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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Jan 19. 2021

나의 관종병

바야흐로 인증의 시대다. 100일간 매일 사진이 목표한 것을 사진을 찍어 '인증'하는 프로그램이 생기더니, 이제는 그 기간도 일주일로 다양하게 정할 수 있는 앱들도 생겨났다. 나 역시 대세에 뒤질세라 열심히 인증 행렬에 동참했다. 100일간 아이들과 30분 책 읽기를 도전해 귀찮은 마음을 이겨내며 아이들이 읽은 책들의 사진을 제법 열심히 찍어냈다. 그뿐이랴. 새로 생긴 앱에 들어가서는 10일간 만보 걷기에도 도전해 만보계에 찍힌 숫자를 자랑스레 찍어 올리기도 했다. 요즘 대세인 미라클모닝을 입증해줄 타임스탬트 앱도 설치했다. 내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열일 하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주는 아주 유용한 앱이었다.

하루 30분 100일의 기적이라는 이름을 진행된 책 읽기 인증 동안 매일 아이가 읽은 책을 사진을 찍어 올렸다.


                                  

신독 (愼獨) 이란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언동을 삼가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신독을 배웠다. 당시의 나는  신채호 선생님은 정말 혼자서 세수를 할 때에도 허리를 굽히지 않았을까가 궁금했다. 우리들의 이런 철없는 질문에 선생님은 신채호 선생님의 곧은 성정을 보여주는 일화일 분이지 어떻게 사람이 허리를 안 굽히고 살았겠냐며 혀를 차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곤 덧붙이셨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신독'이라고.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순간순간 그 말이 떠올라 무릎을 친다. 남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스스로 해 나가는 것. 혼자 있을 때에도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번 공감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카페에 새벽 기상 인증을 한다. 살을 빼고 싶은 이는 매일 먹는 음식을 사진 찍어 올리고, 운동을 하는 이는 운동일지를 기록해 사진으로 남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공개된 일기는 더 이상 나만의 일기가 아니듯 올려진 기록도 단순히 기록만은 아니다. 누군가가 와서 보고 인정해주길 바라는 나의 바람이며 욕구이기도 하다. 나 또한 그러한 욕구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가 우리를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것에도 물론 동의한다. 다만 내가 진짜 인증받아야 할 대상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먼저 인증받아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다.


하여 다시 한번 신독을 되뇌어 본다. 혼자 있을 때에도 어그러질 수 없는 건 바로 "내"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지켜보는 나는 CCTV보다 더 세밀하고 정확하다. 어느 SNS의 댓글보다 날카롭고 무섭다. 나는 관종병을 알고 있다. 그간 남에게만 빼앗겼던 '나'의 관심을 오로지 '나'만 받고 싶다. 그리고 이 병에는 달리 치유책을 쓸 생각은 당분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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