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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Jan 27. 2021

당신의 역마살이 내 것이 되기까지

부유하는 삶에 대해

어릴 적 기억이 있던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서울의 한 동네에 살았다. 지금은 높다란 건물들이 들어서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높은 곳이라지만 내 이럴 적엔 그냥 잠실대교 이북의 변두리 동네였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자연스레 같이 중학교에 갔다. 친했던 친구들과 떨어져 간 고등학교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다니던 고등학교와 자그마친 버스로 10분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자그마치 10분. 지금이야 우습지만 걸어서 20분이나 더 가야 하는 곳은 그때의 나에겐 참 멀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아는 친구들이 없지는 않았고 새로운 친구들도 곧 사귈 수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다녔던 독서실에는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 독서실서 새로 사귄 친구들로 넘쳐나 그룹별로 한 번씩 인사 나누고 얘기 조금 나누다 보면 곧 집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종종 술을 먹다 늦게 들어올 일이 있으면 친구가 택시비를 들고 나와 있기도 했다. 20년 가까이 살아온 그곳은 눈감고도 다닐 수 있었고 어디든 아는 사람이 있었으며 공간 하나하나에 추억이 빼곡히 쌓여있었다.


7살 많은 언니는 결혼을 일찍 했다. 결혼을 하고 친정 옆에서 신혼 몇 년을 보냈던 언니는 1기 신도시로 이사를 갔고 얼마 뒤 큰 딸의 권유는 부모님을 움직이게 했다. 동네를 돌아다녀도 아는 이 하나 없다는 것은 처음 느껴보는 막막한 감정이었다. 버스 10분도 멀던 내게 지하철을 타고 1시간을 나가야 추억이 가득한 그곳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은 쉬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학연수를 다녀와 학원에서 일하면서는 그 1시간은 더욱 큰 벾으로 다가왔다. 10시가 되는 시간에 끝마치는 학원 강가의 특성상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늦은 밤에도 동네 어느 어귀나 놀이터에서 대수롭지 않게 만나 음료수 캔 하나 따마시며 수다를 떨던 일 따윈 이제 가능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진 것에 대한 상실감은 사무친 그리움으로 그리고 커다란 외로움으로 번져갔다. 30분 거리에서 회사를 다니던 현재의 남편에게 집착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건 그 사무친 외로움의 탓이 컸음을 결혼을 하고 알게 되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오래된 격언처럼 그 낯선 동네에 조금씩 익숙해질 때쯤 결혼을 했다. 


"이 사람은 역 맛살이 있어. 평생 돌아다닐 팔자네"


호기심에 친구와 함께 갔던 어느 점 짐에서 남편의 사주를 물었을 때  무당같이 붉고 퍼런 옷을 입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한참 유행하던 사주카페의 개량한복을 입은 아저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당시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 부산에서 내려가 있었다. 그가 옮긴 회사는 공공기관이라 전국에 지사가 있어 잦은 이동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몰랐다. 하지만 결혼 1년 뒤 본부로 발령을 받으며 나는 그나마 익숙해진 그 도시를 떠나 또 다른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햇수로 16년을 맞는 결혼생활 동안 나는 부천으로 산본으로 미국으로 대전으로 그리고 지금의 울산에 이르기까지 지역을 넘나다는 이사를 했다. 그나마 오래 살았던 산본에서만도 3번의 이사를 해야 했다. 세상은 나의 의지로 되는 것만은 아니기에 잦은 이사는 힘이 들고 그때마다 많은 돈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남들처럼 부동산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재테크를 위한 이사는 아니었다. 


점주의 사주가 제법 용했는지 남편은 이사보다 더 잦은 이동을 했다. 부산에서 인천으로 수원으로 울산으로 대전으로 강원도로 나라는 건더 뛰어 미국으로 그리고 지금 여기 울산까지... 잦은 이동에도 스트레스받아하지 않는 그를 보며 사주의 힘이 대단하다는 시답잖은 생각이 들었다. 40이 넘은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20대의 나처럼 사무침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낄 시간조차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넓고 넓은 미국 땅에서 파란 눈의 사람들에게 새로 살 집을 소개받을 때도, 찜통처럼 더운 대전의 한 동네에서 답답한 일상을 견뎌낼 때도, 생천 처음 와보는 울산에서 홀로 한 달이 넘도록 이삿짐을 정리하면서도 불쑥 날 선 감정이 치솟아 오른다.  20대때 익숙한 동네를 떠나 처음으로 느꼈던 익숙하던 것에의 상실감, 또다시 적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안정되지 못하는 듯 느껴지는 내 삶에 대한 서러움이다.


 집을 나와 한참을 걸어도 인사 한마디 나눌 사람도 전화해 잠깐 나와라 할 사람도 없는 이 낯선 동네에서 나는 존재가 없는 유령처럼 부유한다. 모든 것이 집안에서 이뤄지는 시대는 한없이 가볍기만 하던 존재감을 투명하게  만들어 뿌리를 내린다는 말조차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 것, 보통은 한 곳에 정착하며 아는 사람들과 오래 살아가야만 안정감이 생긴다고 믿지만 이 인물은 그렇지가 않아요."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움을 즐기기보단 '돌아왔다. 다시 받아들여졌다'라는 안도감이 더 좋다. 하지만 앞으로도 삶의 나의 이런 취향을 존중해 줄 것 같지 않다. 남편은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의 이사를 고민하고 있으며 그건 우리 가족의 정착을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이 사실일지는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니 지금의 내가 어쩔 수 있으랴? 설사 그리되지 않는다 해도 그를 탓하지 않으려 한다. 부유하는 가벼운 삶이 익숙해지지 않겠지만 깊이 박히지 않은 뿌리는 가벼이 꺼내져 그 고통이 덜해진다는 장점도 있다. 또 새로운 곳들마다 나름의 좋은 점이 있다는 것도 매력있다. 지금 사는 곳은 집 옆에 대공원이 있어 산책 나가기에 안성맞춤이다. 공원에는 보드라운 풀밭과 멋진 호수도 있고 직지만 제법 운치 있는 숲길도 있다. 따스한 햇살이 비쳐오는 봄이 되면 더 자주 나가 봄날의 공원을 구석구석 즐겨야겠다. 나른한 햇살이 비칠 땐 돗자리를 펴고 풀밭에 누워 햇살 아래 멍 때리기도 해 봐야겠다. 봄빛의 따스함에 나의 얇디얇은 뿌리가 조금 더 깊고 조금 더 두껍게  한 뼘 더 땅속으로 자리 잡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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