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와 코코 둘 다 행복하기를.
모든 일과가 끝난 늦은 저녁, 어르신 몇 분과 내가 가장 즐겨보는 티브이 프로그램은 단연 동물 프로그램이다. 재미 위주의 프로부터 시작해서 개들의 문제행동 수정까지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들어지는 작은 아쉬움과 안타까운 순간들이 있다.
바로 덩치 크고 활동적인 큰 개들이 작은 아파트와 같은 협소한 공간에서 키워지면서 그 녀석들이 하루 종일 빈집에서 사고를 치는 장면을 볼 때다.
"왜 저 견주는 하필 저 큰 사냥개를 저 좁은 공간에서 키우기로 결정한 것일까?"
그 견주가 자신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좋아하는 견종을 선택한 것이나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 그 사람에게 선택된 그 큰 개의 만남은 그저 운명의 장난이라고 할 수밖에...
강아지 보리는 우리 식구들에게는 첫 경험 반려견이다.
이전에도 한번 잠시 머물었던 강아지가 있었지만 이렇게 완전히 집안 강아지로 키우기는 처음인 거다.
그러다 보니 다른 강아지들도 보리와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생각해오고 있었다.
산책을 좋아하지만 못 나가도 패드나 뒷마당에서 대소변을 할 줄도 아는,
늘 우리 곁에 있고 싶어 하지만, 떼어놓고 외출해도 조용히 기다릴 줄 아는, 잠 많고 순둥이 같은 강아지.
8주 된 강아지였던 보리는 처음 데려오는 차 안에서부터 별소리가 없었다. 그다지 낑낑거리지도 않았고 종이상자가 열리고 처음 마주한 환경에서도 벌벌 떨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보리의 탈장과 중성화 수술 때도 그랬었다.
겨우 6개월 전후의 강아지가 수술과 만 하루 동안의 동물병원 입원 후에도 크게 다른 모습이 아니었다.
누구네 강아지는 수술을 위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간 주인품에 다시 안기지 않으려고 했다는데 보리는 그런 소심한 반항도 없이 그저 아프고 기운 없는 모습으로 내게 더 푹 안겨올 뿐이었다.
그런 보리의 하루 일상은 창틀 앞 소파 등받이에 올라가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끔 지나가는 동네 큰 개들을 보면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짖어대거나 앞마당을 휘젓고 다니는 토끼나 청설모,사슴들을 보고 짖어대는 게 고작이다.
어떤 때는 그조차 흥미가 없는지 스누피처럼 누워(스누피가 하늘을 보고 눕는다면 보리는 배를 깔고 눕는다.) 느긋하게 햇빛을 즐긴다.
무엇보다도 그런 보리 곁에는 하루 24시간 항상 사람들이 있다.
강아지 코코는 딸과 사위가 키우는 강아지이다.
차분하고 말 잘 듣는 보리를 보고 강아지를 키우기로 마음먹은 딸과 사위는 코코를 데려왔다.
보리가 몰티즈와 비숑 믹스라면 코코는 몰티즈와 푸들 믹스견이다.
믹스견들에게 있어 몰티즈는 아마도 우성인자인지 보리와 코코의 모습은 형제라고 할 만큼 닮았다.
둘의 성격이 천양지차인 것만 빼고.
엄마 아빠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람들에게 무심한 편인 보리에 비해 코코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다가가고 안긴다. 우리 집에 한 번씩 맡겨지는 코코는 시골 외갓집에 온 개구쟁이처럼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놀자며 보채고 안긴다.
한두 차례 파양을 경험한 것 같은 코코는 차에 타는 것을 너무 무서워하고 혼자 남겨지는 것을 못 견뎌한다.
그런 코코에게 있어 아파트에 혼자 남겨지는 시간은 악몽 그 자체인듯하다.
새로운 직장에 나가기 한 달 전, 딸아이는 그런 코코를 적응시키기 위한 만반의 준비와 훈련에 돌입했다.
편안히 자면서 쉴 수 있는 아늑한 집과 숨겨진 간식을 찾으며 혼자 놀 수 있는 장난감들, 그리고 한 시간씩 늘려가며 집을 비워 혼자 있는 시간에 적응시키기 훈련 등등.
온갖 티브이 프로그램과 유튜브 영상자료, 경험자들의 조언까지 들으며 준비한 적응훈련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 실패.
카메라에 비친 코코는 혼자 남겨진 30분 이후부터 낑낑대며 울기 시작했고 종래에는 콧물이며 눈물, 침으로 범벅이 된 채 도저히 혼자 두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거의 패닉 상태 같다고나 할까.
여기서 보리와 코코의 희비가 엇갈린다.
주변 사람들에게 대체로 무심한 보리는 하루 24시간 사람들이 북적대는 공간에서 지낸다면, 오히려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는 코코는 딸 부부가 출근을 하는 낮동안 홀로 지내야 하는 운명에 놓인셈이다.
코코는 딸 부부가 집을 비우는 순간부터 잔인한 자신의 운명에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없이 출근을 시작한 딸은 그런 코코를 위해 데이케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적지 않은 비용에, 알 수 없는 설사병에 걸리는 등 데이케어 이용의 부담이 있지만 절대로 혼자 있을 수 없는 코코의 성격상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어쩌겠는가, 데리고 왔으니 책임을 져야지...
그러고 보면 사람뿐이 아니라 동물도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가 보다.
그 운명이라는 것의 다른 이름은 바로 '성격과 주어진 환경'일 터.
예민하고 발랄한 코코가 낮동안 아무도 없는 아파트에서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참 잔인한 일이다.
반면 무덤덤하고 차분한 보리가 왁자지껄 시끄러운 집에서 늘 지내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 좋아하고 안기기 좋아하는 코코와 무심한 듯 혼자 있기 좋아하는 보리의 삶의 환경이 이처럼 온전히 뒤바뀌어주어 진 것은 그저 운명의 장난이라고밖에 할 수 없겠다.
두어 주 전 다니러 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차속에서 코코가 안절부절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북적대던 사람들이 멀어지고 다시 딸 부부만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코코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이든 강아지이든 세상에 태어나 최적의 환경을 누리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테니 그러려니 해야겠지. 그것이 최선이겠지.
몇 주 뒤에 코코가 중성화 수술을 받을 예정이란다.
수술 뒤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데이케어도 쉬어야 하는가 보다.
혼자 있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데다 수술까지 한 코코를 집에 혼자 둘 수는 없을것이다.
안그래도 예민한 녀석은 누군가의 온전한 돌봄이 필요할것이다.
코코를 늘 짠하게 바라보던 내가 돌봐주기로 했다.
어렵게 부탁을 하는 딸에게 흔쾌히 승낙을 하며 이렇게라도 나와 우리집이 코코에게 외갓집이 되어줄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