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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Mar 24. 2017

박완서의 자식 잃은 슬픔,
그리고 세월호

참척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들

소설가 박완서는 전쟁 때 오빠를 잃었고, 남편을 폐암으로,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그래서 그의 여러 작품들에는 가족을 잃은 아픔들이 담겨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서는 시위를 하다가 쇠파이프에 맞아 죽은 아들 창환이를 그리는 화자(話者)가 형님에게 절규하는 말들이 이어진다.


“아무렇지도 않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으시죠.”


“생때같은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서 소멸했어요. 그 바람에 전 졸지에 장한 어머니가 됐구요. 그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될 수가 있답니까. 어찌 그리 독한 세상이 다 있을까요, 네, 형님? 그나저나 그 독한 세상을 우리가 다 살아내기나 한 걸까요?”

열사가 된 창환이의 얘기는 작가 자신의 아들인 원태의 죽음에 관한 참척의 일기 <한 말씀만 하소서>로 이어진다.



“원태야,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나는 아들을 잃었다. 그 애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아듣는 걸 견딜 수가 없다. 그 애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증거는 이제 순전히 살아 있는 자들의 기억밖에 없다. 만약 내 수만 수억의 기억의 가닥 중 아들을 기억하는 가닥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련만. 그러나 곧 아들의 기억이 지워진 내 존재의 무의미성에 진저리를 친다. 자아(自我)란 곧 기억인 것을. 나는 아들을 잃고도 나는 잃고 싶지 않은 내 명료한 의식에 놀란다. 고통을 살아야 할 까닭으로 삼아서라도 질기게 살아가게 될 내 앞으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늙은인 싫지만 어쩔 수가 없다.”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 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내 아들의 죽음의 의미는 뭘까? 죽음 후에도 만남이 있을까? 그 애의 죽음은 과연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신이 있기나 있는 것일까? 인간의 기도나 선행과는 상관없이 인간으로 하여금 한치 앞도 못 내다보게 눈을 가려놓고 그 운명을 마음대로 희롱하는 신이라면 있으나마나가 아닐까?”


신을 그토록 원망하며 절망했던 작가는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다. 내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할 수 있다니, 부끄럽지만 구태여 숨기지는 않겠다”며 세상에 대한 사랑을 되찾고 고통을 풀어낸다. 이제는 고인이 된 박완서는 26살의 아들을 잃은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세월호 인양이 진행중이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라도 모두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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