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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Oct 22. 2020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할머니

하루를 대하는 노인들의 다른 모습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할아버지의 방에 가서 할아버지가 밤새 채워놓은 소변통을 비워드리는 일이었다. 소변통을 비우고 맑은 물로 헹구어다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나면  그다음에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야 했다. 할아버지가 가지고있는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채워넣기 위해서다. 하루종일 따뜻한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정수기의 더운물보다 끓여붓는 물의 온기가 오래갔다.

할아버지가 가지고있는 보온병은 두 개다. 하나는 더운물용, 또 하나는 냉수용. 세수를 마친 할아버지는 아침식사 전에 커피믹스를 한잔 타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참, 한 가지가 빠졌다. 호흡기에 문제가 있어서 늘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할아버지는 기관지 확장제와 같은 약물을 가져다 드려야 한다. 두 종류의 것을 하루에 네 번 정도.


할아버지의 말년의 삶은 정말 고단했다.

평생 피운 담배 탓인지 망가진 폐로 인해 기계소리 요란한 산소발생기와 마스크를 항상 달고 살아야 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서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할아버지의 마음이었다.

할아버지 눈에는 모든 것이 다 못마땅했다. 못 치는 솜씨로 키보드를 퉁탕거리며 애국가와 동요를 쳐대는 옆방 할아버지도 못마땅하고, 소파를 차지하고 낮잠을 자는 또 다른 할아버지도 욕지거리의 대상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케어기버의 케어 수준이 영 못마땅했다.

틀니 때문에 씹기가 어려운 육류 반찬을 해준다고 불만을 터뜨렸고, 할아버지 빨래만 따로 빨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셨다. 방청소를 하다가 본인이 놔둔 자리에서 잡동사니들이 조금만 자리를 바꾸어도 잔소리를 하셨다.

어느 날은 아침식사시간에 우유 대신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다고하셨다가  또 어느 날은 사과주스를 마셔야겠다고도 하셨다. 


할아버지는 본인의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는 만큼 원하는 것이 많아지고 다양해졌고 그것이 제때 충족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셨다. 

점점 자주 내는 화는 할아버지의 얼굴도, 혈색도, 하루하루의 일상도 바꾸어버렸다.




라이센스를 받고 시설을 오픈했는데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자 나는 그 시간에 경험을 쌓기로 하고 미국 시설을 찾아가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찾아가서 내가 했던 주된 일중 하나는 두 사람의 케어기버를 쉐도잉 하고 도우면서 실제로 어떻게 케어가 이루어지는지 경험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레지던트 중 한 분의 친구가 되어드리는 일이었다.


60대 중반의 백인 아줌마 켈리. 그녀는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젊은 분이었는데 전직 유치원 선생님이셨다. 

켈리는 엉덩이가 무척 큰 전형적인 비만여성으로 스트로크로인한 전신 마비가 와서 윗몸과 한 팔을 제외한 나머지 신체를 전혀 움직이질 못했다. 

내가 아침 10시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든 노인들이 아침 케어와 식사를 끝내고, 한가롭게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켈리에게는 그때부터가 베드 베스 시간이었다. 

말 그대로 침대에서 하는 목욕이다.

케어기버는 켈리의 옷을 벗기로 타월로 몸을 덮은채 더운물과 바디워시로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씻긴다. 그렇게 전신을 씻기고나면  다시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이고 새 옷으로 갈아입힌다.

유쾌하게 말을 걸며 열심히 자신을 씻기고 있는 젊은 케어기버에게 켈리가 늘 하는 말이 있었다.


"나는 오늘도 또다시 새로 태어나는구나.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

늘 하는 베드 베스이고, 늘 하는 멘트이지만 그 말을 할 때의 켈리의 모습은 한결같이 환하다.


그렇게 목욕이 끝나고 새로 깔린 침대 시트 위에 누운 켈리는 오늘도 찾아와 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부터한다.

나는 감각 없는 켈리의 두 다리를 물리치료사가 벽에 붙여놓은 운동 순서대로 이리 돌리고 저리 구부리면서 그녀에게 지난 며칠 동안 별일 없었는지 묻는다. 켈리는 그동안 딸이 왔었노라고, 딸이 자신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갔노라고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해준다.


그녀는 사실 심한 우울증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왜 안 그렇겠나? 

아직 많이 늙지 않은 나이에 중증 마비 환자가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켈리는 늘 웃으려 애썼고 늘 삶의 생기를 찾으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매일 하는 베드 베스도 그녀에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멋진 행사였고, 일주일에 두번 오는 낯선 방문객도 오랜 친구처럼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석 달 뒤 나에게도 돌봐야 할 어르신이 생기는 바람에 켈리와의 인연은 중단되었지만 그녀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노년의 삶은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그동안 자신을 지탱해주었던 '자신 다움'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어렵고 힘들어지는 낯선 나에게 재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각한 노인성 질병이나 장애를 갖게 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경험적으로, 이때 많은 노인들이 좌절과 우울을 경험하면서 그 부정적 감정을 자신과 주변에 쏟아내는 것을 본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후회하고 회한에 젖고 가족과 주변을 원망하고 비난한다.


하지만 가끔 다른 모습을 보이는 분들을 본다.

망가진 몸일지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안 들리는 귀를 탓하지 않고 그저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방의 말에 애써 반응을 해주고, 켈리처럼 순간순간 살아있음을 기억하고 느끼려고 하는 분들 말이다.


삶의 선택은 젊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순간순간의 선택은 삶이 지속되는 한 이어지게 되어 있고 그 선택의 결과는 늘 나 자신의 삶을 결정하게된다.

늘 불같이 화를 내며 더 힘들게 하루를 살 것인지, 아니면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일지라도 웃으며 의미를 부여하며 오늘을 살 것인지... 




할아버지는 자신의 오줌통이 늦게 비워졌다는 이유로, 자신의 틀니를 소홀히 다루었다는 이유로 경찰을 부르겠다는 소동을 피우기도 했고, 케어기버 한분이 끝내 못 견디고 그만두게 하고는 자신도 다른 시설로 옮겨가셨다. 

그분은 옮겨간 시설에서도 별로 평안하지 않으셨다는 풍문이다.


켈리는 딸이 좀 더 자주 엄마를 찾아볼 수 있는 딸 집 근처의 시설로 옮겨갔다고 들었다.

나는 켈리가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딸의 가족들과 함께, 남은 여생을 평화롭게 살 것이라 믿는다.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켈리가 평화로운 하루하루의 삶을 구슬을 꿰듯 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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