 만끽하며 춤추곤 했었는데.....” (1916년 1월 17일)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일을 가지고 있다. 일이 나를 그 아이와 연결시켜 준다”며 일 속에서 아들을 만난다.


“사랑하는 페터, 너의 스물세 번째 생일이야. 오늘은 아주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처음으로 다시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를 작업하고 있다. 며칠 전부터 내 마음에 감동을 준 게 있었다. 어제는 전쟁 연작을 석판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페터의 생일인 오늘 나는 그걸 해냈다. 나는 두 아이를 감싸고 있는 어머니를 그렸다. 바로 내가 낳은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나의 한스와 나의 어린 페터를. 그리고 좋은 작품이 나왔다. 고맙게도!” (1919년 2월 6일)


‘어머니에 대한 애도의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삶의 주체로 다시 태어나려 했던 롤랑 바르트를 떠올리게 한다. 그 이후 콜비츠는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판화에 담아나간다.


사진으로 올린 첫 번째 작품은 두 아들을 안고 있는 자신을 그린 <어머니들> 1919, 두 번째 작품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담은 〈비통한 부모〉 1932, 세 번 째 작품은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피에타> 1937이다. 모두 전쟁으로 죽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담아내고 있다.


케테 콜비츠 <어머니들> 1919
케테 콜비츠 〈비통한 부모〉 1932


게테 콜비츠 <피에타>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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