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와 박완서, 애도를 통한 재탄생
프랑스에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와 <밝은 방>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박완서의 작품들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가족의 죽음과 뗄 수 없다.
박완서 보다 열 살 위였던 오빠는 6.25 전쟁 때 죽었다. 오빠는 좌익운동을 했지만 좌우 대결의 틈바구니에 끼어 마지막에 보위 군관의 총에 맞아 죽는다. 전쟁 속에서 목격했던 오빠의 죽음은 박완서에게 불치의 상처를 남겼고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어버렸다. 그 오빠를 잃었던 사연은 <엄마의 말뚝 2>에 나온다. 그 얘기는 "내 개인적인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무참히 토막 난 상처"라고 박완서는 말했다. 박완서는 후일 “나는 지금까지도 어느 쪽이 오빠를 죽였는지 확실히 말할 수가 없다”라고 했다.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린 작품이다. 가족들은 항암 치료를 받게 된 남편의 벗겨진 머리를 가려주기 위해 모자를 하나씩 사서 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모자는 여덟 개가 되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박완서는 “나는 요새도 가끔 그가 남긴 여덟 개의 모자를 꺼내 본다”고 말한다.
박완서에게 가장 아픈 죽음은 외아들 원태의 죽음이었다. 남편을 잃은 지 불과 세 달 만에 스물여섯 살 원태가 사고로 죽었다. 박완서는 그때 아들을 잃은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하느님을 원망했던 마음은 참척의 일기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이렇게 쓰여 있다.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건 가장 잔인한 최악의 벌이거늘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 이 어미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벌을 주는 데 이용하려고 그 아이를 그토록 준수하고 사랑 깊은 아이로 점지하셨더란 말인가. 하느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사랑 그 자체라는 하느님이 그것밖에 안 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아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완서는 가족을 잃었을 때마다의 아픔을 글쓰기를 통해 결국 이겨내며 새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이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무너져 내렸던 롤랑 바르트가 결국은 애도의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주체로 재탄생했던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