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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May 26. 2022

물기 머금은 숲길을 걸었다.

Olympic National Park, Lake Crescent 주변

Coast, Forests, Mountains이 어우러져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한 곳에 모여있는 곳, 올림픽 국립공원을 본격적으로 찾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Hurricane Ridge 방문자센터를 먼저 찾아가야 한다. 이틀 늦게 합류한 아들과 여자 친구, 그리고 시애틀에 살고 있는 아들친구까지 한 차에 올라탄 우리는 숙소에서 멀지 않은 거리의 그곳으로 향했다.


방문자센터 입구, 운전석의 사위가 남편의 신분증을 달란다. 왜??? 국립공원 이용 카드를 남편 이름으로 끊기 위해서란다. 이미 senior 반열에 오른 남편 이름으로 구입하면 annual 카드가 아니라 life time카드를 끊을 수 있다나뭐라나. 그것도 80불에 평생을!! 이런 횡재가 있나!! 이제부터 우리는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국립공원 입장료 무료다.

"얘들아, 국립공원 여행 갈 때는 아빠랑 꼭 함께 가라, 아참, 부부는 일심동체이니 엄마도 잊지 말고.ㅎㅎ"


( Hurricane Ridge Visitor Center )


Hurricane Ridge 방문자 센터는 눈이 뒤덮인 겹겹의 산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여기는 아직 겨울이다. 다행히 입구까지의 도로는 괜찮았지만 예정했던 Hurricane Ridge Trail은 눈이 쌓여있어 장비 없이는 걷기가 불가능했다. 우리는 방문자센터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바라본 전망에 만족해야 했다. 눈앞에 펼쳐진 눈덮힌 높은 산들은 그 장엄함에 경외감을 자아냈다. 사실 그날 그렇게 방문자센터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었다. 며칠 뒤 다시 한번 찾아갔을 때는 도로가 얼어서 들어갈 수 없다고 입구를 아예 폐쇄해놓았었다.

   

( 방문자 센터에서 바라본 전경 )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차로 1시간 정도 달려가서 만난 Lake Crescent 근처의 Marymere Falls.

1.5마일 정도 걷는 숲길은 아름드리나무들과 땅 표면 가득히 덮혀있는 양치식물들, 어느 날 기울어지고 넘어져 부러져있는 나무둥치들, 죽은 나무 위에 다시 뿌리를 내리고 커나가고 있는 어린나무들, 그 사이로 활기차게 흐르는 시냇물로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물소리와 새소리뿐인 그곳의 평화와 정적을 깨는 것은 오로지 우리, 사람들뿐이었다. 멀리까지 찾아가 마주한 잘 보존된 숲 속의 광경에 우리는 정신없이 셀폰을 눌러댔다. 


( Marymere Falls 가는 길 )


( Marymere Falls의 모습 )


( 흘러가는 세찬 물줄기, 이끼와 양치식물에 뒤덮힌 계곡 )


( 쭉쭉 뻗은 나무들의 모습, 한컷에 다 담을수가 없어서..)


그곳에서 내려오다 마주친 곰 가족. 자그마한 체구의 검정 엄마곰과 아기곰은 느긋하게 숲 가장자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윤택 있는 검은색 털을 가진 녀석들은 새봄의 연한 이파리들을 맘껏 먹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들을 보기 위해 줄줄이 차들을 세우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던 곰가족은 그곳이 바로 그들의 낙원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새삼스럽게 국립공원이라는 제도에 감사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끝까지 지켜져야 할 자연의 한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탐사하고 보전하며, 그런 가운데에도 사람들이 그 자연을 누릴 수 있도록 트래일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노력들이 고마웠다. 부디 이번 여름에는 그 아름다운 숲들이 폭염과 산불로부터 지켜지기를... 곰가족과 그들의 낙원이 지켜지기를...


(  눈길 한번 주지않고 걸어가던 곰 가족 )



사실 이번 여행에는 아들의 여자 친구뿐이 아니라 아들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도 함께했다. 남자 친구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아들의 여자친구에겐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냈고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는 기회와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숲을 좋아하고 걷기를 좋아하는 아들의 여자친구라니... 우리는 서로 좋은 친구가 될수있을것같은 느낌이든다.

아들의 친구 조나단 역시 간간이 얼굴만 보던 정도에서 같이 밥 먹고 트래일을 걷고 웃고 떠드는 사이 마치 가족이 된 것같이 가까워졌다. 동부에서 공부를 마치고 시애틀의 아마존에서 일을 시작한 조나단도 이곳은 처음인것같았다. 우리 못지않게 감탄하고 즐거워했던 조나단이 이번 여행을 시작으로 올림픽 국립공원을 속속들이 찾아가게되지 않을까?


( 폭포를 바라보며 아이들끼리 담소 )



모든 일정을 마치고 가졌던 Bonfire 시간. 와인과 달콤한 마시맬로를 구워 먹는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아들 친구 조나단이 불쑥 나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조부모가 이민 1세대인 조나단은 미국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은 아버지와 중국에서 성장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어가 제1언어이지만 어머니와 조부모는 중국어가 제1언어이다. 중국말을 못 하는 조나단은 자신의 조부모와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갖고 사는지 궁금했던가보다. 아니, 어쩌면 다른 이민 1세대의 부모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민자로서 당신들의 삶의 성취는 무엇인가요?"

" 흠, 글쎄다. 이민 10년 차 까지는 내가 왜 이민을 왔는지, 내 삶의 성취는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었지. 하지만 15년 차가 넘어가니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또는 성취가 있든 없든 간에 "나는 괜찮다(I'm OK.)"라고 느낀단다. 자, 봐봐, 너희들이랑 이렇게 여행을 왔으니 그것으로 족하지 않니?"


진중한 조나단의 이성적 질문에 너무 감상적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종일 물기 머금은 푸른 숲길을 거닐었던 나는 빨간 모닥불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하고 느꼈다. 삶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사랑하는 가족 이상 더 무엇이 소중할까?, 그 두 존재에 둘러싸인 나는 그것으로 족했다.


( 매일 밤마다 가졌던 Bonfire )


여행을 한다는 것, 그것도 가족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순간인듯하다. 그날 밤 여전히 쌀쌀한 밤공기와 달리 마음속은 따뜻함이 차오르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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