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이 존재하는 이름
그녀의 엄마는 삼혼을 했다.
모두 아들을 낳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끝내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고,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다른 두 명의 여동생만 생겼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 징병을 피해 만주로 떠났다고 했다.
그 후로 소식은 끊겼다.
그가 정말 독립운동을 했는지, 어디서 살았는지, 언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기록은 없었고, 남은 건 이름뿐이었다.
언제 올지 기약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건 그녀의 엄마의 삶에선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나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 말하길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자라면서 그 말은 점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이야기로 바뀌어갔다. 엄마는 그녀를 낳고 핏덩어리인 그녀를 약방을 하던 할아버지 집에 맡기고 떠났다.
그렇게 그녀는 엄마의 품 없이, 할아버지의 약봉지 냄새와 함께 자라는 아이가 되었다.
그녀는 자라면서 종종 생각했다.(사실 80년이 지난 지금도 던지는 혼잣말이다)
‘그때 엄마가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런 질문은 늘 허공에 흩어졌다.
아버지란 존재는, 그녀 삶에서 얼굴 없이 존재하는 이름일 뿐이었으니까.
그녀의 세상은 할머니에게서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성품이 온화하고, 말없이 바지런한 사람이었다. 말보다는 손이 먼저였고, 꾸중보다는 한숨이 많았다.
그녀는 매일 그 손을 보며 컸다.
아침마다 한지를 자르고, 가루약을 봉투에 담고,
끓는 약탕기 앞에 서 있던 그 손.
그 손은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매일 무언가를 해주는 손이 사랑이었다는 걸
그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큰소리로 웃지 않았고,
어린 그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대신 가끔,
뜨거운 약탕기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등을 조용히 쓸어내릴 뿐이었다. 그 손길은 짧았지만 따뜻했고,
그녀는 그 손에 길들여졌다.
엄마는 그녀를 곁에 두지 않고 재가를 하였지만,
끝까지 그녀를 지킨 건 말없는 할머니였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잠시 붙잡아둔 시간 같았다.
그녀는 늘 누군가의 선택 밖에 있었고,
그 사실은 자라면서 조용한 열등감과 자책이 되었다.
그래서였다.
결혼 후, 그녀는 ‘제대로 된 가족’을 만들고 싶어 했다. 떠나지 않을 아빠 같은 존재를 원했고 엄마의 부재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자식만큼은 어느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았다.
그녀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울타리를 만들었고 누구도 넘보지 못하도록 점점 높이 쌓았다.
때로는 그 울타리를 무서운 집착처럼 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걸 놓는 순간 모든 걸 잃을 것 같을 두려움이 컸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