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로 완성되는 노인 돌봄- 간병인과 가족은 한 팀.
노인케어는 휴먼서비스 중에서도 휴먼서비스이다.
'사람의 행위'를 매개로 전달되는 인간서비스이기 때문에 노인과 간병인 간의 관계는 핵심적 요소이다.
게다가 전 생애중 가장 취약한 상태의 삶을 돌봐야 한다는 측면에서 그 '돌봄의 행위'는 관련된 사람들 간의 '신뢰'를 기본으로 한다.
이런 노인과 간병인, 그리고 노인의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 서로에 대한 신뢰, 특히 간병인( care giver)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제공되는 서비스는 형식적이 되거나 제한적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노인케어시설을 운영하면서 가끔 시설이나 care giver에 대해 불신하는 어르신과 가족을 볼 때마다 나는 성심성의를 다하고자 하는 의욕과 동기가 나도 모르게 잦아듦을 느낀다.
다른 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분이 계셨다.
알츠하이머가 일찍 찾아와서 60 초반인 그녀의 모든 삶을 망가뜨려버렸다.
잘 생긴 외모에 영특함, 그리고 미국에서 받은 대학교육으로 그녀는 가족의 자랑거리였고 보람이었다.
그런 그녀를 알츠하이머는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렸다.
처음 입소할 때 가족들이 말한 것 하고는 다르게 그녀는 이미 대소변을 스스로 처리할 능력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극히 내성적인 성격에, 치매로 인지능력이 손상되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표현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쉽게 말해 대소변 처리부터 무엇을 먹고 싶은지 또는 안 먹고 싶은지를 돌 보는 이들이 일일이 물어보고 도와줘야 하는 상태였다.
어느 날 이른 새벽, 이상한 기척에 그녀의 방문을 열었을 때 발견한 그녀의 모습은...
염소똥 같은 대변을 온 방안의 카펫 위에 흩뿌려놓고 그것을 흙 만지듯이 주무르며 앉아있었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그것이 진정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천진스러운 표정으로.
그분에게는 그녀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언니가 한 명 있었다.
우리 시설에서 한 시간 거리에 사는 그녀는 한 달에 두어 번씩 방문하고는 했는데 그녀가 동생을 보고 간 날은 여지없이 내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둘과의 대화였다.
- 잘 있었어?
- 점심 먹었니?
- 응 먹었어.
- 점심으로 뭐 먹었어? 맛있는 거 나왔어?
-???? (단기 기억상실이 심한 그녀는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을 못 했을 것이다. 또는 기억해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단어로 대답하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 맛없는 거 먹었니? 그랬어? 대답을 못하는 걸 보니 그랬나 보군.. 있잖니, 여기가 마음에 안 들면 내가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옮겨줄게.
그녀는 올 때마다 무엇인가를 탐색하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방에 들어가서도 이곳저곳을 눈을 번뜩이며 들춰보았다.
마치 무엇이든지 꼬투리 잡을 것이 없나 하고 찾는 듯이...
그녀의 태도로 인한 불쾌감은 그만두더라도 그녀의 부정적 질문이나 태도는 그대로 동생의 생각과 마음을 같은 톤의 색깔로 덧칠해버렸고 동생의 부적응적 태도는 점점 더 심해져갔다.
자신은 얼마 뒤면 다시 집( 자신의 집은 없어졌으므로 아들 집이나 딸 집이 되겠지만 )으로 돌아갈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분이 계셨다.
하지만 그녀의 자녀들은 어머니를 모셔갈 계획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메디케이드를 갖고 있는 waiver 환자이기 때문에 그녀의 케어 비용은 온전히 정부 몫이다.
그녀의 케어 비용뿐이 아니라 약값, 병원 치료비, 하물며 그녀가 사용하는 기저귀와 패드까지도.
그런 그녀는 까다로운 환자였다.
우선 밥투정이 너무 심했다.
