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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Oct 29. 2017

야망과 사랑이 낳은 파멸의 죽음

스탕달 , 『적과 흑』,  이규식 옮김, 문학동네

스탕달의 『적과 흑』 1, 2권을 며칠 동안 틈틈이 다 읽었다. 스탕달의 너무도 뛰어난 심리묘사에 매료되어 마지막에는 4시간 동안 엉덩이를 한 번도 떼지 못한 채 읽기를 마쳤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열정적이었던 쥘리앵 소렐의 야망과 사랑, 그리고 파멸의 죽음을 그린 작품이다. 중심 줄거리는 출세하기 위해 사제가 되려는 꿈을 가진 쥘리앵과 두 여인의 사랑 얘기이지만, 단순한 애정 소설은 아니다. 쥘리앵에게는 귀족 집안의 레날 부인, 그리고 마틸드와의 사랑은 신분 상승을 위한 욕망과 맞물려 있다.


신분을 넘어 마틸드와의 결혼을 앞둔 쥘리앵은 이별했던 레날 부인이 마틸드의 아버지인 후작에게 보낸 편지 때문에 곤경에 처한다. 격분한 쥘리앵은 레날 부인을 찾아가 총을 쐈다가 결국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야 쥘리앵은 자신이 가졌던 욕망에 대해 토로한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멸시한다면 내게 무엇이 남겠습니까? 나는 한때 야심에 차 있었지만 그 점에 대해 자책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의 욕망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욕망이었던 것이다. 쥘리앵은 출세의 욕망을 가졌지만 귀족사회의 모습을 지켜보며 누구보다 혐오했던 인물이었다. 


“나는 진실을 사랑했다 …… 그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 도처에 위선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협잡뿐. 가장 덕망 높은 사람들에게도, 가장 위대한 인물들에게도, 그리하여 그의 입술에 역겨움의 표정이 떠올랐다 …… 그렇다, 인간은 인간을 믿을 수 없다.”


쥘리앵은 단지 욕망에 눈먼 천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강한 자존심을 가진 인물이다. 귀족들을 보며 야망을 불태우면서도, 여인과 사랑을 하면서도 자존심을 건 줄타기를 한다. 사랑과 야망, 자존심이 뒤섞인 사랑의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결혼을 하려다가 쥘리앵을 잃은 마틸드는 시신이 있는 곳을 찾아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쥘리앵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레날 부인은 그가 죽은 지 사흘 후, 자기 아이들을 껴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존경받는 사람들이란 다행히도 현행범으로 붙잡히지 않은 사기꾼 들일뿐이다. 사회가 내 뒤를 쫓으러 보낸 고발자도 수치스러운 짓으로 부자가 되었을 뿐이다 …… 나는 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사형이다. 하지만 그 행위만 제외하면 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바르니 같은 인간은 나보다 백배는 더 사회에 유해한 인간이다.”


사형을 앞둔 쥘리앵이 남긴 말이다. 그는 신분상승의 야망을 가졌지만, 결국 그 사회에 대한 혐오를 토하며 죽었다. 우리는 어떠한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을 읽으려다가 첫 부분부터 『적과 흑』을 읽지 않으면 안 되길래 이리로 빠졌다. 이제 다시 지라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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