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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Aug 28. 2022

일장춘몽 이태리 여행

아들, 너만이라도 즐거운 여행이 되길..

내일 아침, 나는 오늘 밤 근무를 마친 아들과 함께 이탈리아로 날아갈 계획이었다.

두어 달 전에 비행기 예약을 하고, 한 달 전에 기차와 렌터카 등 모든 이동수단과 숙박시설의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그렇게 모든 일정은 확정되고 두주전부터는 세세한 여행준비가 하나씩 되어지고 있었다.


우선 스위스 Zurich도착한뒤 첫날밤을 묵게 되어있던 Spiez를 중심으로 어디를 구경하게 될것인지 살펴보았다. 이탈리아에서는 Florence와 Assisi, Rome, Vatican, Pompeii, Amalfi 등은 어떤지 유튜브도 찾아보고 '걸어서 세계여행'같은 티브이 여행 프로그램도 열심히 들여다봤다. 

모름지기 여행이란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는 거니까..


게다가 이번 여행은 사진에 관심이 있는 아들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아들의 피사체로서의 면모도 갖추어야 했다. 반바지나 청바지 외에 반드시 치마를 준비해야 한다는 아들에게 친구에게서 얻었던 꽃무늬 원피스와 검은색 원피스를 보여주자 그게 아니란다. 사진빨이 좋으려면 그런 구식 원피스나 검은색은 안된단다.

그래서 들른 몰에서 아들은 화려한 주황색 무늬의 치렁치렁 원피스와 스위스의 녹음에 어울릴만한 푸른색 원피스를 찾아내었다. 

이런 이런..., 내 취향 하고는 전혀 아니지만 사진빨을 생각해야 한다는데 어쩌겠는가..

너무나 치렁치렁한 치마 길이를 내 마음대로 줄이는 정도로 투덜거리는 수밖에..


이제 남은 일은 내가 없는 동안 차질 없도록 어르신들 약과 서류들을 미리 준비하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남편과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일만 남았다. 아니, 거기에다 당일 공항까지 아들과 나를 남편이 데려다주려면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야 이미 이골이 난 나 아닌가? 며칠 전부터 준비한 약과 서류들은 차질 없이 완료되었고 막걸리 세병에 기분좋게 직원의 협조도 얻어냈다.


이제 정말 짐만 꾸리면 되었다. 별생각없이 "세면도구와 속옷, 바지 두어 벌과 셔츠들, 잊지 말고 먹을 약도 챙겨야지."라고 생각하던 순간, 무엇보다 여권부터 챙겨야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 여권의 유효기간이 언제였지??"싶은 갑작스럽고도 불안한 의문이 나를 덮쳤다. 

아니나 다를까, 내 여권의 유효기간은... 아아아악... 무려 일 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나있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나는 어떻게 아직 유효기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동안 코로나로 세월의 흐름을 도통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아들은 얼마나 황당해할까?

혼자 여행할 아들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비행기표와 환불이 불가능한 모든 비용들이 아까워서 어쩐다냐?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권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당황스럽고 너무 화가 났다.

매사에 꼼꼼한 편인 내가 저지른 너무 황당한 일로 우리 가족은 하루 동안 멘붕상태에 빠졌다.

남편과 아이들은 비상수단으로 최단시간 내에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방법을 물색하느라 congressman office에까지 전화를 거는 노력을 했다. 얼마나 황당하고 기가 막히면 그랬겠는가.

오히려 당사자인 나는 쉽게 포기했다. 여권은 해외여행의 가장 기본 아닌가....

백방으로 알아보고 수없이 전화를 거는 가족들에게 그저 미안함만 더해갈뿐이었다.


내일 아침이면 밤 근무를 마친 아들이 공항으로 달려갈 것이다. 

아들이 짊어질 배낭에는 새로 장만한 카메라가 들어있을 것이다.

아들이 찍을 사진에는 내가 없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찍히겠지.


"엄마랑은 몇 달 뒤에 가요. 내가 먼저 가서 보고 올게요. 엄마랑 가면 더 좋았겠지만 나혼자 가는 여행도 의미가 있을 거예요." 라고 애써 마음을 다둑이는 아들에게 그저 내걱정말고 잘 다녀오라는 말밖에 할수가 없었다.

"그래, 젊어서 하는 혼자 여행은 인생공부지. 잘 다녀와라. 다음엔 꼭 같이 가자."


적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많은 실수를 경험했지만 이번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은 처음이다.

아무리 바쁘게 사느라고 그랬노라고 합리화를 해봐야 여권이 일 년 이상 만료되어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아무리 이런저런 이유를 대봐야 들어간 비용이 날아간 것이나 내 첫 유럽여행이 날아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어쩌랴, 살다 보면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지.


"나랑 같이 가자고 한 아들, 고맙다. 다음엔 꼭 같이 가자, 멋진 사진 찍고 잘 다녀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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