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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an 22. 2022

중매라니? 데이팅앱이 있는데.

젊은이들의 일은 그들에게 맡겨야

어느 날 일구덩이에 빠져 사는 나를 친구가 불러냈다.

같이 공원 한 바퀴를 걷는 동안 나는 지난 한 달간 얼마나 고달팠는지 주저리주저리 읊어댔고 친구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는 2년 전 결단력 있게 하던 일을 접고 은퇴를 한바여서 현업에 허덕대고 있는 내 하소연은 몇 년 전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란 모름지기 주고받는 것. 공원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던 친구는 막바지에 슬그머니 아들의 연애 이야기를 꺼냈다. 가벼운 스몰토크라면 공원 주차장에서 헤어지며 들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노총각 아들의 여자 친구 이야기라면 그렇게 들을 일이 아니지 않나.

나는 자리를 옮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이어진 대화 가운데 나는 친구 아들 중매라는 해서는 안 되는 주책을 부리고 말았다.




 삼십 대 중반의 친구 아들은 전문직의 젊은이다. 좋은 대학과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인근 몇 개 주의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전문직의 연봉에 못지않은 수입이 있는 전도양양한 젊은이.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너무 빨리 성글어지기 시작한 머리칼과 순둥이처럼 생긴 외모.

친구는 아들이 부유한 집안의 전문직 여성과 만나면서 있었던 일들을 소상하게 이야기하며 은근히 자존심 상해했다. 두 전문직의 남녀가 각각 자신들의 홈그라운드를 포기하지 못하고 주말부부 운운하는 것은 그 두 사람이 죽고 못 사는 관계는 아니라는 것.

친구는 아들의 외모가 미적지근한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

친구의 이야기에 감정 이입하며 듣고 있던 나는 불쑥 내 안의 대책 없는 오지랖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머리칼이 성근 게 뭐 그렇게 큰 단점이겠어요, 사람이 성격이 좋으면 되는 거지 외모가 뭐 그리 중요해?"

"가만있어봐요, 내 딸 친구도 있고 내 친구의 딸도 있으니 내가 한번 알아볼게요."


일은 저질러졌다. 아들의 뜨뜻미지근한 여자관계를 지켜보던 친구는 아들이 끝내 그녀와 정리를 하자마자 내게 아들의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흠흠흠... 대학원 졸업사진은 멋진데 최근 사진은 좀 연식이 되어 보이네... 그래도 성품이 좋으니까."

나는 내딸에게 사진을 다시 보내고 딸의 절친 중 한 명에게 의향을 물어보라고 채근했다.

딸 친구 A도 지금 싱글이라고 했고 '내가 보기엔 더없이 좋은 며느리감'같으니 그 둘이 이어지면 환상적일 거라 혼자 흐뭇해했다.  "이러다가 중매 턱 얻어먹겠는걸"라고 김칫국부터 마시면서.


"엄마, 00가 이런 식의 소개는 많이 부담스럽대. 모임이나 파티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면 모를까, 친구 엄마가 소개하는 것은 정말 부담스럽다네. 다음에 기회 되면 만나보겠다고..."

헉, 이런,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우리 집에도 종종 오고 나하고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 친구라 나는 흔쾌히 만나보겠다고 할 줄 알았다.

조금의 실망과 당혹감으로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 그만두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오기가 나서 팔을 더 걷어붙이고말았다.


이번에는 딸이 있는 나의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 딸 B 역시 싱글로 나이도 얼추 비슷하니 맺어지면 좋을듯싶었다. 친구 역시 가끔 딸의 소개팅 이야기를 했던 터라 내가 소개를 한다고 하면 좋아라 할 것 같았다.

내 소개 제안에 친구는 싫지 않은 기색을 보였지만 딸 가진 엄마로서 무척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도 그 시점이 되니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만약 둘이 잘 안 되면 내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청년의 사진을 보내주고 처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아 건네주었다.

"나는, 아니 우리 엄마들은 그냥 매치닷컴 역할만 한 거예요. 둘이 만나 잘되고 안되고는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에요."라고 내가 강조했던것은 중매(소개) 쟁이로서의 심적 부담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일주일 남짓이 지난 어느 날, 아들 가진 친구와 만난 자리.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들이 교회 친구에게서 그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인스타를 봤나 봐요. 그러면서 그러네요, 저에게는 안 맞는 사람 같다고요."

"엥, 이건 또 무슨 말? 이름만 가지고 인스타를 먼저 본거야? 인스타에서 본 그 아이가 어땠는데?"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서로 취양이 많이 다르다는데야 무슨 말을 더 보태랴.


나는 어렵사리 총각의 메시지를 아가씨의 엄마에게 전했다.

"00가 센 언니라고 청년의 교회 친구가 말했나 봐요, 아예 만나볼 엄두도 못 내네."

"그래요?, 흠,,, 그건 그래, 우리 00가 좀 개성이 강하지, 할 수 없지 뭐, 수고했슈~"

친구는 애써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딸 가진 엄마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아는지라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것일까??ㅠㅠㅠ"

"아니, 남자 녀석이 그런다고 아예 만나보지도 않는단 말이야? 멋대가리 없기는 쯧쯧쯧..."

나는 괜히 총각을 소심쟁이로 몰면서 내 불편한 마음을 그 친구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민 사회는 정말 좁다.

중간에 이사를 온 경우라 하더라도 킨더부터 초중고대학을 거치며 그들의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 공간에서 친구관계를 형성해나간다. 같은 학교는 물론이거니와 한인 커뮤니티의 교회와 성당 청년부는 그들이 만나고 교제하고 인연을 만들어나가는 공간이다. 이번의 경우도 이미 이리저리 엮여있는 젊은이들을 엄마라는 역할자의 중재로 인위적으로 엮어보려 하다가 왕창 민망해진 경우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은 나의 시대착오적 오지랖에서 빚어진 일이다.

교회나 성당의 청년부는 이미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현대사회에서의 종교의 역할에 등을 돌린 많은 젊은이들은 교회조차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 젊은이들은 어디에서 만남을 시도하는가?? 

바로 온라인이다. 

온라인상 전문 데이팅 앱을 통해서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잘 맞을 것 같은 상대를 찾고 몇 번의 메시지를 교환한 뒤에 그들은 오프라인의 만남을 시도한다. 이미 젊은이들이, 아니 젊은이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싱글들이 그렇게 자신의 짝을 찾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현실을 간과했다.


내 친구들의 아들과 딸은 각각 너무 멋진 아이들이다.

자신의 외모를 유머러스하게 받아넘길 줄 아는, 조금 보수적이지만 자신의 전문영역에 자부심을 갖는 젊은이.

빼어난 외모와 개성을 가지고 과감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현재적 삶을 누릴 줄 아는 감성적 젊은이.

그 둘의 만남은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이루어지기 어려운 캐릭터들이었다.

그들이 데이팅 앱을 통해 알게 되었다면 그들은 각자의 프로필을 먼저 살피고 어떤 가치관과 삶의 방식과 태도를 갖는지 미리 확인하고 쿨하게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백 년 전의 방식으로 만남을 주선하려고 했던 내 오지랖이 그들에게 불편함만 남겨준것같다.

친구 딸이 그 이후 자신의 인스타를 친구만으로 공개 제한한 것만으로도 짐작되고 남는다.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나의 주책으로 그들의 삶이 위축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랄뿐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색깔을 그대로 꽃 피워나가기를,

내가 만든 작은 회오리가 그들을 좀 더 유연하고도 자신답게 만들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시대에 중매란 빛바랜 로맨티즘일 뿐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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