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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May 29. 2022

험난했던 Storm King Trail.

 Storm King Trail에서 만난 고소 공포증

오늘은 우리 여행 중 가장 힘든 코스인 Storm King 트래일을 걷는 날이다.

왕복 5.3마일의 별 다섯개짜리, 1700 feet of elevation의  hard 코스.

Lake Crescent와 Central Olympics을 볼 수 있는 탁 트인 viewpoint가 중간중간에 있다는 소리는 동시에 발밑은 오금 저리는 난 코스라는 소리이다.

이번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가족 여행에서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고소공포증,  여기서 또 만나고 말았다.

그것도 나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아들과 함께말이다.



Storm King이라는 이름은 19세기 작가 Nathaniel Parker Willis가 초기 정착민들이 Butter Hill이라고 부르던것을 Storm King이라고 재명명하면서 불리게 되었단다. 헉헉거리며 올라가던 것을 생각하면 Butter Hill보다는 Storm King이 더 맞는 이름이다. Hill이라니, 거기는 Storm이었다!!



트래일은 처음 5분 정도가 지나면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험난한 코스의 트래일이라도 보통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 트래일은 그저 올라가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트래일은 Storm King 산의 정상을 향하도록 만들어져 있었고 너무 위험한 부분에서 멈추도록 되어있었다. 이를테면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계속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와야 하는 트래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가던 태양인 기질의 사위는 돌아가면 아이스크림을 먹고 말겠다고 웅얼거렸지만 젊은 아이들은 그래도 곧잘 걸어갔다. 

문제는 지난 한 달 보름 동안을 오버타임까지 해가며 일하느라 동네 산책조차 하지 못했던 나의 부실한 체력이었다. 내가 하도 헉헉대며 뒤쳐지는 바람에 남들 세 시간 반이면 다녀온다는 트래일을 우리는 네 시간 반이나 걸렸다.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계속 올라가다 거의 마지막에 도착했을 때였다. 아슬아슬한 곳을 몇 군데 지나왔지만 계속 이 정도면 불량 체력인 나도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잘하면 아이들 앞에서 어깨 으쓱하며 폼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바로 그때 내 눈에 기어올라가야만 하는 작은 돌산과 'End of maintained trail'이라는 표시판이 보였다.

End of maintained라니? 더 이상은 트래일로 다듬어져있지 않다는 소리인가? 그러면 저 돌산을 어떻게 올라가라는 소리지? 저 돌산의 밑은???? 으으윽...

순간 나는 지난해 다녀왔던 캐년 랜드의 낭떠러지들과 그곳에서 느꼈던 공포에 다시금 사로잡혔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빠와 함께 작년 봄, Zion National Park의 Angels Landing trail 에 다녀왔던 아들의 얼굴도 일그러져있었다.



나 : "저 안내판에 위험하니 각자 자기 목숨 알아서 하라네, 나는 내 목숨 안전하게 그냥 여기까지만 할래."

아들 : "나도 그만 갈래요. 나는 잡을 것 없는 돌산은 올라갈 수 없어요."

남편 : "아들, 무슨 소리야?, 너 여기랑 비슷한 엔젤스 랜딩도 갔다 왔잖아."

아들 : "그때는 사람들에 떠밀려서 갔다 왔지만 보아하니 여기가 엔젤스 랜딩보다 더 위험한 것 같아요."

           "게다가 나는 엄마를 보호해야해서요. 히히히.."



그렇게 아들과 나는 기어올라가야 하는 돌산 앞에서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쭈그리고 앉아 일행을 올려 보냈다.

"엄마, 이러고 앉아있으니 우리가 루저 같네요. 히히히.."

"그래, 루저 같다. 히히히, 그래도 괜찮아, 난 잡을 것 없는 절벽 위는 도저히 못 걸어. 다리 힘이 완전히 빠지거든. 작년에도 아주 혼났어. 너도 안 가길 잘했다. 너랑 같이 있으니까 덜 심심하고 좋다. 하하하."

우리 둘은 맘껏 우리의 고소공포증을 합리화시키며 이십여분을 기다렸다. 루저 노릇도 둘이 하니까 할만했다.

장갑까지 끼고 네발로 기어올라가고 다시 엉덩이와 네 팔다리를 모두 사용하며 내려온 남편과 아이들은 마지막 정점에서 내려다본 Lake Crescent의 장관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아름답고 근사한만큼 내 입맛은 썼다.



내려가는 길. 본격적으로 내려가기 전에 우리는 준비해 간 샌드위치를 먹고 가기로 했다.

주섬주섬 각자 먹을 것을 꺼내고 열심히 먹고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새 한 마리가 짹짹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보아하니 잠시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쉬어가는 품새가 아니었다.

우리를 쳐다보며 사뭇 목청 높게 짹짹거린다. 우리가 쳐다보자 더 소리를 높히는게 뭔지 할말이 있단다.

"왜??, 여기서 빨리 비키라고?, 근처에 둥지라도 있나??"

아니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샌드위치를 내놓으라는 거다.

사실 국립공원에서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는 법으로 금하고 있다. 산 지킴이들에게 걸리면 벌금형이다. 그런데 짹짹거리는 녀석의 모습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줄 때까지 떠나질 않고 떠들어대는 녀석에서 식빵 끄트머리를 조금 떼어 주어 보기로 했다.

땅콩알만한 빵조각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놓자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와 익숙하게 물고 갔다.

아무리 금지하고 있어도 사람들이 드나드는 트래일 근처의 새나 다람쥐들은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나 보다. 두어번 더 주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녀석들이 달고 짠 인간들의 음식에 너무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힘든 일정을 마친 날 저녁은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

첫날 도착하면서 코스코와 월맡에서 사다 놓은 기름진 음식들을 꺼내고 와인과 웃음이 있는 만찬을 즐겼다.

사위가 트래일중 먹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아이스크림도 먹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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