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창선 May 25. 2017

나 또한 쇠철방 안에 갇혀있다

루쉰의 ‘철(鐵)의 방’이 의미하는 것

루쉰의 『외침』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철(鐵)의 방’ 얘기이다.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쇠철방 안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고통없이 죽게 내버려둘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더라도 깨어나서 죽음을 맞도록 할 것인지, 이는 윤리적이고 실존적인 선택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루쉰은 섣부른 계몽을 하지 않았다. 깨인 자신이 쇠철방 밖에서 무지하게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향해 계몽의 빛을 쏘여주기에는, 이미 루쉰 자신 조차도 쇠철방 안에 갇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깨어있는 자신도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루쉰의 이러한 자각은 「광인일기」에서 반복된다.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사천 년간 내내 사람을 먹어온 곳.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도 그 속에서 몇 년을 뒤섞여 살았다는 걸. 공교롭게도 형이 집안일을 관장할 때 누이동생이 죽었다. 저자가 음식에 섞어 몰래 우리에게 먹이지 않았노라 장담할 순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이동생의 살점 몇 점을 먹지 않았노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젠 내 차례인데.....
사천 년간 사람을 먹은 이력을 가진 나, 처음엔 몰랐지만 이젠 알겠다. 제대로 된 인간을 만나기 어려움을!

사람을 먹어 본 적 없는 아이가 혹 아직도 있을까?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


자기 또한 식인(食人)의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고백, 잠들어 있는 자들과 함께 함께 쇠철방에 갇혀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문성환은 루쉰의 대답을 이렇게 요약한다.


“새로운 시대의 창조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 낡은 시대를 끌어안고 남김없이 몰락해버려라.”


루쉰은 평생 경계인으로 살았지만, 그 점에서 가장 비타협인 작가였다.



작가의 이전글 박완서, '틈바구니의 숨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