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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Oct 28. 2017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과 패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안장혁 옮김, 문학동네, 2010

“나는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


괴테가 말했듯이,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 소재로 하고 있다. 법관 시보로 일하던 괴테는 친구 케스트너의 약혼녀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고뇌한다. 그런데 당시 상관의 부인을 연모하던 친구 예루잘렘이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케스트너에게서 듣게 된다. 그런데 예루잘렘이 자살에 사용했던 권총을 케스트너가 빌려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괴테는 충격에 빠진다. 괴테의 이같이 고통스러웠던 경험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해 다시 새로운 얘기로 풀어진다.



다가갈 수 없는 사랑의 고통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알게 된 로테를 보고는 단번에 빠져든다.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다가가 친교를 맺고 그녀의 집에 다닐 정도로 가까워진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사무치게 사랑했다. 하지만 로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커질 즈음 그녀의 약혼자 알베르트가 돌아오면서 베르테르는 크게 낙담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자신이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로테를 사랑하는 베르테르의 고통은 시작된다.


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는 로테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찾아가지 않으려 애를 쓰곤 한다. 사랑의 격정을 이성으로 통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를 너무 자주 만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결심했는지 모른다네. 하지만 과연 그 결심을 무슨 수로 지킬지! 나는 매일 유혹에 굴복하고는 내일만큼은 집에 머물겠노라고 엄숙히 맹세하곤 하네. 그랬다가 그 내일이 되면 또다시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내고는 어느새 그녀 곁에 가 있는 걸세.”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존재를 보면서도 그 어떤 욕망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것이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규율 앞에서 자신이 준수해야 할 이성적 태도임을 모르지 않았던 셈이다. 격정은 이성이 구축한 도덕 질서 앞에서 일단 멈추어야 했다. 그럴수록 베르테르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떤 때는 “병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지금 내 심경이 더 괴롭다”라고 빌헬름에게 하소연하기도 했고, “나는 이를 악물고 처참한 내 몰골을 비웃고 있네”라고 자괴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로테를 사랑함으로써 얻었던 자기 숭배의 행복감은 잠시, 베르테르는 이제 스스로를 “이 불행한 인간!”이라고 자조하면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녀를 위한 기도뿐”이라고 절망적인 푸념을 한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은 애절하기만 하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정작 다른 남자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가끔 이해할 수 없다네. 나는 오직 그녀만을 마음속 깊이 흠모하고, 그녀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말일세!”


알베르트가 아닌 자신과 결혼했다면 로테가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베르테르는 끝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서 베르테르는 로테가 자신의 아내이기를 끝까지 간절히 상상했었다.


“그녀가 내 아내라면! 태양 아래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를 품에 안을 수 있을 생각을 하면, 빌헬름, 내 온몸에 전율을 느끼네.” 


이 사랑을 무엇으로 주저앉힐 수 있단 말인가.



신분과 이성의 질서에 맞선 베르테르


그러나 사랑의 고뇌가 작품의 주된 줄거리라 해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단순한 애정소설로 생각하면 오독이다. 베르테르는 18세기 유럽사회의 신분질서에 염증을 느끼고, 개인의 개성 확장을 억압하는 이성중심주의 사회로부터 자유를 갈구했던 젊은 세대의 표상이었다. 유럽의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에게 그토록 공감하며 열광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이 작품은 당시 유럽 전역에서 출판되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나폴레옹도 원정 갈 때 이 책을 소지하여 몇 번씩 읽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권총으로 자살한 것을 모방하며 당시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모방 자살이 잇따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젊은이들은 베르테르가 소설 속에서 입었던 푸른 연미복과 노란 조끼를 따라 입고서 베르테르의 고뇌에 공감했고 열광하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이 18세기 유럽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던 것일까. 18세기 유럽 사회 속에서 베르테르가 짊어져야 했던 불만과 고뇌, 그리고 절망을 이해할 때만이 베르테르 효과의 배경을 알 수 있다. 


베르테르는 작품 속에서 신분사회의 허위에 대한 불만과 경멸의 얘기들을 곳곳에서 꺼내 놓는다.


“우리네 인간은 동등하지도 않거니와 그렇게 될 수도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알량한 존경심을 얻으려고 천하고 가난한 사람과 상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패배가 두려워 적을 보고 숨어버리는 겁쟁이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베르테르는 타고난 신분에 따라 차별하고 차별받는 사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귀족들을 경멸했다. 실제로 베르테르는 자신이 사교모임에서 배척당한 일을 토로한다. 하급 공무원이었던 베르테르는 어느 백작의 집에서 열린 상류층 신사숙녀들 사교모임 자리에 우연히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백작이 다가와 조용히 얘기를 한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당신이 여기에 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합니다.” 그 얘기를 들은 베르테르는 정말로 죄송하다며, 먼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자신의 불찰이라고 사과한다. 그리고는 모임 자리에서 빠져나간다. 그는 선량한 사람들이 신분 때문에 차별받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 대해 분개했고,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추한 모습을 비판했다.


