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끼는 하루, 그래도 괜찮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단절된 이들만이 산속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까.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자니,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흘러나온다.
남편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오늘도 진행자는 지리산 자락 어딘가에서 한 자연인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이 싫어 산속을 택했다던 주인공은, 막상 사람이 찾아오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한다. 세상살이에 상처만 남아 조용히 살고 싶었다던 그가 말한다.
“취재진이 와서 북적이니까 이제야 좀 사람 사는 것 같아요.
이게 행복 아닙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이 났다.
고독을 찾아간 이도 결국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몇 해 전, 남편의 나이가 쉰이 되었을 때다.
그는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생전 해보지도 않은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
그 길로 연고도 없는 땅을 덜컥 사버렸다.
처음엔 들뜬 기분이었다.
사과나무를 심고, 마을 사람과 어울리며 조용한 시골의 삶을 꿈꾸던 남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형제들은 그곳에서 휴가를 보내겠다며 벌써 계획을 세웠고,
시부모님은 “그 나이에 주말농장도 가꾸고 여유 있게 살 만하지” 하며 흐뭇해하셨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사과 농사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이건 취미가 아니라 노동이야.”
그의 형제들과 시부모님은 “그 귀찮은 일을 왜 했냐”며 핀잔을 주었다.
사람을 불러 돈 들여 사들인 나무는 하나둘 베어졌고, 텃밭은 금세 잡초로 뒤덮였다.
결국 그는 말했다.
“병원 가까운 곳, 교통 편한 곳이 최고야.
시골은 나랑 안 맞아.”
그렇게 그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자연인이 되어 누릴 것이라 믿었던 고요와 자유는
금세 외로움과 소외감으로 바뀌었다.
아침마다 자신을 깨우던 새소리는
“그 어떤 연주보다 훌륭하다”라고 감탄하던 그가
이제는 “시끄러워 죽겠다”라고 투덜대는 소리로 바뀌었다.
남편을 보면서
사람은 결국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고독 속에서도 작은 온기를 갈망한다는 것을.
그 자연인이 “이제 사람 사는 것 같다”라고 말하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가끔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열등감이나 상처 때문에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때가 있다.
현실을 벗어나 나만의 세상으로 떠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불편했던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고, 늘 보이던 불빛이 더 이상 지루하지 않으며,
친구의 다정한 메시지가 마음을 데워줄 때,
나는 안다.
아직은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삶이,
그래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