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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Apr 24. 2021

우리집 수탉의 비애

인간세상에서 허스키한 목소리의 수탉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우리 집에 수탉이 생겨버렸다!!!


검은색의 멋진 깃털, 붉디붉은 벼슬, 다른 암탉들의 두배는 될 것 같은 몸집.

무엇보다도 아침이면 "꼬끼오"하고 명쾌하게 울어재끼는 위풍당당한 모습.

바로 우리가 데리고 있어서는 안 되는 수탉의 모습이다.


지난번 검순이가 품은 알에서 세 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났다.

검은색, 갈색, 흰색 병아리.

병아리 감별사를 오래 했던 지인은 갓 태어난 병아리들의 날갯털을 펼쳐보더니 모두 암컷들이라고 했다.

너무 어린 병아리들은 불분명한 생식기뿐 아니라 날개 깃털의 모양으로도 성별을 알아볼 수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감별은 33%가 틀렸다. 

셋다 암탉이라고 했는데 그중 검정 녀석이 수탉이었던 것이다.

수탉으로 태어난 것이 무엇이 잘못일까마는 인간세상에 더불어 살자니 문제가 되었다. 

사실 녀석들이 중병아리일 때까지도 성별 구분이 잘 안된다.

거의 성체가 되어갈 때에서야 차이가 나타난다.

암탉은 소담스러운 몸집을 갖는데 반해 수탉은 선홍색의 크고 치렁치렁한 벼슬을 머리에 얹고 점점 몸집이 커져간다. 그리고 그때부터 꼬끼오라고 소리쳐 울기시작한다. 암탉들이 알을 낳고 우는 소리와 다른 소리이다.


" 우리 집 수탉은 참 점잖게 울어. 아무래도 이웃집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아, 많이 조심스럽게 운 단말이야, 기특하게..." 

( 헐, 그럴 리가...)

아침 식탁에서 수탉이 "꼬~꼬끼오~~"라고 시원찮게 우는 소리를 듣던 할아버지 한분이 하신 말씀이다.

할아버지의 말에 짐짓 모르는 척하려다가 어쩔 수 없이 사실을 말해드린다.

" 녀석이 시끄럽게 울면 안 되어서 목에 벨크로로 만든 목걸이를 채워서 그래요."


내가 살고 있는 카운티의 룰로는 일반 주택에서 수탉을 키우면 안 된다.

수탉은 홰를 치며 꼬끼오하고 울기 때문이다. 

아침해가 뜨고 조금 지나면 수탉은 횃대에서 목을 길게 뽑고 목청껏 "꼬끼오~"를 외친다.

주택가에서 울려 퍼지는 수탉의 울음소리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처음 닭을 키우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멋모르고 수탉을 세 마리나 키웠었다.

유정란을 낳고 그것으로 다시 병아리 품는 것을 보고 싶은 참 야무진 꿈을 가졌었다.

어느덧 세 마리의 중병아리들이 멋진 수탉으로 자라자 수탉들은 경쟁하듯이 목청을 뽑기 시작했다.

카우니 룰을 잘 몰랐음에도 왠지 이웃들에게 미안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녀석들이 울기 시작하니 말이다.

고민을 하다가 찾은 방법이 바로 벨크로로 만든 목걸이 채우기.

목둘레에 딱 맞게 조여 채우면 녀석들이 목을 길게 뽑을 수 없어서 한 옥타브 낮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녀석들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목걸이를 채운 뒤 며칠 뒤 어느 날 아침.

우리는 세 마리의 수탉 중에서도 덩치도 가장 크고 멋지게 울던 수탉 한 마리가 아무 이유 없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으면 죽기까지했을까...

아마도 목청껏 울어재껴야 할 본능이 무자비하게 제어된 탓 같았다.

목걸이를 채운 우리가 죽인셈이어서 죄책감이 많이 들고 한동안 마음 불편했었다.

카우니 룰을 모르고 숫병아리를 키운 우리의 무지 탓이었다.


그땐 수탉인줄 알면서 저지른 실수였다면 이번엔 모르고 벌어진 실수였다.

그러면 어쩐다???

계란을 가져왔던 농장에 데려다주어야 할까?

어쩌면 농장에서도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농장에는 비율에 맞추어 수탉을 데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안락사??

몇 년 전 나머지 두 마리 수탉을 가져가던 사람이 사정없이 닭의 목을 비트는 것을 보고 놀라 구입한 '가장 고통 없이, 가장 동물복지적으로' 닭을 잡을 수 있는 도구를 사놓기는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역시 또 벨크로 목걸이뿐이다.

게다가 이번 수탉에겐 두 마리의 절친 암탉들이 있다. 세 마리는 검순이가 품어 같이 태어나, 같이 고난을 겪으며 자랐다. 하도 이모 닭들이 텃세를 해서 그중 한 마리는 이모들에게 쪼여 거의 죽을뻔하기까지 했었다. 

그래서인지 세 마리의 우정은 남다르다. 같이 먹고, 같이 횃대에 올라 몸붙이고 자고, 같이 도망 다닌다. 

목걸이를 찬 첫날, 수탉이 불편해하며 부리로 떼어내려 하자 친구 암탉이 다가와 같이 벨크로를 부리로 쪼아주곤 했었다. 그런 동병상련의 녀석들이었다.

녀석을 농장으로 보내버리거나 없애버리면 나머지 두 마리 암탉도, 수탉도 많이 슬플 것 같았다.




"꺼끼여어어, 꼬오꼬오끼여어어.." 

벨크로 목걸이를 채우자 녀석의 울음소리가 다행이 한 옥타브 낮아지고 조금 작아졌다. 

처음 이삼일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요즈음은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는 것은 인간인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거다. 

수탉은 목을 길게 늘여 뽑으며 목청껏 소리 지르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수탉에게 나는 속으로 한마디 건넨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데 그렇게라도 사는 게 낫지 않겠니, 힘들지만 참자."라고.


어쨌든 다행이다. 우리 이웃들이 우리 집 할아버지처럼 생각해주면 좋겠다.

얼마 전 부활절을 기회로 그동안 열심히 모은 달걀을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유정란이니 맛있게 드시고 부디 수탉의 울음소리를 참고 이해해달라"는 내 메시지를 이웃들이 알아차렸을까??


                                             ( 우리집 검정 수탉의 위풍당당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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