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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Jun 19. 2017

백이-숙제의 전설을 해체한 루쉰

루쉰의 「고사리를 캔 이야기」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천도를 거스른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먹고살다 굶어 죽었다는 전설적 인물이다. 사마천은 두 사람의 얘기를 갖고 천도(天道)를 물었다. 


그런데 루쉰의 『고사신편(故事新編)』에 실린 「고사리를 캔 이야기」를 읽어보면 두 사람이 대단히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은 주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수양산에 들어갔지만, 산속에서 따먹을만 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고사리가 있었다. 그들은 날마다 고사리를 뜯었다. 조리법도 다양해졌다. 고사리탕, 고사리죽, 고사리장, 맑게 삶은 고사리, 고사리 싹탕, 풋고사리 말림..... 근처의 고사리는 바닥이 나고 만다. 의롭게 굶어 죽었다는 백이와 숙제의 모습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광경들이 그려져 있다.



재앙은 겹친다고, 찾아온 젊은 여자가 두 사람을 냉소한다.


“‘무릇 하늘 아래 임금의 땅이 아닌 곳이 없다’ 했으니, 당신들이 먹고 있는 고사리는 우리 성상 폐하의 것이 아니란 말인가요?”


그 얘기를 들은 백이와 숙제는 더 이상 고사리를 먹을 수가 없었고, 20일 뒤에 죽어있는 시체로 발견된다. 사람들이 모였고 , 백이와 숙제가 죽은 이유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그때 아금이라는 여자가 자신이 들은 얘기를 전한다. 하느님은 두 사람이 금방 굶어 죽게 생긴 것을 보시고는, 암사슴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젖을 먹이도록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슴 젖 마시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고, ‘이 사슴이 이렇게 포동포동하니 잡아먹으면 그만일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슴은 신통력이 있는 동물이란 것을 몰랐던 것이다. 사슴은 이미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게 다 그 놈들의 탐욕스러운 마음과 주둥이 때문”이라고 아금은 사람들 앞에서 백이와 숙제를 비웃는다.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끝에 가서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왠지 자기 어깨도 적잖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충절의 상징으로, 부끄럽게 사느니 굶어 죽는 것을 택한 것으로 전해지던 백이와 숙제를 기억하던 사람들에게는 ‘확 깨는’ 얘기이다.


루쉰은 백이와 숙제의 전설을 깨고 현실 속의 인물로 그리고 있다. 루쉰의 작품들은 권위에 대한 어떠한 숭배도 인정하지 않고 신화의 이면까지도 파헤친다. 그래서 그에게는 사방이 적이었다.


과거의 모든 인물에 대한 평가는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웅은 만들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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