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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Sep 09. 2020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

내가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점점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잊어버린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난날의 희로애락을 글로 담아내지 않으면 시간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질 거라는 사실에 조바심이 났다.

'내가 누군가'는 '내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기억하고 있는 것에 기초한다.

여성이라는 것, 몇 살이라는 것, 무슨 이름들로 불려 왔다는 것과 같은 구체적 사실들뿐만이 아니라, 어떤 이들과 어울려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의 과거와 현재의 총합이 바로 '나'다. 

그런 '나'를, '나'의 일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메디케이드(의료보호)를 가지고 있는 어르신들은 정부지원을 받아 우리 시설에 입소한다.

이름하여 노인복지프로그램 중 하나인 'Community option waiver'이다.

메디케이드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장기요양보호를 필요로 하는 건강상태가 되었을 때 이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정부의 승인을 받아 입소하신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waiver 자격은 매년 갱신되어야 한다. 


그 갱신 과정이 요즈음은 코비드 때문에 직접 면담이 아닌 전화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전 같으면 담당 공무원(주로 간호사 출신)들이 내방해서 직접 면담하고 신체적, 정신적 건강상태를 점검해왔지만 요즈음은 내게 먼저 전화를 걸어 전반적인 건강과 생활상태를 확인하고 마지막엔 본인과 전화로 필요한 사항들을 묻고 확인한다.

하지만 여기는 미국, 게다가 어르신들의 대부분은 젊어서 쓰던 영어도 잊어버리는 치매노인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한국말 통역이 필요하다.


담당 공무원이 그 면접 과정 중 반드시 체크하는 질문이 있다. 

어르신의 정신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하는 질문인데 얼굴을 보고 물어도 대답을 할까 못할까인데 중간에 통역을 통해 하는 질문은 안 그래도 우물쭈물하는 노인들을 더 횡설수설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게다가 면접의 객관성을 위해서 바로 옆에서 어르신을 돕는 나의 통역은 "No, thank you."란다. 



면접 중의 대화이다.

"자, 이제부터 내가 세 가지 단어를 말할 테니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내가 무엇을 말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색깔 블루, 양말, 텔레비전, 다시 한번 블루, 양말, 텔레비전" (몇 년째 이 질문은 동일하다.ㅠㅠㅠ)

똑같은 내용을 통역이 전화선 너머에서 한국말로 반복해준다.

할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이걸 왜 기억하라고혀?"

이어지는 질문.

"오늘이 며칠이지요?" (통역이 다시 한국말로 반복하고.)

할머니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며칠이여 오늘이????"라고 묻는다. (나는 묵묵 부답.)

이어서 또다시 질문.

"오늘이 무슨 요일인가요?" (통역의 한국말 반복.)

할머니는 난감한 표정으로 또 날 쳐다보고, 나는 짐짓 모르는척한다.

이쯤에서 면접관은 아까 말해주었던 세 가지 단어를 기억해보라고 요청한다.

당연히 할머니는 기억을 못 한다. 할머니가 머뭇거리자 통역이 질문을 다시 반복해 설명해도 대답을 못하신다.

할머니가 순전히 기억을 못 하는 것 일수도 있고, 중간에 통역을 낀 낯선 대화방식의 질문을 이해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할머니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 방금들은 단어도 기억 못 하는 중도 치매노인으로 진단되고 만다.



웃픈 해프닝 같은 면접 모습이지만 면접이 끝난 후, 당사자 할머니의 표정은 당혹스러움이 역력하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자각, 상대방이 묻는 것에 대답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얼굴에 서려있다.

옆에 앉아서 스피커폰으로 연결시켜주고 알아듣게 다시 설명해주던 나는 전화기를 끄고는 할머니의 등을 가볍게 문지르며 다독여준다.

"괜찮아요, 할머니 잘했대요, 나도 오늘이 며칠인지 잘 몰라요, 달력 들여다봐야지 알아. 누가 일일이 그런 걸 기억하면서 사나 뭐..."

나의 위로에도 잠시 동안 할머니는 자신의 손바닥만 들여다보며 대꾸가 없다.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가끔 무슨 일을 하려고 다른 곳으로 갔다가 "내가 여길 뭐하러 왔더라?"싶을 때 느끼는 감정일까?

아니면 늘 다니던 동네 산책길에서 느닷없이 "여기가 어딘가?"하고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일까?

아직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았으니, 아니 더 정확하게 그 상태가 되어보지 않았으니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렇게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고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때 내가 얼마나 당혹스러울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느낌 속에 있을 때, 나는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까는 오늘 할머니의 모습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할머니는 많이 위축되고 의기소침해지는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자신의 모습과 지금 자신의 모습이 많이 불일치하는데서 오는 당혹감과 위축이었으리라.

자신이 없어진 할머니는 우리를 볼 때마다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신다. 

누군가의 도움이, 누군가의 지지가, 누군가의 확인이 있어야 '자신'을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나의 '지금 여기'를 잃어버리는 것의 다른 모습이다. 

문득 'The NoteBook'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매일 자원봉사 할아버지가 읽어주는 노우트북의 마지막에서야 그 노우트북이 자신이 쓴,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고 할아버지가 남편임을 알게 되는 할머니의 기억의 세계. 


나도 주인공 할머니처럼 'The NoteBook'을 썼던 마음으로 내 삶을 적고 있다.

언젠가 내 머릿속에서 '내'가 지워져 나가기 시작할 때  꺼내 읽으며 다시 '나'를 내 머릿속에 그려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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