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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Sep 08. 2020

당뇨로 무너지는 노년의 삶

비극적 시나리오의 시작은 당뇨였다.

대표적 노인성 질환에 고혈압과 당뇨(Type 2)가 있다. 둘 다 한번 시작되면 평생을 걸쳐 관리해야 한다는 점과 유전과 환경이 함께 작용한다는 점의 공통점이 있지만 가장 큰 공통점은 잘 관리가 되지 못할 때 노년의 삶을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뜨린다는 점이다.





유쾌한 식도락가였던 어느 할머니가 있었다.

당뇨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난히 먹는 것을 즐기던 할머니이셨다. 

할머니는 노년의 삶에 들어서서도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하고, 자신의 당뇨는 메트폴민같은 먹는 약으로도 충분히 관리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셨다.

그런 할머니의 아점 메뉴는 거의 맥도널드 빅맥이었고 빅맥 세트의 프렌치프라이와 달콤한 콜라는 은퇴 후의 느긋한 삶을 만끽하게 했다.

"아, 빅맥 하나 먹고 싶다.!!" 그녀는 종종 이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탄수화물 섭취에 따라 제멋대로 널뛰기를 하던 당 수치가 곤두박질을 쳤고, 할머니는 저혈당 쇼크로 이층 계단에서 구르고 말았다. 

이어진 머리 손상. 

몇 시간에 걸친 대수술 뒤에 가까스로 회복이 되었지만 할머니는 더 이상 이전의 할머니가 아니었다. 

뇌손상으로 시력과 인지 손상이 왔고 할머니는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초기 치매 장애 노인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운전을 할 수도 없게 되었고 더 이상 맥도널드에서 빅맥 아점 식사 후 아메리카노 커피를 즐길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부모로서도, 사업가로서도 성공했던 어느 할아버지가 계셨다.

인텔리에, 성품조차 유순한 할아버지는 일찍 이민을 오신 분이시다.

한국에서 명문대 상대를 나오신 할아버지는 영어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고 부인과 함께 나름 성공한 이민 생활을 하고 계셨다. 

문제가 있다면 40 초반에 시작된 당뇨병이 문제라면 문제.

하지만 부인의 살뜰한 보살핌과 좋은 약 덕에 당뇨는 잘 관리되고 있었고 어쩌면 당뇨라는 질병으로 인해 남들 다 하는 술과 담배도 멀리하는 건강한 중년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던 할아버지의 삶에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온전히 할아버지의 건강관리를 책임지던 부인이 세상을 뜨면서였다. 

잘 자란 두 자녀는 결혼하여 곁을 떠나고, 덩그러니 큰집에 둘이서만 살던 부부에게 할머니의 부재는 도미노처럼 할아버지의 삶을 넘어뜨렸다.

먼저, 먹는 것이 엉망이 되면서 당뇨관리가 안되기 시작했다. 

이어서 제멋대로인 혈당은 신장을 망가뜨렸고, 망가진 신장을 대신해서 투석을 시작했다. 

몇 년 뒤 팔목의 혈관에 기형이 생길 정도로 투석을 진행하다 급기야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 역시 저혈당 쇼크가 와서 넘어져 뇌를 크게 다치고 말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할아버지는 횡설수설 무슨 말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없는 어린아이가 되어있었다.

더 이상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인지장애 노인. 

밥 먹고 대소변 처리는 물론이거니와 가끔씩 전화하는 자녀들의 목소리도 알아보지 못한다. 

"아빠, 나야, 나 00야, "라고 몇 번을 이야기하면 그제야 알아듣는 듯, 모르는 듯 반응하신다.

자녀들이 아는 유능 하면서도 선하셨던 할아버지의 삶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당뇨는 무서운 질병이다. 

감염이나 암처럼 타깃이 분명해서 일정 기간 동안 집중 치료하면 되는 질병이 아니다.

발병되는 순간부터 치료와 더불어 우리 삶의 전반적 변화를 요구한다. 

잘못된 식생활을 과감하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쳐들어온다. 

그리고는 하나씩 하나씩 우리의 삶을 점령해간다. 쓰러질 때까지. 


그러나 그러다가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먹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의 삶을 재조정하면 다시 슬그머니 물러선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속성 때문에 방만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을 검박하게 제 자리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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