"나는 비린 것은 안 먹는다, 돼지고기 들어간 찌개는 안 먹는다, 닭고기도 싫어한다, 나는 비위가 약하다."등등
그런 할머니는 번번이 제대로 식사를 다하지 않았고 그런 부족한 식사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자녀들이 알게 모르게 가져다주는 간식으로 때우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인한 측마비증상과 심혈관계 질병을 앓고 있었고 거기에 당뇨환자였다.
나는 할머니의 문제가 시설을 임시거처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본인의 생각과 가족의 비협조 때문이라고 보았다.
할머니의 생각이야 시간과 함께 바꾸어나가게 도와야 할 문제였지만 가족의 협조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간식으로 식사를 대신하려고 하니 간식을 가지고 오지 말아 달라."라고 부탁했다.
우선 하루 세끼 식사로 필요한 열량과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그 나머지 간식은 할머니의 식사 외의 시간에 허용하겠다고 설명했다. 내 설명과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던 딸들은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가족들은 올 때마다 간식을 가방에 몰래 들고 들어가서 할머니의 옷장 서랍에 한가득씩 챙겨놓았다.
그렇게 계속되는 밥투정과 간식, 간식으로 인한 입맛 없음, 입맛이 없어서 생긴 불충분한 식사에 또 이어진 간식이라는 쳇바퀴가 이어졌다.
두어 달 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가족의 협조를 좀 더 강한 어조로 요청하자, 놀랍게도 딸들은 "어머니가 배가 고프다고 했다"라고 오히려 볼멘소리를 했다.
그들은 자신의 식습관을 고칠 생각이 없는 엄마의 말만 믿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균형 맞춘 식사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 것이다.
결국 지나친 간식을 고집하던 할머니와 우리를 믿지 못했던 가족들에게 우리는 퇴소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자신을 바꿀 생각이 없는 한, 가족들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 한, 우리의 돌봄은 겉돌게 되어있다.
겉도는 케어를 해야 할 때 우리는 점점 일에 대해 심드렁해지고 의욕을 잃어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거나 유치원을 다닐 때였다.
어린아이가 하루 종일 유치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도란도란 그날 있었던 일을 물어보곤 했었다.
그때 나는 참 재미있는 현상을 보았다.
내가 아이에게 "오늘 어땠어?, 재미있었니? 무얼 하면서 재미있게 놀았어? 점심은 무슨 맛있는 것을 먹었어?"라고 긍정 질문형으로 질문을 하면 거의 대부분 아이는 긍정적인 것을 찾아서 기억해내고 쫑알거렸다.
반면 내가 "오늘 어땠니? 선생님이 너 혼내지는 않았어? 친구들과 싸우지는 않았어? 점심 남기지 않았어?"라고 부정 질문형으로 물으면 그날 있었던 안 좋았던 것들을 찾아내 기억하고 불퉁거리곤 했었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그때 나는 '내가 아이를 맡기는 곳'을 얼마나 신뢰하는가가 보육과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대개의 경우 내가 아이를 믿고 맡길 때 유치원 선생님이나 학교 선생님은 나의 믿음대로 돌보고 가르쳐주셨다.
아마도 나의 신뢰가 그분들이 아이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작은 동기로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린아이들도 그러한데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더 심신이 취약한 노인들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나..
노인을 돌보는 나에게도 그런 신뢰가 필요하다.
우리 시설이, 우리 care giver들이 주어진 여건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어줄 때 나는 그들이 믿어주는 대로, 아니 그보다도 더 세심하고 편안하게 보살피고 싶은 마음과 힘을 얻는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믿음, 신뢰는 기본값이다.
내가 상대를 믿을 때, 그리고 상대가 나를 믿어줄 때 우리는 따뜻하고 창의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다른 인간관계도 아니고 '돌봄'을 매개로 어르신과 그의 가족을 돕는 관계에서야 더 말해서 무엇할까.
노인 돌봄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을 중심으로 한시적인 가족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어르신이 하늘의 부르심을 받는 그날까지.
그런 삶의 중요한 마지막 단계에 가족과 care giver는 '그 어르신'의 마지막 시간들이 평화롭고 존중받는 환경에 있을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해야 한다.
그 협력에 서로에 대한 믿음은 가장 중요한 전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