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cm의 세계

그녀의 회복의 공간

by 유담

그녀의 공간은 150cm쯤 된다.
베란다 한쪽, 허리를 약간 굽히면 바깥이 보이고, 고개를 숙이면 초록 잎들이 인사를 건넨다.
그곳에는 오래된 의자 하나, 작은 선반 하나,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이 있다.

그녀는 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봄에는 화분을 손질하고, 여름에는 물을 주며, 가을에는 낙엽을 털어냈다.
겨울이 되면 창문에 손바닥을 대고 하얗게 김을 내뿜었다.
그 모든 계절의 흔적이 그녀의 세월만큼 베란다에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나는 그곳이 왜 그렇게 편한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좁고 불편해 보이는 자리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베란다는 세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작은 다리 같은 곳이었다는 것을.

밖은 늘 분주하고 시끄럽지만,
그곳에서만큼은 조용히 자신을 정리할 수 있었다.
바람이 스치면 손끝으로 기억을 더듬듯,
낡은 물건을 매만지던 그녀의 손길은 어쩐지 기도처럼 느껴졌다.

그녀에게는 늘 풀리지 않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젊은 날의 외로움, 그리고 다가서려다 닿지 못했던 관계들.
그녀는 그 모든 기억을 베란다의 화분처럼 조금씩 돌보고 있었다.

나는 어느 날 그 의자에 앉아보았다.
150cm의 세계 안에서, 세상은 낯설 만큼 가까웠다.
햇살이 천천히 창살 사이로 스며들고,
바람에 흔들린 블라인드 줄이 창틀에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 같았다.
그 소리는 그녀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끊임없이 쏟아내도 마르지 않는 눈물을 조용히 닦아내고 있었다.

그녀의 150cm 공간은 작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좁은 공간에서, 처음으로 그녀와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보았다.
그때 나는 비로소 어린 그녀의 상처를 위로할 수 있었다.
얼마나 외로웠을지, 얼마나 무서웠을지.

이전 10화그녀의 귀환, 나의 불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