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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카 Feb 24. 2019

새로움은 피곤하다

에어비앤비로 여행하기


여행하는 법을 보면 조금은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어떤 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지, 숙소는 어디를 선호하는지,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시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성향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나의 여행 스타일 중 하나는 조용함이다. 어딜 가던지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낯선 사람과의 교류도 좋아하지 않으니 호텔 직원과 최소한의 소통 정도에만 에너지를 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나에겐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은 변한다. 어떤 위기가 오면 사람은 변화를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 생긴다. 나에게도 변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던 시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긴 여행을 떠났다. 그런 여행에서 내가 원했던 것은 호텔에서 편하게 지내고 여기는 꼭 가야 하는 곳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나는 뭘 하고 싶어 할까? 그게 가장 나에게 궁금한 것이었다. 왕복 비행기 티켓과 첫날의 숙소, 중간중간 나라를 이동할 때 비행기 예약 외에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떠났다. 물론 (겁 많은 내 기준으로) 너무 위험한 도시나 무섭고 걱정되는 경험은 자체적으로 검열해가면서.


안 해봤던 경험을 하기 위해서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를 경험해보기로 했다. 에어비앤비는 처음 부산에서 친구들과 한번 이용해봤기 때문에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혼자다. 너무 새로운 경험만 하면 에너지가 바닥날 수 있으니 맘에 드는 에어비앤비 숙소가 있을 때만 이용했다. 스위스 호르겐에서, 스페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한 번씩. 새로운 것은 피곤하다.


나의 에어비앤비 사용기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긴 하지만,
일과 생존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은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6주가 조금 넘는 긴 여행에서 출근할 회사가 없는 상태로 지내보면서 깨달은 건 사실 특별한 건 없었다. 세상은 넓고 네이버에 나오지 않은 사실도 많았다. 여기도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서 열심히 돈 버는 사람도 있고, 한가하게 사는 사람도 있었다. 스위스 에어비앤비 집에서는 심플한 저녁으로 계란 프라이를 먹으며 스위스 할머니의 퇴근 후 저녁 일상을 함께 했다. 9시, 10시가 되면 짐을 챙겨 나가는 게 아니라 눈이 떠질 때까지 잠을 자고, 호스트의 식탁과 그릇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바르셀로나 호스트의 냉장고에는 웰컴 와인이 들어있었으며, 출장을 다녀오느라 못 챙겨서 미안하다며 호스트에게 볼뽀뽀를 처음 받아보기도 했다.


그냥 공원 벤치에 앉아만 있어도 여유롭고 좋아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뭔가 엄청난 게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당연하고 별거 아닌 것에도 즐거워할 줄 아는 마인드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요일에 상점들이 문을 닫아도 집에서 가족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고, 거리에서 파는 맥주나 와인을 머그잔에 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집 창문을 지나가는 누군가를 위해 또는 나를 위해 아기자기하게 꾸밀 줄 알고, 비싼 옷을 입던, 싼 옷을 입던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여행을 통해서 특히 에어비앤비 숙소를 통해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직접 보았고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경험해본 것으로도 내가 고민했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었다.



“에어비앤비를 한번 경험하고 나면 여행 계획을 짤 때 여행의 포맷이 달라진다.”
- 조수용 대표 , <B CAST> AIRBNB 편에서

원래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익숙한 것은 편하고 걱정도 없다.
그들의 숙소는 호텔처럼 깨끗하거나 편안하지도 않고, 세련된 인테리어도 아니었지만 그때의 여행 경험을 떠올리면 숙소보다 사람이 먼저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에어비앤비는 숙박업 자체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만든 것 같다. 새로움은 확실히 불편하다. 에어비앤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설레는 일들은 누구는 경험할 수도 있고, 누구는 경험해보지 못할 수도 있다. 예상되지 않는 새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어쩌면 기대와 걱정의 확률을 안고 모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내가 얻은 건 ‘호스트와 교류의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디 어디를 다녀온 여행’이 아니라 ‘그 어디에 다녀온 나 자신’으로 기억에 남는다.





현지인의 집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멋진 숙소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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