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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카 Apr 07. 2019

펭귄북스, 80년 넘게 유지되는 디자인이란


읽기 위한 책을 사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들은 이제 책 내용의 퀄리티는 기본이고, 인테리어용이나 수집용으로도 만족스러운 책을 산다. 나부터도 그저 그런 책은 이제 더 이상 집에 모셔두지 않는다. 아주 까다로운 기준으로 내용과 북디자인이 만장일치로 합격한 책들만 소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펭귄북스(Penguin Books)는 꽤나 독보적이다. 이름처럼 펭귄을 마스코트로 사용하는 영국의 출판사다.


오렌지빛 펭귄북스의 비주얼


Penguin Classics라는 페이퍼백 시리즈가 유명하다. 여러 나라의 고전문학 작품을 번역했다. 영미문학뿐만 아니라 중국의 시, 아프리카의 신화, 우리나라의 홍길동전 까지도 번역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시리즈 기획의도가 사람들이 좋은 책을 읽게 하는 것이어서 내용도 읽기 쉬운 산문 형태가 많다.


펭귄북스가 세워진 이유도 비슷하다. 설립자인 앨런 레인(Allen Lane)이 출장을 가는 동안 심심해서 읽을 책을 찾아봤는데, 책들이 하나 같이 비싸고 재미도 없었단다. 오죽한 마음에 문학성이 있는 책을 싼 값에 읽기 위해 직접 출판사를 세웠다. 그게 펭귄북스다.


사실 펭귄북스는 책 디자인이 유명하다. 하나의 디자인이 무려 80년 넘게 유지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즉,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같은 디자인으로 된 책을 읽었다고 보면 된다. 시간에 쌓인 경험은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최상의 식재료다. 자연스레 펭귄북스를 기억하고 애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누가 이 디자인을 했던 것일까?



초창기 펭귄과 댄싱 펭귄



놀랍게도 펭귄의 로고는 1935년 당시 출판사 직원이었던 21살의 에드워드 영(Edward young)이 런던 동물원에서 펭귄 스케치를 해온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펭귄 심벌과 3단으로 나눠진 레이아웃, 오렌지 컬러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페이퍼 백 시리즈의 디자인은 당시의 출판 트렌드와 관련 있다. 그때 당시의 책들은 주로 소장용이었다. 고급 양장본으로 만들어져 튼튼했지만 굉장히 무거웠다. 게다가 책 이름은 물론, 내용도 필기체로 쓰이기도 했다. 들고 다니면서 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반면 펭귄북스는 책은 읽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았다. 들고 다니면서도 볼 정도로 편해야 한다. 먼저 책 이름의 가독성을 올렸다. 쓴 사람도 못 알아먹는 필기체도 버렸다. 여러 권의 책도 쉽게 분류할 수 있도록 장르는 색깔로 구분했다.





물론 초반에는 펭귄의 모양, 텍스트 배치도 조금씩 달랐다. 새로운 인쇄기술이 도입되면서 다양한 표지 디자인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명성을 잃어갔던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1947년 얀 치홀트(Jan Tschihold)를 만나게 되면서 펭귄북스는 일관성 있는 시각적 체계를 갖게 되었다.



Penguin by Design / 펭귄 로고의 변천사


Jan Tschichold ‘Penguin Composition Rules’



얀 치홀트는 정보의 양이 증가함에 따라 독자들은 단순 명료한 디자인을 원한다고 확신했다. 단순한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설명부터 문단의 길이, 본문 구성, 책의 크기, 폭, 타이틀 위치 등 2년여 동안 총 네 쪽으로 된 '펭귄북스 구성 법칙'을 만들었다. 이러한 디자인 룰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 때문에 펭귄북스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역대 표지 디자인을 모은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가끔씩 출시되는 에디션은 수집가들의 타깃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카롱 에디션이 인기가 많은 편이다.


색깔이 달라도 디자인 패턴이 달라도, 모아놓으면 그 자체가 하나의 선이 된다. 펭귄북스는 브랜드의 목적과 목표가 설립 당시부터 확실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들은 크게 변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체가 브랜드 소스가 된다. 디자인을 예쁘게만 하는 건 쉽다. 가장 중요한 건 그 단순한 진리를 찾아내고, 다듬고 유지하는 것이다. 사실 그게 제일 어렵다.


우리들은 스스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브랜드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과정이 된다. 나 답지 않은 것들을 걸러내는 순간, 놀라운 일들이 시작된다. 








참고 이미지 및 사이트

-펭귄북스 디자인 히스토리 참고 : http://impossiblethings.co.uk/project/penguin-books

-David Pearson (브랜딩 & 북디자이너, 펭귄북스 북 디자인 리뉴얼 작업) http://typeasimage.com/penguinbydesign.html

-얀 치홀트 '펭귄북스 구성 법칙' https://malwi.hotglue.me/peng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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