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쯤, 미국에 다녀오고 몇 달 간 딱히 할 일이 없는 시간들이 주어졌다. 늘상 할 일에 쫓겨 마음을 조리는 것이 일상 이였기에 하릴없이 흐르는 시간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 때 인생에서 가장 많은 글을 써 댔는데, 글이라고 칭하기엔 조금 부끄러운 것들이지만 마음을 담아내면 조금은 내 인생도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3개월의 시댁 살이 가 끝이 난 후, 삶은 다시 숨 쉴 틈 없이 메꿔졌고 가끔 전화로 수다 떠는 것조차 부담으로 느껴져 한 풀이 하듯 쏟아내던 글쓰기와는 또 그렇게 멀어졌다.
그런데 왜 또 이리 글이 쓰고 싶어진 걸까? 꼴 보기 싫은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내 던지고 싶은 말들이 너무 가득하여 속이 시끄럽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사실 이런 건 글이 아니다. 예전에 어느 예쁘고 글 잘 쓰는 이가 말하길, 자기 이야기를 쓴 글을 보고 출판사 편집자가 일기는 일기장에나 쓰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잠시 옆 길로 새자면,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고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인생에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보다 더 재미난 것이 있단 말인가? 안네의 일기가 거대한 시대 상 속에 짓 밟히는 힘없는 개인의 이야기라 그 가치가 있다면 그 거대하고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 속 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는? 살아남아 살아내고 있는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한 없이 눈물겹고 우스꽝스러우며 또한지리멸렬하고 애잔하지않은가. (이야기 한 당사자는 차분한데 옆에서 흥분하는 내 꼴이라니...)
옆 길로 한참 새다 오긴 했지만 사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다. '책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거야', '그러고 있으면 결국 너만 뒤쳐지게 될 꺼야' 따위의 말이나 온라인 상에 명언처럼 떠돌며 사람들이 맹신하는 그 놈의 도전하라는 이야기들에 마구 딴지 걸고 싶은 못된 심보 말이다. 이 마음을 늘 꼭 억누르게 하는 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떠들어 대는 건 글이 아닌 쓰레기라는 내 양심의 소리이다. 난 그래도 제법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제 흠모해 마지않는 브런치 작가님의 "자기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할 용기" 를 내어 올린다는 글을 읽었다. 난 그이 같은 용기를 감히 가질 수 없다. 시와 같은 글을 내 뱉는 이도 느끼는 부끄러움을
배설의 욕구를 풀고자 하는 내가 갖는 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글이 쓰고 싶다. 왜나하면,
글을 쓰다 보면 조금쯤 마음이 동글 동글해지는 마법 같은 순간들이 온다.
이런 마법의 순간들을 조금씩 늘여가면 내뱉기가 아닌 마음을 담아 눌러 쓰기도 가능한 시간도 오지 않을까?
어제 그이의 글을 읽고 오랜만에 브런치 창을 열었다. 폭주하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 정화한 느낌이다. 그 이의 책이 출간되어 내 서재 한 켠 에서 함께 하는 순간을 생각하니, 상상으로도 마음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