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Yueun Kim Mar 25. 2019

왜 내가 원하는 가구는 이케아에 있었을까

가구가 아닌 삶을 디자인하다

나의 첫 커리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 어렸을 때 TV에서 보았던 '러브하우스'를 보며 꿈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거환경을 확 바꿔주는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양진석처럼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면 내 집은 엄청 근사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설레었다. 우리 부모님은 디자인엔 별 관심이 없어서 물건을 고를 때 디자인이 1순위가 아니었기에 나는 항상 꿈꿨다. 내가 독립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꾸미고 살아야지!라고.


그리고 5년간 일을 경험하면서 깨달았다. 어떤 가구를 고르기 전에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게 먼저라는 것을. 내 집을 나답게 만들려면 "나는 이러 이렇게 살고 싶어. 그래서 이런 용도의 가구가 필요하고 내가 좋아하는 취향은 이런 거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브랜드의 공간을 아이덴티티가 느껴지게 만들려면 "우리는 이런 브랜드예요. 그래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고, 공간에서 그게 느껴져야 해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가끔 뚜렷한 기준 없이 무조건 멋지게, 무조건 예쁘게를 요구하는 작업들도 있었는데, 정말 난해하고 힘든 작업이다.


처음으로 독립을 해보니 물건을 쉽게 살 수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내 집의 모습은 있었지만 공간의 사이즈는 한정적이었다. 풀옵션 원룸에서 침대 하나 놓고 끝나는 집은 싫었다. 침대를 제외하고 내가 구매할 수 있는 최소한의 리스트는 2가지였다. 노트북과 이것저것 펼쳐놓을 수 있는 큰 테이블, 그리고 베란다처럼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선반 같은 가구. 고민 끝에 고른 2개의 가구는 모두 이케아에 있었다. 그리고 매거진 B에 나온 이케아 편을 읽으면서 왜 내가 원하는 가구는 이케아에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1. 큰 테이블    2. 화분 놓는 곳  (여기에 맞는 가구 고르기!)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5000 크로나(한화 65만 원) 정도 가격에 판매하는 책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0 크로나(한화 약 1만 3000원)에 판매하는 책상은 아주 유능한 디자이너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전체적인 가정환경을 아우르는 것입니다. 즉 실외와 실내 구분 없이 집의 모든 구석에 알맞은 가구와 부품을 제공해야 합니다. 기본 제품군은 이케아의 심플하고 솔직한 사고방식을 담아야 합니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더욱 자연스러우며 구속받지 않는 삶의 방식을 반영해야 합니다."


<어느 가구상의 증언 - 이케아 미니 용어집>에서




일단 이케아 제품은 싸다. 물론 모든 제품이 싼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싼 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저렴하기 때문에 구매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케아에서 사는 건 저렴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중에 가장 멋진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작은 스툴 하나를 사려고 했는데, 여기저기 찾아봤을 때 맘에 드는 디자인이 이케아 것이었다.


내 공간은 삼각형처럼 생겨서 큰 테이블을 배치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옵션으로 되어있는 TV장에 딱 붙이면 될 것 같았다. 작은 공간에서는 가구 사이즈 10cm, 20cm의 차이가 엄청 크다. 테이블 사이즈를 1400과 1600(mm) 사이에서 고민했다. 상판은 넓었으면 좋겠고, 공간은 좁고. 그래서 낸 솔루션은 TV장 위로 겹치게 배치하는 것이었다. 다리를 하나만 따로 살 수 있고, 나에게 딱 맞는 1500 사이즈의 하얀 테이블은 이케아가 유일했다.


베란다는 없지만 화분은 키우고 싶어서 여러 개의 화분을 올려둘 가구를 찾았다. 나는 기저귀 카트로 유명한 이케아 트롤리를 화분 트롤리로 사용한다. 물 줄 때 화장실로 이동하기도 편하고, 물에 조금 젖어도 괜찮은 내구성을 갖고 있어서 만족스럽다.


다리 하나만 있는 이케아 테이블
화분용으로 사용하는 트롤리



이렇게 만들어진 이케아 가구들은 그냥 예쁘게 만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집에 대한 생각을 고민했을 때 4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정리한 포스팅이 있다. 공간, 물건, 장소, 관계 이 4가지가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집을 집답게 살 수 있다는 조사 결과를 적은 글이다. 지금도 인구는 줄고 있는데, 사람들은 계속 도시로 몰린다. 도시에서 점점 내 공간이 줄어들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 이케아에서는 그런 것들을 먼저 조사하고 연구하고 기획하는 것이다.



"제 컴퓨터는 비밀번호 없이 바로 Wi-fi와 연결되고,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업데이트하죠. 그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집이에요." / HENDRICK, 스톡홀름


"여행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집에서는 쉴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죠. 방과 책상, 침대도 중요하지만 저는 밖에서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에요. 장을 보러 가고,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고, 제가 좋아하는 술집을 찾아가죠. 그렇게 살아요." / ERIC, 코펜하겐



이케아는 가구를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미래의 삶을 디자인했을 때 어떤 결과물로 나오게 하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그 결과물이 거창하진 않다. 실제 삶은 평범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연습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할 것 같다. 그냥 식탁, 의자, 침대, 소파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는 공간, 진지하게 대화하는 공간, 식사하는 공간, 배우는 공간, 멍 때리기 좋은 공간 등등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지 않을까? 공간보다 wi-fi가 중요해진 시대다.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앞으로의 가구의 형태는 지금의 모습과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은 왜 브랜드 불모지일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