“서로 눈치가 보는 뻔뻔한 인간들의 허울 좋은 비루함과 그 지리멸렬함이라니! 남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인간들의 출세욕, 비참하고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그 병적인 집착.” 


베르테르는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시민들의 운명적인 신분 관계”라며 18세기 신분질서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타고난 신분이 운명을 가르고 상류층 사람들은 욕망을 놓지 않는 신분사회 속에서도 베르테르는 속박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원했다. 정부부처로 가서 공사(公使)와 함께 일해 보라는 빌헬름의 권유에 대해 베르테르는 난색을 표한다. 그 공사는 비위 맞추기가 어려운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은 누구에게 종속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제 열정이나 욕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남이 시키는 대로 돈이나 명예나 그 밖의 무엇인가를 움켜쥐려고 뼈 빠지게 일하는 자들은 언제나 바보 소리를 듣는 거지.”

베르테르의 눈에는 그런 일들이 하잘 것 없이 여겨졌던 것이다. 자신의 열정에 맞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베르테르의 꿈이었다. 단지 돈과 명예를 위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는 삶을 원하지 않았다.


베르테르는 “자신 스스로를 확장시키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정처 없이 배회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생각했고, 마침내 “나는 그저 나그네에 불과해. 세상을 떠도는 순례자에 지나지 않지. 그런데 자네들은 그 이상의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질문을 빌헬름에게, 아니 세상 사람들에게 던진다. 그는 신분사회의 질서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떠다니는 나그네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현실은 그를 가둬두는 불편한 굴레였던 것이다.



베르테르에게 자살은 무엇이었을까


마침내 로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베르테르와 일정한 거리를 두기로 결심한다. 그동안은 거리를 두는 것이 베르테르에게 얼마나 힘들지를 배려해서 주저해왔지만, 이제는 남편을 생각해서 신중하게 처신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로테는 베르테르에게 말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도저히 안 돼요.” 


그녀의 생각을 돌려보려고 이런저런 말을 하던 베르테르는 결국 포기하고 다시는 만나러 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로테는 그저 조금만 자제해달라는 뜻이라며 베르테르를 달래고, 어울리는 다른 여성을 찾아서 돌아오라고 당부한다. 그렇게 해서 진정한 ‘우정의 행복’을 나누자고.


하지만 그런 ‘우정의 행복’은 베르테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온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쓰다가 다시 로테를 찾아간다. 약속을 어겼다는 지적을 한 로테를 베르테르는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는다. 마침내 로테는 이별 통첩을 한다. 로테에게 애원을 하다고 돌아선 베르테르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편지를 이렇게 맺는다.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그래요, 로테,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시는 앞에서 당신을 껴안고 언제까지나 당신 곁에 머물겠습니다.”


베르테르는 하인으로 하여금 알베르트에게 가서 여행에 필요하니 총을 빌려오도록 하고, 알베르트는 총을 내준다. 로테는 베르테르가 그 총으로 자살할 것이라는 예감을 하고 있었기에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하인이 빌려온 총으로 베르테르를 목숨을 끊었고, 시체는 이튿날 아침 하인에 의해 발견된다. 


괴테는 “알베르트가 경악했다거나 로테가 비통해했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는 말을 통해 그들 부부 또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음을 전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났다. 


“늙은 행정관과 그의 아들들이 시신을 따라갔지만 알베르트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로테의 생명이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일꾼들이 운구를 맡았으며 성직자는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성직자들이 베르테르의 죽음을 이같이 외면했던 것은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이었다. 베르테르의 자살은 약혼자가 있는 여성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당시의 도덕 질서를 인정하고 자신이 물러남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질서에 대한 복종이다. 하지만 죽음의 선택은 그 같은 도덕 질서에 대한 불복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이별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아가지 않고 끝내 자살을 선택한 것은 사랑을 인정하지 않고 억압하는 도덕 질서에 대한 항의의 행동이기도 하다. 


성직자들은 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애도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 반항아의 죽음은 유럽 젊은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베르테르의 효과’를 낳게 된다. 죽음에 이르는 베르테르의 모습은 작가 괴테의 모습이자, 유럽 젊은이들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이다. 감정에 충실해서 정열적으로 살고자 하지만 그것을 누르는 사회질서 앞에서 고뇌하게 되는 삶, 사랑에 빠질수록 파멸 해갈 수밖에 없던 경건한 사회 속에서의 삶, 베르테르의 죽음이라는 비극은 개인이 아닌 그 시대의 비극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자신의 고뇌를 자살로 해결하려 했던 베르테르의 방식이 과연 온당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사회의 억압적 규율에 대한 항의라는 면에서 자살은 오히려 소극적인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 같은 규율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워지고자 했다면 그러한 질서에 맞서는 더 적극적인 행위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살을 통해서는 절망에 빠진 자신에 대한 구원을 이루기도 불가능하다. 단지 고통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한 선택에 그칠 뿐이다. 자살을 택한 배경에 대한 많은 공감에도 불구하고 베르테르의 죽음이 끝까지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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