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창선 Oct 07. 2017

박완서, 애도의 글쓰기

롤랑 바르트와 박완서, 애도를 통한 재탄생

프랑스에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와 <밝은 방>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박완서의 작품들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가족의 죽음과 뗄 수 없다.


박완서 보다 열 살 위였던 오빠는 6.25 전쟁 때 죽었다. 오빠는 좌익운동을 했지만 좌우 대결의 틈바구니에 끼어 마지막에 보위 군관의 총에 맞아 죽는다. 전쟁 속에서 목격했던 오빠의 죽음은 박완서에게 불치의 상처를 남겼고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어버렸다. 그 오빠를 잃었던 사연은 <엄마의 말뚝 2>에 나온다. 그 얘기는 "내 개인적인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무참히 토막 난 상처"라고 박완서는 말했다. 박완서는 후일 “나는 지금까지도 어느 쪽이 오빠를 죽였는지 확실히 말할 수가 없다”라고 했다.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린 작품이다. 가족들은 항암 치료를 받게 된 남편의 벗겨진 머리를 가려주기 위해 모자를 하나씩 사서 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모자는 여덟 개가 되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박완서는 “나는 요새도 가끔 그가 남긴 여덟 개의 모자를 꺼내 본다”고 말한다.


박완서에게 가장 아픈 죽음은 외아들 원태의 죽음이었다. 남편을 잃은 지 불과 세 달 만에 스물여섯 살 원태가 사고로 죽었다. 박완서는 그때 아들을 잃은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하느님을 원망했던 마음은 참척의 일기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이렇게 쓰여 있다.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건 가장 잔인한 최악의 벌이거늘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 이 어미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벌을 주는 데 이용하려고 그 아이를 그토록 준수하고 사랑 깊은 아이로 점지하셨더란 말인가. 하느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사랑 그 자체라는 하느님이 그것밖에 안 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아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완서는 가족을 잃었을 때마다의 아픔을 글쓰기를 통해 결국 이겨내며 새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이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무너져 내렸던 롤랑 바르트가 결국은 애도의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주체로 재탄생했던 것과 같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