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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May 20. 2021

빨간눈의 매미, 드디어 나타나다.

17년만의 매미 떼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몇 주 전부터 동네의 이웃집 마당에서 이상한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키의 나무들을 흰 망사 천으로 뒤집어 씌워 싸매어 놓은 것인데 그 용도가 아리송했다.

동네의 터줏대감인 사슴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인가? 

어느날 뒷마당 자두나무의 새순이 뜯어먹힌것을 보고는 나도 뭔가로 씌워놓아야겠다고 궁시렁거렸었다.

게다가 흰 망사 천으로 씌워놓은 나무들이 주로 어린 나무들인것을 보고 당연히 사슴때문일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슴 때문이 아니라 떼거지로 몰려 올 매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란다.

일명 Brood X이라 불리는 매미들.

녀석들은 무려 17년 전에 태어나 땅속에서 그 세월을 견디고 올해, 그것도 지금부터 탈바꿈을 시작하고 있다.


며칠 전 동네 산책길에서 발견하기 시작한 그것들의 흔적.

마당에 오래된 큰 활엽수 두 그루가 서 있는 집 앞 도로에 점점이 무엇인가가 어지럽게 찍혀있다.

정체는 알수없지만 지나다니는 자동차 바퀴에 깔린 흔적이다. 

저게 뭐지??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하,,,땅속에서 나온 매미가 완전한 성체가 되기전의 모습으로 깔려 죽은 흔적들이다.

몇몇 녀석들은 차바퀴에 깔릴 운명을 피해 가까스로 살아남아 꿈틀거리거나 기어가고 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집앞을 지나 몇 집을 건너가다 보니 커다란 나무 두 그루에 매미들이 매달려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떤것은 성체 전의 모습으로, 어떤것은 날개를 가진 성체로, 어떤것은 빈 껍질만 붙어있다.

한 나무에 너무 많이 붙어있어서 "악"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니, 이 많은 매미들이 그 나무에 붙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 그 알들이 '바로 그 나무 밑'을 파고든다면 과연 그 나무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인간에게 해가 없는 곤충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많으니 징그럽고 걱정스럽게 보인다.



집에 돌아와 얼른 검색을 해본다.

Brood X이라는 매미들.

주로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올여름을 강타할 거라고 한다.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보았던 검은색의 넙적한 모양이 아니고 붉은 눈을 가진 기다란 놈이다.

낯설다. 


그 녀석들이 지금 막 변태를 하고 나무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많이 붙어있는 나무들은 주로 나이 든 활엽수들이다. 

커다란 나무둥치에 붙어 한동안 짝을 부르는 노래를 부르다가 짝짓기를 하고 갈라진 나무껍질 사이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러고 나면 그 알들은 다시 그 나무 밑동의 땅속으로 들어가 그 나무뿌리의 진을 빨아먹으며 산단다. 또다시 17년동안.


그러니 사람들이 어린 나무들을 망사 천으로 뒤집어 씌워서라도 보호하려고 할 수밖에.

늙은 나무들이야 매미 수백 마리쯤 붙어 진을 빨아대도 견딜만하겠지만 어린 나무들에게는 치명적일 것 같다.


우리 집에도 어린 과일나무들이 여덟 주나 된다.

감나무, 자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포도나무들이다. 

이제 겨우 자리잡아 이파리 몇 개 달랑 달고 있는 대추나 밤나무뿐이 아니라 두해 묵은 감나무도 어린아이 키만큼도 못 되는 어린것들이다.

이제 막 지지대를 타고올라가는 어린 포도나무잎에도 매미의 빈 껍질들이 이곳저곳 붙어있다.

나무마다 사각 울타리를 쳐주면서까지 사슴들로부터 지켜냈는데 이번엔 매미들로부터 지켜내야할판이다.

우리도 흰 망사천을 사다가 포대기로 싸듯이 한그루 한그루씩 싸줘야할지 고민중이다.


우리가 미국에 오기도 전에 이곳에서 태어나 땅속에 숨어든 녀석들이니 17년 전 녀석들 이전 세대들의 행태가 어땠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길바닥에 깔려 죽은 녀석들의 흔적과 갈쿠리로 긁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다닥다닥 붙어있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짐작 못할 바도 아니다.

무더운 날, 창문을 열수 없을 만큼 시끄럽게 울어제낄 것이고, 운전하고 난 뒤는 앞 창문에 부딪혀 죽은 녀석들의 흔적들을 긁어내 버려야겠지. 

아참, 온동네 새들은 이번 여름동안 식량 걱정 없겠다.

하지만 올가네와 미리엄네 마당에 걸어놓은 해먹에서 아이들이 한가하게 뒹굴며 지내기는 어려울듯싶다.


올 여름 만나게 될 매미들.

'여름날의 시원한 매미소리'같은 낭만하고는 거리가 먼 기이한 모습들이겠지만 그것도 자연의 순환적 모습일터이니 지켜봐야겠지.


종족번식을 위해 일정 주기로 엄청나게 많은 개체수를 만들어낸다는 Brood X.

자연적인 현상일 뿐 환경변화에 따른 것은 아니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된다.

녀석들이 올여름을 조금 다른 모습의 여름으로 만들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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