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물이 된 날

by 유담

케이크를 샀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지금, 잠깐 들를게요.”


크리스마스이브, 아이들과 함께 시댁에 깜짝 방문을 했다.


“어머니, 제가 선물이에요.”


입바른 소리를 건네며 아버지의 수술 안부를 묻는다. 충혈되었던 눈이 얼마나 가라앉았는지도 살핀다. 며느리의 관심이 싫지 않으신 건지, 안경을 벗고는 이제 괜찮다며—마치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사람처럼—차분히 눈을 보여주신다.


어머니의 이사는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짐을 싸는 일도, 집을 계약하는 일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처럼 쉬워 보였다. 그만큼 잦은 이사였고, 그 속도에 놀라는 감정도 어느새 무뎌졌다.


그런 반복 끝에, 어머니는 며느리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은 전화기 너머로 먼저 물어왔다. “바쁠 텐데, 굳이 안 와도 된다.” 예전 같으면 한 번도 듣지 못했을 말이었다. 그 순간, 시댁 방문은 더 이상 당연한 의무가 아니게 되었다. 가야 해서 가는 일이 아니라, 갈 수 있어서 가는 일—내가 선택해야 가능한 일이 되었다.


처음 이사를 결정했을 때, 나 외의 관련자들은 매일같이 내 마음의 단두대에 올랐다. 그들을 내 생각 속에서 처단할지, 수용할지를 수없이 반복하며 나는 남편에게 선언했다. 이제는, 나는 안 하고 싶다고.


나는 불안했다. 또다시 마음이 약해져 모든 걸 들어주고, 그러고는 후회하고, 나의 일정을 시댁에 맞추며 ‘좋은 며느리’를 연기하다가 집에 돌아와 다시 투정을 부리는 생활이. 그 반복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세운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지키려고 했다. 남편은 나의 기준을 존중해 주었다. 주말마다의 문안에 응하지 않아도 비난하지 않았고, 이유를 캐묻지도 않았다. 나도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관계는 나빠지지 않았다. 예전처럼, 그러지 않는 이유를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 달 만에, 자의로 선택해 방문한 시댁에서의 담소는 서로에게 예상보다 큰 편안함을 주었다. 억지로 맞춘 일정도, 역할에 대한 긴장도 없었다. 그날만큼은 모두가 제자리에 있었다.


정말로—내가 선물이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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