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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May 18. 2021

어떤 의미일까?  닭고기 상자

왜  자꾸 갖다 줄까? 받아도 될까?

"미세스 리, 나 000 할머니 아들이에요."

(앗, 할아버지가 왜 또 전화를 하셨지?)

"아, 안녕하세요? 제가 병원에 와있어서 전화 주신 것을 이제 봤네요. 어쩐 일이세요?"

"닭고기 필요하세요?"

(지난번에도 가져다주셨잖아??)

"아, 예, 왜 그러시는데요?"

"필요하시다면 좀 갖다 드리려고요. 땡큐 하시면 갖다 드리고 노 땡큐면 그냥 말고요.ㅎㅎㅎ"

(이걸 어떻게 대답하지?? 닭고기야 땡큐지만 이유 없이 또 넙죽 받기는 좀 그렇잖아, 쩝.)

"아이코, 닭고기야 늘 필요한 거지만 할머니도 우리 집에 안 계신데 이렇게 자꾸 어떻게 받아요?"

"괜찮아요. 어머니는 안 계셔도 거기 노인분들 드리고 싶네요."

(할아버지 천사표인가? 아님 두고두고 미안해서? 아님 우리 집에 다시 오시고 싶어서?)

"말씀은 너무 감사한데 자꾸 이렇게 받기가 좀..."

"ㅎㅎㅎ 이미 집에 가져다 놓았어요. 요리해서 노인분들 드리세요."

(앗, 뭐야, 벌써 갖다 놓으신 거야??)

"미세스 리가 잘해주셔서 그런 거예요. 전화 끊을게요."





90대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아들은 70대인 자신의 체력으로는 더 이상 어머니를 돌보기가 어려웠다.

할머니의 담당 케이스 매니저에게 자신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우리 집의 전화번호를 얻은 뒤 할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했었다. 

나는 메디케이드를 가지고 있는 분이 Assisted Living에 오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케이스 매니저에게 무엇을 신청해달라고 해야 하는지,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열심히 설명해드렸고 할아버지는 내 코치를 받으며 절차를 밟아나갔다.

그렇게 몇 달에 걸친 수속을 마치고 드디어 할머니는 Community option waiver를 받아 우리 집으로 입소하기로 결정되었다.

할머니의 입소일은 우리 부부가 서부 여행을 다녀온 이틀 뒤로 잡혔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하지만 여행 중이던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아야 했다.

" 미세스 리, 000 할머니 아들이에요. 미안한 전화를 하게 되었어요. 가족들이 거기보다는 데이케어까지 같이 운영하는 다른 곳으로 어머니를 보내야 한다고 우겨서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요. 게다가 어머니가 많이 안 좋으세요"

"???? 어떻게 그렇게 결정을 하셨어요? 데이케어 때문에 그러셨나요?? 할머니가 안 좋으시다면서 데이케어까지 보내시려고요??"

"그냥 그렇게 되었어요. 이해해 주세요.."

"아쉽지만 할수없지요, 뭐. 가족들이 그렇게 결정하셨고 할머니에게 그곳이 좋다고 판단하셨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잘 알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전화는 우리의 여행을 휘청거리게 했지만 그렇게 결정했다는데 무슨 말을 하랴.

다행히 여행 중이어서 나는 쉽게 털어 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있던 어느 날.

누군가가 현관 벨을 눌러 나가 보니 바로 000 할머니의 아들, 그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할아버지 발밑에는 라면상자보다 더 큰 상자가 놓여있고.


"어쩐 일이세요???"

"아, 지나가다가 뭘 좀 드리고 가고 싶어서 들렀어요."

"??????"

"닭고기예요. 그냥 드리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안녕히 계세요."

"?????, 아, 예, 감사합니다. "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출현과 다른 것도 아닌 닭고기 선물에 나는 무척 황당했다.

나는 몇 마디 하고 돌아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큰소리로 외쳤다.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이런것 안가져 오셔도 되요. 언제든지 궁금한 것 있으면 전화하세요."


처음, 닭고기 상자를 받아 들고 나는 그것을 할아버지의 '미안함과 사과'로 해석했다.

사실 할아버지와 그 가족이 한 행동은 신의를 저버린, 경우가 없는 행동이었다.

아무리 시설을 선택해서 입소하고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Resident's Rights'가 있다고 하더라도 몇 개월에 걸쳐 입소 수속을 도와드렸는데 입소 이틀 전에 취소하고 다른 곳으로 입소한다는 것은 오십 번 백번을 이해한다고 해도 입맛 쓴 일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지 않나. "그냥 이해하고 빨리 잊어버리는것이 상책."이라고 잊고있었는데 난데없이 닭고기를 들고 나타나신거다.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닭고기는 할머니건에 대한 사과의 의미가 분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흔쾌히 할아버지의 사과를 받아들이기로했다.

그리고 정말 깨끗하게 잊어버렸었다.


그런데,,, 오늘 또 닭고기를 들고 오신 거다!!!

왜 자꾸 닭고기 선물(?), 아니 도네이션을 가져오시는 걸까???

아직도 미안함이 남아 있는 것일까?

마지막에 내가 잘해줘서 그런다고 했으니 그동안 나의 인내심 있는 친절에 감동했었던 걸까?

아니면 할머니가 있는 곳에서 할머니나 보호자인 그 할아버지가 푸대접을 받고 있나?

아니면 우리 집에 오지 않은 것을 엄청 후회하고있나?

아니, 그것도 아니면 가족 중에 누가 닭튀김집을 해서 닭고기가 남아도나?


에잇, 모르겠다. 

이번까지는 이유를 모르는 닭고기지만 그냥 받아두어야겠다.

내가 잘해줘서( 뭘 얼마나 잘해줬는지 잘 모르겠지만 ) 그런다고 하니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하지만 뚜렷한 이유없이 입소 번복했던 때처럼 이유없이 받는 닭고기 선물도 불편하다.

해서 다음번에는 할아버지에게 이유를 꼭 물어보려한다.


"저에게 무슨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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