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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un 02. 2022

원시 지구 같은 여기는 어디?

Rialto Beach와 Hall of Mosses로의 시간여행

하얀 모래사장 대신 까만 자갈들과 그 자갈돌들이 파도에 부서지고 닳아서 만들어진 손톱만 한 작은 돌들, 또 그 돌들이 부서지고 닳아서 만들어진 검정 알갱이 같은 모래들이 펼쳐져있는 이곳은 바로 Rialto Beach이다.

우리는 오늘 억겁의 시간이 현존하는 Rialto Beach와 금방이라도 숲 속 요정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원시 지구의 모습을 간직한 Hall of Mosses로 시간여행을 떠날 참이다.



차에서 내리면서 바라본 Rialto Beach의 모습은 처음부터 여느 해변들과 많이 달랐다.

이것들은 다 무엇일까? 왜 이 고목들이 이렇게 해변가에 쓰러져있는 것일까? 하나같이 껍질이 벗어져 바닷물에 씻기운듯한 나무들은 마치 누군가의 예술적 의도로 만들어진 것처럼 검은색 해변을 따라 죽 이어져있었다.

또 그곳의 모래사장은 하얀색이라는 고정관념이 무색하게 검은색 자갈들과 바위가 있는 검정 해변이었다.

어른과 아이들 손바닥만한 크기의 납작하고 둥근 자갈돌들, 그 자갈돌들에서 한 발짝 바닷물 쪽으로 들어서면 그보다 한참 작아진 손톱만한 크기의 납작 돌들, 그리고 더 많은 세월 동안 씻기고 닳아서 만들어진 검정색 작은 알갱이들이 해변을 이루고 있었다. 하얀색의 죽은 나무들, 그리고 검은색의 돌들과 알갱이로 이루어진 흑백의 대비는 그곳을 생명 이전의 지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1700년의 어느 날, 북미 서해안 앞바다에서 강도 8.7~9.2 사이의 지진이 발생했다. 그 지진은 30미터 가까이나 되는 엄청난 높이의 쓰나미를 일으켰고 그 쓰나미는 해안가의 키 큰 나무들을 뿌리째 뽑아 내동댕이를 쳤다. 그렇게 쓰러져 파도에 휩쓸린 나무들은 300여년의 세월 동안 바닷물에 씻기고 또 씻겨 지금과 같은 모습의 해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바닷가 길은 1.5마일로 왕복 3마일의 거리였다. 때마침 썰물 때여서 우리는 해안가 트래일을 끝까지 가볼 수 있었다. 오른쪽에는 300여년의 시간을 하얗게 몸에 새긴 채 쓰러져있는 나무들, 왼쪽으론 쉼 없이 밀려왔다 멀어지는 파도와, 그 파도를 맞으며 우뚝 서있는 바윗돌, 발밑에서 달그락거리는 자갈돌과 모래 알갱이들.

Rialto Beach의 파도는 그 시작을 알수없는 어느 순간부터 지금 이순간까지 이렇게 밀려왔다 물러나기를 쉼없이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찾아간 바로 그 순간에도.



바닷가에서 싸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은 우리는 온대 우림의 진수, Hall of Mosses로 향했다.

태평양의 습한 공기가 편서풍을 타고 대륙으로 들어오다가 올림픽 산맥에 막혀 올림픽산의 서쪽에 뿌려지는 비. 그 비들은 일 년 중 여름 한철만을 제외하고 계속 내려 그곳을 우림으로 만들었다.

나무들은 이끼로 뒤덮히고 발밑은 양치식물들로 빽빽한 그곳.

미국 드라마(영화) Twilight의 배경이 될 정도로 부슬비와 물안개의 축축함이 사위를 고요하게 만드는 곳.

쓰러진 나무들과 뿌리째 뽑혀있는 나무들, 이끼에 뒤덮인 나무들의 기괴하고 신비로운 모습들, 이끼들이 잠시 환해진 햇빛으로 녹색에서 연한 노란색으로 바뀌던 순간들.

이곳은 말 그대로 우림으로 뒤덮인, 사진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신비함이 있는 원시 지구의 모습이었다.



난생 처음보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숲의 모습에 내 눈은 더할수 없는 '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하지만 삶에는 늘 'pain and joy'가 공존하는 법.

그 숲 속에서 내 눈은 마치 모래가 너댓개는 들어있는 것처럼 서걱거리고 아파서 애를 먹었다. 아마도 숲을 채우고 있는 이끼류들의 포자 때문이 아닐까 짐작되었다. 처음에는 인공눈물을 눈에 넣어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돌아와 샤워하면서 흐르는 물에 눈을 씻고 나서야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태평양쪽 바닷가인 이곳에서 해물을 먹지 않고 간다면 아쉽지 않을까?

남편과 딸은 근처의 해물 가게에 전날 굴을 주문했었다. 요리가 아닌 날것으로 먹을 수 있는 생굴은 미리 주문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Rialto Beach와 Hall of Mosses를 만나고 온 날 생굴 잔치를 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근처의 월 맡까지 가서 굴까는 칼까지 사고 남편은 본격적으로 굴을 까기 시작했다. 유튜브의 굴 까기 영상을 몇 꼭지 본 남편은 면장갑을 끼고 굴까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굴들은 좀체 입을 열 생각을 안 했다. 삼십여분을 씨름한 뒤 겨우 사람 수만큼 굴을 깐 뒤 한 점씩 맛보는데 그쳐야 했다. 그날 저녁식사의 주 메뉴를 생굴로 했다면 우리 모두 굶을뻔했다. 나머지 굴은 모두 오븐으로 들여보냈다.



또다시 하루를 마무리 하는 Bonfire 시간.

누군가가 물었다. 이제까지 가본 곳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이 어디인지...

나에게있어 가장 아름다운 곳은 단연 Hall of Mosses였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곳은 Rialto Beach였다.

손바닥만 한 큰 자갈돌과 단추만 한 크기와 두께의 작은 돌들, 그것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작은 검정 알갱이 들. 그것은 파도의 비말속 억겁의 시간들이 공존하는 모습, 수천 년 또는 수백 년 시간의 현재적 순간이었다.

그 자갈들과 작은 알갱이들이 파도에 흔들리던 시간들에 비하면 내 한평생은 찰나의 시간이겠지.


여행은 늘 내 존재의 찰나와 그 찰나의 빛남과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오늘도 나는 흐르는 시간 앞에서 더욱 겸허해지는 나 자신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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