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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Oct 16. 2021

이사 갈 때 나도 데려가라는 할머니

오해는 망상을 낳고 망상은 하룻밤 불면을 낳고..

"어젯밤 잠을 못 잤어. 그래서 그런지 갈비뼈 밑 여기가 결리고 아파."

"왜 잠을 못 주무셨어요?"

내 물음에 대답 없이 있던 할머니가 뜬금없는 소리를 하신다.

" 어디로 이사가든지 나도 데리고 가."

"예?. 누가요? 누가 이사를 가요?"

"이사 가는 거 아니야? 어제 왔던 그 남자가 이 집 사려고 왔던 거 아니야?"

"???????"

"어제 남자요? 아하, 어제 오신 분?, 그분은 주말에 일할 새 직원이에요. 집을 사러 온 것이 아니고요."

"그리고 내가 왜 이사를 가요? 여기가 평생 살 우리 집인데요. ㅎㅎㅎㅎ"




할머니가 단단히 오해를 하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직업이 리얼터(부동산 중개업자)였다.

리얼터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매매할 집을 낱낱이 살피고 그것을 적고 가치를 정하고 부동산 시장에 내놓는 것이 그들의 할 일 아닌가.

그러자면 '그 남자'(새 직원)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메모장에 적어야 할 것이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살피고 적는 '그 남자'의 모습에서 할머니는 리얼터의 모습을 보았고 그것은 하룻밤 망상이 시발점이 되었다.


'그 남자'(새 직원)은 인사부서에서 일하다 중령으로 예편한 군인 출신이었다.

나이가 조금 많을 뿐 신체 건강하고 근로의욕 넘치는 파트타임 직원인 그는 오리엔테이션 중이었다.

두 집의 노인분들과 그들의 특성, 해야 할 일과 일들의 순서를 모두 기억하기에는 벅찼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인사과 출신 아닌가.

그의 주 특기인 기록이 이럴 땐 가장 유용한 방법일 것이다.

그는 설명을 듣는 대로 들고 다니는 노란색 writing pad에 열심히 기록을 해나갔다.


전직 리얼터 할머니의 눈에 '그 남자'는 영락없는 리얼터의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남자'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기에는 조금 나이가 많고 부유해 보였다.


평소에도 어느 한 문제에 망상 증세를 보이는 할머니는 자신의 오해를 기반으로 밤새 걱정이 쌓여갔다.


"주인 부부가 이 집을 팔려고 내놓았구나.

그럴만도해, 요즈음 많이 힘들어했잖아. (할머니는 자신의 돈만 되찾으면 내게 한 뭉텅이 주신다 했다.ㅎㅎ)

하지만 그들이 이 집을 팔면 우리는 어디로 가지?

나는?, 다시 살던 곳으로 가야 하나?

아니야, 이사 가는데로 나도 데려가라 해야지."




할머니의 오해와 망상은 나에게 한바탕의 웃음과 되돌아봄의 시간을 가져다주었다.


아,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편안하시구나.

나와 우리들의 돌봄에 많이 의지가 되고 있구나.

할머니가 그렇게 느끼듯이 우리 집의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을까?

욕창과 물집 드레싱을 할 때마다 온갖 욕지거리를 해대는 할머니에게도 충분히 친절하게 하고 있는 걸까?

드라마 한 편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음 편까지 보겠다고 떼를 쓰는 레지던트에게 너무 단호하게 안된다고한것은 아닐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더 굳어버릴까 봐 뒷마당을 헤집고 다니며 일을 벌이는 할아버지에게 '예스'보다는 '노'를 너무 많이 남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나는 노년의 삶에 서있는 그들에게 어떤 이웃으로 서있는 것일까?

항상 친절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의 인권과 존엄을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을 해오고 있는 걸까?


"이사 갈 때 나도 데려가"라는 할머니의 말은 그날 하루 내내 나의 언행을 살피게 했다.

그들이 음식 투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씹고 삼키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드라마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면 밤이 너무 길어진다는 것을.

아픔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언어는 잊어버리고 그저 두렵고 아파서 내지르는 비명이라는 것을.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일 수 있는 허용이, 움직이지 못할 때 잡아주는 도움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을.


이사 갈 때 자신도 데려가라는 할머니의 한마디는 내 돌봄의 새로운 지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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