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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Sep 12. 2019

죽음의 문턱에서 책을 썼습니다

병상에서 글을 쓰며 두번째 삶을 다짐했습니다

저는 방송에서는 시사평론가로, 책과 강연에서는 인문학 작가로 활동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뇌종양 진단을 받고는 갑자기 뇌종양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종양이 무척 위험한 곳에 있었던 탓에 수술 이후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겼습니다. 후유증이 심해 6개월 넘게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아직도 받고 있다. 한동안 앉기만 해도 실신할 정도로 심각한 장애와 후유증을 앓았습니다. 앉지도 못할 때는 누워서 휴대폰 앱에, 앉을 수 있게 된 후에는 침대 밥상에 노트북을 펴놓고 한 글자 한 글자 글을 썼습니다. 그래 가지고 한 권의 책을 냈습니다. 


몸도 성하지 않은 사람이 왜 힘들게 병상에서까지 글을 썼냐구요? 저는 육체가 힘들수록 글쓰기가 더 간절했습니다. 장소가 어디든,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오랫동안 병실에 있으면서 저에게는 고통을 이겨낼 강한 의지 혹은 앞으로의 삶을 위한 다짐이 필요했고, 글쓰기는 바로 그러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마다 힘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다를 겁니다. 병상에서는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치료에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인 사람이 많겠지만, 저는 글을 씀으로써 힘을 만들어낸다고 믿었습니다.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했고, 앞날에 대한 계획이 빼곡했던 저에게 갑자기 찾아온 병마는 저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나는 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하는가? 그동안 무엇 때문에 나의 본성을 억압한 채 살아왔던가?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가? 힘겹게 얻은 두 번째 삶, 어떻게 살 것인가? 작가 생텍쥐페리는 『인간의 대지』에서 “인간은 장애와 맞서 싸울 때 스스로를 발견한다”고 말했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의 책에 이런 마음을 담았습니다.


“아직 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소소한 행복에 대한 꿈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신체가 달라졌어도, 그래서 내가 처한 조건과 환경이 달라졌어도, 정작 나의 내면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니 나만의 행복 만들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병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지금 내가 지키고 있는 나만의 행복이다. 고통 속에서도 행복은 이렇게 지켜지고 있다. 불 꺼진 병실에서도.” (유창선,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에서 비행기 조종사 기요메는 눈덮인 안데스 산맥에서  불시착하여 처절한 사투를 벌이다가 구조됩니다. 생텍쥐페리는 그가 자신에게 한 얘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다고 믿는다면, 아내는 내가 걷고 있으리라 생각하겠지. 동료들도 내가 걷고 있으리라 믿을 거야. 그들 모두 날 믿고 있어. 만일 내가 걷지 않는다면, 난 개 같은 놈이 되는 거야.”


기요메는 절망 속에서 삶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악착같이 걸었습니다. 그것은 타인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 위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낸 위대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저도 뇌종양 수술을 받으며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내 몸을 망가뜨린 후유증들을 견뎌내며 다시 일어서고자 했습니다. 내가 살아남고 다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들을 사랑했기에, 저는 평온한 마음으로 병마를 견뎌냈고 긴 재활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생텍쥐페리와 동료들이 그랬듯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사랑으로부터 나왔습니다. 토마스 만이 『마의 산』에서 “이성이 아니라, 사랑만이 죽음보다 강한 것”이라고 했던 이유도, 인간이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을 때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아픔과 고통의 터널 속에서 삶의 가치를 깨달았고 이제 터널 밖으로 나와 두번째 삶을 꿈꾸고 있다. 앞으로의 삶은 나에게 무척 소중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얻은 두번 째 삶, 이전처럼 세상의 기준에 맞춰 혹은 대의명분에 눌려 본성을 억압한 채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은 저는, 남은 삶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원하는 삶, 페르소나를 벗고 내 얼굴 그대로의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큰 삶이 아니라 작은 삶, 무거운 삶이 아니라 가볍고 소소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인간은 느닷없이 닥쳐오는 시련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 시련은 많은 것들을 빼앗아 갑니다. 하지만 시련 속에서 잃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련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는 얻는 것 또한 많은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불행을 이겨내는 것도, 행복을 만들어내는 것도 내 영혼에 달려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처절하고 힘들었던, 하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아름다웠던 이 시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고통은 분명 괴롭고 힘든 것이지만, 고통 위에서 피어나는 꽃은 아름답습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끈질깁니다.


제가 병상에서 쓴 책이 막 제 손에 쥐어졌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아픈 분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책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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