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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Jan 01. 2021

웅녀가 되고 싶어

의심병을 날려버린 그녀에게

늦잠을 잤다. 나에게 늦잠이란 나를 제외한 남편, 아이 둘과 함께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여유롭게 컴퓨터에 앉아 글 한자라도 써 볼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오늘같이 나의 기상을 시작으로 그들의 시작이 이어지는 날이면 눈곱만 떼고 부엌으로 직행하게 된다. 다른 때라면 나의 차 한잔만 담아 노트북 앞으로 직행을 하겠지만 오늘은 나의 차보다 그들의 아침 루틴을 준비한다. 내가 없어도 그들의 루틴이 원활히 잘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아직은 아닌 듯하다. 


계란지단을 붙여내는  내내 한숨이 나온다. 제야의 종소리도 없는데 굳이 새벽 늦게 잠이 들어 새벽녘에 해야 할 일들을 놓쳐 버린 게 못내 속상하다. 아침 준비가 끝나고 아이들의 공부를 돕우면 다시 점심시간.. 무한 반복되는 타임루프의 늪에 빠져 버리면 잠시의 짬을 내는 게 여간해선 쉽지 않다.  오늘부터 결혼한 지 16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 요령이 부족한 탓일까? 


작은 습관이 모여 다른 나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지난 몇 달 작은 습관 만들기에 집중했다. 워낙에 즉흥적인 성격이라 맘에 내킬 때 빨리 해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꾸준한 습관이 없으면 지속적인 기쁨도 없다는 걸 깨닫고 나를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루틴화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던 남편은 한동안 나의 새벽 기상과 동시에 깨어났다. 한참 신경이 예민하던 그를 두고 나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어느 날은 덩치가 산만한 둘째가 따라 일어나 자기 옆에서 더 자라고 뗴를 쓰며 울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열댓 번은 다녀간 것 같다.) 나만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주부들이 겪고 있는 상황일 테니 말이다. 


서둘러 저녁을 차리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엄마는 왜 먹지 않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살 뺄 거야"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무엇이라도 써내야 내일을 맞을 용기가 생길 것 같다. 한 살을 더 먹었다는 부담감도 한 몫한다. 하나 곧 한편에서 이거 하나 쓴다고 뭐가 달라져서라는 마음이 꼬리를 물고 이어온다. 


고단한 삶에 더 힘들어야 하나? 



왜 하필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마늘과 쑥을 주었을까? 그들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서 신화가 주는 교훈처럼 고통을 참아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기 위함이었을까? 사는 건 종종 고단하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내가 감히 '고통'이라고 말할 꺼리는 없다. 다만 늘 피곤하고 고단 한 건 사실이다. 고단하기만 한 삶이 싫어서 나를 바꾸자고 하니 그 피곤함이 갑절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한데 그 피곤은 종종 몸이 아닌 마음에서 온다.  ' 이렇게 한다고 뭐가 바뀌겠냐'는 의심은 몸을 더 지치게 한다. 가끔 '남들은 잘만하는데 나는 여기까지 인가 봐.'라는 의심이 들 때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웅녀라고 의심이 없었을까?


아마도 매일 밤 눈물에 젖어 마늘과 쑥을 씹으며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준 이의 저의를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햇볕 한 자락이 동굴 안에 비쳐들 때면 마늘냄새 진동하는 동굴 안을 훌쩍 떠나고픈 충동을 열댓 번도 더 느꼈을 것이다.  컴컴한 굴 안에서 끊임없는 의심과 싸워가며 바깥세상을 그녀를 생각한다. 가끔 동굴 안에 웅크리고 있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돼도 한다. 그러 나 그녀는 해냈다. 그러니 나도 이 지긋지긋한 의심과의 싸움에서 조금 더 용기를 내야 한다.  결국 아무것도 될 것 같지 않은 내 마음의 의심병이 자꾸 나의 작은 노력들을  우스워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무시무시한 병은 2021년에도 종종 나를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 너 오늘도 제대로 못했지."라거나 "해봐도 뭐가 바뀌디?"라며 나의 마음을 후벼 팔지도.. 그러면  지금처럼 이곳에 앉아 자판을 쳐봐야겠다. "웅녀가 될 테야"라고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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