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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May 30. 2021

아줌마의 자전거타기 도전

내 삶의 멋진 시간을 위해서

육십 넘어 처음 자전거에 도전했다육십 넘어 처음 자전거에 도전했다

오늘은 집을 나서지 않을 핑곗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자전거는 이미 차에 실려있고, 날씨는 너무 좋고, 무릎 보호대 같은 기어들도 차에 모두 실려있다.

엊그제 굳게 마음을 먹고 나섰다가 소나기를 만나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차 안에 남겨둔 그대로였다.

그러니 나만 마음먹으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나선 길.

근처 교회의 빈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 트렁크에서 자전거를 내렸다. 

사실 우리 집에는 자전거가 이미 두대나 있다.

하나는 한국에서 남편이 타던 것이고 또 하나는 아들이 대륙횡단의 원대한 꿈을 꿀 때 샀던 비싼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나에게는 버거운 것들이다. 

언젠가 두어 번 시도하려다가 제대로 올라타 보지도 못한 콧대 높은 놈들이다.

처음 자전거타기의 두려움을 줄이려면 안장에 앉았을 때 두 발이 땅에 닿아야 하는데 그 두 자전거는 까치발을 해야 발이 겨우 땅에 닿는다. 그런 상태에서는 두발을 페달에 올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내기가 어렵다.

하는 수없이 좀 더 작은 사이즈의 것을 중고로 샀다. 이를테면 내 연습용 자전거인 셈이다.

필리핀 아줌마가 탔던 자전거라는데 안장을 최대한 낮추면 발 앞부분이 다 바닥에 닿는다. 그녀는 나보다 키가 작았음에 틀림없다. 

그 정도면 용기를 내볼만하다.


"두발의 앞부분이 페달에 얹혀야지돼. 몸은 약간 앞으로 숙인 채 정면을 바라보고."

"처음 페달을 밟으며 동시에 두발의 위치를 잡고 왼발도 페달을 힘 있게 밟아야 앞으로 나아가지."

"가능한 한 몸에서 힘을 빼고 쓰러지려는 쪽으로 핸들을 돌려야 쓰러지지 않고."


같이 나온 강아지는 차 그늘에 누워 둘의 강습 장면을 멀뚱이 보고 있고 남편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

설명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선 말풍선 하나가 그려진다.


"아무리 설명해도 내 몸이 그걸 이해해야지 머리로 이해해봐야 소용없다구."


더운 날씨에 양쪽 무릎과 팔꿈치에 차고 있는 보호대가 걸리적거리고 땀이 차 온다.

마치 처음 수영을 배울 때처럼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몸과 자전거가 자꾸 따로 노는 기분이다.

하지만 남편이 열심히 설명하고 자전거 뒤를 붙잡아주는 만큼 자전거 굴러가는 거리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 이것 봐라!!!, 나는 남편의 도움 없이도 쓰러지지 않고 계속 페달을 밟고 있다.

더 이상 뒤에서 붙잡아주지 않아도 넘어지지않고 휘청거리며 두 바퀴를 굴리고 있는 나에게 한 흑인 아줌마가 엄치척을 하며 "잘하고 있어!!"라고 소리쳐 칭찬을 해준다.

빈 주차장 한 귀퉁이에서 학생들에게 주차 실습을 가르치고 있는 그녀는 차 안에서 아마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얘야, 저 나이 든 아줌마를 봐라, 두 발 자전거도 쓰러뜨리지 않고 잘 몰고 가는데 너는 네발 자동차 아니냐? 더 잘할 수 있을 거야.ㅎㅎㅎ"


그렇게 오늘 내 평생 처음으로 자전거를 탔다.

살면서 자전거를 배울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도전하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이룬 것이다.

저녁 즈음. 

안부전화를 하는 딸에게 나는 오늘 나에게 일어났던 멋진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엄마 오늘 자전거 타봤어. 혼자서도 탈 수 있게 되었으니 조금 더 연습하면 공원에 가서 탈 수 있을 거야."
"엥? 엄마가 자전거를 못 탔어? 그전에 우리 여의도 광장에 가서 식구들 모두 자전거를 탔었잖아?"

"응, 그때도 나는 못 탔어."
"그랬어? 그러면 우리가 자전거 탈 때 엄마는 뭐했어??"

"그냥 너희들 타는 거 봤지. 식구들 짐 들고서, 사진도 찍어주고."

"휴,, 우리가 엄마한테 잘못했네."
"뭘 잘못해? 내가 무서워서 못 탄 건데 뭐~"

"아니야, 지금이라도 타게 돼서 다행이다. 필요한 자전거 기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사주고 싶어."

"그래, 알았어. 고맙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몇 번인가 여의도 광장에 가서 자전거를 탄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자전거를 탈 생각'을 못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내가 자전거를 타 본 적이 없어서, 무섭고 엄두가 안 나서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초등학생, 유치원생인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치고 도와주는 남편처럼 나는 아이들의 옷과 음료수를 들고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내 관심의 초점은 '나의 가족'이었지 '나의 욕구'가 아니었다는 소리다.

나의 무서움을 마주하면서 자전거 타기에 도전하기보다는( 내 개인적 삶에 시선을 두기보다는 ) 자전거를 타는 '가족을 돕는 것'이( 우리 가족의 삶에 시선을 두는 것이 ) 더 가치 있다고 느꼈었다. 

그 덕에 아이들은 일찌감치 자전거를 타게 되었고 아들은 초등학교 내내 그린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여러 번의 멋진 자전거 여행을 경험했었다.

하지만 나는 나이 육십이 넘도록 자전거는 나의 삶 영역 밖이었다. 

산책 중에 만나는, 쌩하고 지나가는 자전거의 맵시 있는 모습은 영원히 나의 로망으로 남을뻔했다.


그런 내가 이제는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육십이 넘어 갖게 된 가족들로부터의 자유와 조금의 용기로 만들어낸 나의 작은 성취이다.

이제 겨우 붙잡아주는 사람 없이도 페달을 밟으며 주차장을 몇 바퀴 돌 수 있는 정도이지만 그런 성취를 해낸 나 자신이 기특하기 이를데없다. 

육십 넘어 자전거라니!!!, 기계치인 내가 자전거를 타다니!!!, 부러움을 현실로 바꾸다니!!!

안 쓰던 어깨 근육과 골반과 사타구니의 통증, 무엇보다도 손잡이의 브레이크를 쥐고 있는 손가락 관절의 통증이 만만찮지만 무리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다.


날렵하게 내차 옆을 지나치던 그들처럼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두 바퀴와 안장에 몸을 얹고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이곳저곳을 달려보려 한다.

봄이면 환한 봄꽃을 스쳐 지나치면서,

여름이면 등에 내리 꽂히는 햇살과 흐르는 땀의 짜릿함을 느끼며,

가을이면 사과향기 진동하는 과수원 옆 샛길을 느리게 느리게 달리고 싶다.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내 머리칼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바람을 마주하고 싶다.

그것은 걸으면서는, 뛰면서는,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전거를 탈 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일 테니까....


그 순간을 위해 지금 나는 '자전거를 타는 용기'를 내고 '그렇게 하고 싶은 나 자신'에 초점을 두려고 한다.

이것이 육십이 넘어 자전거를 타고 싶은 이유이다.

아니, 육십이 넘었기에 찾게 된 욕망과 자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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