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깃털처럼 춤추는 거야
대학 친구 중 별명이 깃털인 아이가 있었다. 20 초반의 대학 시절은 치기 어린 행동으로 했는데, 술자리라도 벌어지면 그것이 절정으로 치달아, 어설픈 지식들이 여기저기 난무했다.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 소신이라도 되는 듯 착각했던 진지했던 우리들에게 자신은 깃털이라고 말하는 그 친구의 가벼움은 역설적이지만 즐거움이었다. '그래 알고 보면 우리 모두 깃털이야 깃털'이라고 깔깔 웃어대며 이전의 진지함 따위는 어느새 슬그머니 잊혀 갔다.
한없이 가벼우며 보드라운 깃털
소소하지만 편하고 자유로운 깃털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첫째가 감기가 걸렸다. 처음엔 항생제 처방을 하지 않는 소아과를 다녔지만 차도가 없다. 감기가 너무 오래가는 것 같아 큰 병원으로 가서 독한 항생제 한 뭉치를 받아왔다. '처음부터 항생제를 먹일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둘째가 감기가 걸렸다. 병원에서 항생제 처방을 받았는데 아이는 설사를 계속한다. 큰 병원에 갔더니 다른 항생제로 바꿔 먹이라고 한다. 결국 아이에게 계속 항생제만 먹이고 있는 꼴이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했던 것일까? 맘 카페엔 엄마들의 온갖 지식과 걱정들이 가득해 읽고 있자니 오히려 머리만 아파왔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지 유치원에 보내야 할지 고민이다. 아이의 성향, 워킹맘으로서 편의, 집에서의 거리, 교육 내용, 비용, 추첨 결과 여부.. 고려해야 할 상황은 10가지쯤 되는 것 같다. 또 맘 카페를 뒤지기 시작한다. 또래 엄마들과 만나니 또 온갖 정보가 난무하다. 큰 아이들을 키우는 언니들은 어차피 나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지금 내 아이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이 그리 쉽게 해결책이 보이진 않는다.
둘째가 이제 막 7살이 되었다. 2년째 다니고 있는 영어유치원 원장이 어느 날 나에게 말한다. "아이가 영어책을 잘 못 읽어요. 혹시 난독증 검사해보셨어요?" "한글은 이미 떼어서 잘 읽고 있는데요." "아.. 근데 왜 영어는 잘 못 읽을까요?"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온 뒤 마음에 돌덩이가 앉은 것처럼 답답하다. 영어공부보다 당시 여러 상황에 맞물려 보낸 영유였지만 그래도 아이가 뒤쳐진다니 무슨 문제가 있나 싶고 내가 뭔가를 크게 잘못했나 걱정이 된다. 난 무엇을 잘못했을까?
남편이 2년간 미국에 가자고 한다. 회사에서 2년간 대학원 지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에 선정된 것이다. 남편은 이것을 위해 지난 몇 년을 밤잠도 못 자며 노력해왔다. 당연히 기쁜 일이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학원을 운영하며 새로운 곳으로 확장하며 이사 한지 이제 1년이 되었는데 남편은 다 정리를 하라고 한다. 돌아오면 40대 중반이 가까워지는 나이인데 내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애들은 미국에서 잘 적응을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누군가는 좋은 기회라고 하는데 도무지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고 넘고 넘어야 산들만 나타난다.
미국에서 돌아왔다. 남편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도시로 가자고 한다. 아이들에겐 벌써 4번째 초등학교다. 괜찮을까?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가볍고 가벼우며
자유롭게 떠다니는 깃털
자유롭고 가볍게 깃털처럼 살고 싶었다.
아이들은 가끔 아프기도 다치기도 했지만 너무나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난독증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아들은 누구보다 독서를 좋아한다. 또래 수준의 영어책도 잘 읽고 있다.
걱정만 가득했던 미국 생활 2년은 무사히 잘 마쳤다. 힘든 기억도 있지만 감사한 일이 더 많았다.
새로운 도시에서의 생활은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아이들은 학교에 잘 적응했고 나는 예전처럼 학원을 운영하진 않지만 집안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이제 한 달 뒤면 또다시 새로운 도시에서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가벼울 수 없다. 경제적인 문제며 몸으로 뛰어야 하는 실제적인 문제까지 하루 종일 고민해도 모자랄 일들이 가득하다. 새로운 상황에 다시 또 적응해야 하는 아이들 상황도 마음을 짓누른다. 사실 어느 날도 가볍지 않다. 하지만 무겁고 어려운들 어쩌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늠할 순 없지만 살아보니 그때 그 걱정 조금 덜했어도 괜찮았다.
삶이란 놈이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속삭인다. 우리 다 깃털이야. 세상사에 한없이 흔들리고 나부낄 수밖에 없는 가볍고 가벼운 깃털.. 커다란 바람에 밀려 휙 날아가 버리지 않게 조심조심 바람을 느끼며 그렇게 춤추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