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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Sep 16. 2022

걸리버 여행기를 다시 읽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우리에게 준 메시지

중학생이던 어린 시절, 독서광에 희귀본 모으기 취미가 있었던 큰언니의 책장에서 나는 '마인국'이라고 씐 누렇게 바랜 소책자를 발견했다. 걸리버 여행기인 것은 분명한데 제목이 마인국이라니??

소인국, 대인국은 있어도 마인국?, 말이 사람처럼 사는 곳인가? 

그랬다. 

걸리버 여행기는 총 4부로 나뉘어 소인국, 대인국, 라퓨타 등, 그리고 말의 나라 편으로 구성되어있다. 

최근에 갖고 있던 e book의 도서목록에서 걸리버 여행기 완역본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내 기억 속에 소인국, 대인국은 동화로, 마인국은 성인용 풍자소설로 엇갈리게 저장되어있던 것을 이번에 정리하고 싶었다. 걸리버 여행기가 동화가 아니라 성인용이라면 저자 조나단 스위프트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결과는?,  늘 고전을 만날 때마다 경험하는 것처럼 "지루하지만 건질게 있는 독서"였다.


무엇보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4부에 걸쳐 전달하고자 하는 일관된 메시지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거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소인국에서는 계란을 어떻게 깰것인가와 같은 너무나 '하찮은'것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거인국에서 소인이 된 걸리버는  거인국 왕과의 대화를 통해 영국과 영국 사람들의 비이성적, 비양심적 행태를 보다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더 나아가 말의 나라에서 주인 후이늠의 입을 통해서는 야후인 사람들이 더 이상 '야후'가 아닌 '사람'으로 존재하려면 선천적 속성인 탐욕과 질투, 교만을 버리고 '이성'적 존재로 거듭나야 가능함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중간에 삽입된 3부의 라퓨타, 발니바비, 럭나그, 글럽더브드립, 일본 여행기에서는 '나는 섬, 라퓨타'를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식민지배를 풍자하기도 하고, 영생하는 자들을 통해 영생하고자 하는 욕망이 사실은 얼마나 절망적인 것인지 등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시종일관 자신의 나라 영국, 더 나아가 이성적 존재라고 우쭐대는 우리 인간들을 적나라하게 비웃고 있는 날카로운 비판과 그 작가적 대범함이었다. 


[... 어떤 높은 관직을 담당하는 사람이 사망했거나 황제의 신임을 상실하여 공석이 되면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들 대여섯 명이 줄타기를 하여 황제와 고관대작들을 즐겁게 해 주겠다고 청원을 내고 이때 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제일 높이 뛰는 사람이 그 자리를 계승하게 된다....]


이 얼마나 절묘한 풍자인가, 줄타기라니!!

이 줄타기는 지금 우리나라 정치계에서도 적나라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 않는가.


["나의 조그만 친구여, 자네는 자네 조국에 대해서 칭찬을 했네. 고관이 될 조건은 사악한 마음씨라는 점을 입증해주었네. 법을 악용하는데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재판관이 된다는 사실도 입증해주었네. 자네 나라에서는 어떤 제도가 시작은 훌륭했지만 결국에는 부패로 인해서 빛이 바랜 걸로 보이네. 자네가 말한 것으로 볼 때 어떤 사람이 어떤 지위를 얻는 데는 그 방면의 학식으로 얻는 것 같지도 않고 귀족들은 훌륭한 인격 덕분에 귀족이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성직자들은 신앙심이나 학식으로 인해서 진급하는 것 같지도 않고, 군인은 국가에 해한 충성심으로 진급하는 것 같지도 않고, 재판관은 훌륭한 판결을 했다고 승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의회의 의원들은 애국심으로써 그 자리로 올라가는 것 같지도 않네. 자네는 여러 해 동안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면서 보냈으니 자네 나라의 악에 물들지 않았으면 하네. 내가 자네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한 바로는, 자네 나라의 인간들은 자연이 이제껏 이 지구상에서 기어 다닐 수 있게 만들어준 벌레들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벌레들이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네."]


걸리버와 거인국 왕과의 여섯 번째 대화 후에 왕의 입을 통해 저자는 신랄하게 영국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1700년대 영국이나 프랑스 등 근대 유럽 국가들이 보인 행태들 역시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 아닌가?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그 측근들, 정치계와 사법계, 언론계 전반을 그대로 지적하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지않나 !!! 

단연 조나단 스위프트의 정확한 비판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3부였는데 이곳에서 보여준 작가의 과학적 상상력은 압도적이었다.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소재가 되었던 광석으로 된 날으는 섬, 라퓨타는 저자의 과학적 상상력의 극치였다.

[날아다니는 섬은 정확한 원의 형태였다.... 밑에서 보면 바닥 표면은 완전히 평평하고 매끄러운 금강석으로 된 판이며 1백80미터까지 그렇게 되어있다.... 그 섬의 중심부에는 지름이 약 50미터인 구멍이 있는데 그곳을 통해서 천문학자들이 커다란 원형의 동굴로 들어간다...... 그런데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은 그 섬 전체의 운명이 걸려있는 거대한 자석이다...... 그 자석의 힘으로 그 섬은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며 여기저기로 이동할 수 있다. 즉 왕이 지배하는 땅의 부분을 향하여 자석의 한쪽으로는 끌어당기는 힘이 주어지고 다른 쪽으로는 미는 힘이 주어진다. 끌어당기는 쪽을 아래로 향하게 하면 섬은 하강하고 반대로 미는 쪽을 아래로 향하게 하면 섬은 상승한다. 자석의 위치가 경사지게 되면 섬의 이동 방향도 경사지게 된다....]


라퓨타가 자석의 밀고 당기는 힘에 의해 움직인다는 설명에서 내가 전기차의 구동원리를 떠올렸다면 비약일까? 일반 차가 가솔린은 태워 그 폭발력에 의해 피스톤을 움직여 구동시킨다면 전기차는 전기로 전자석을 만들어 그 밀고 당기는 힘에 의해 구동되는 것이 아닌가? 

전기차가 일상화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삼백여 년 전에 자석의 힘으로 하늘을 나는 그 무엇인가를 상상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시절에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수있었을까??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화성의 위성에 관한 것이다.

화성의 위성은 포보스와 데이모스 두 개로 모두 아사프 홀이라는 사람이 1877년 발견했다. 화성에 더 가까이 붙어있는 포보스는 공전 주기가 7.66시간이고 데이모스는 30.35시간의 공전 주기를 갖는다. 

( 출처:위키백과)

헌데 이보다 151년 전에 조나단 스위프트는 두 개의 화성 위성과 그것들의 공전 주기를 말하고 있다.


[그들은(천문학자들) 화성 주위를 도는 위성 두 개를 발견했는데, 그중에서 화성 쪽에 좀 더 가까운 것은 화성의 중심에서부터 화성 직경의 세 배 되는 거리를 유지하고 바깥쪽에 있는 위성은 다섯 배 되는 거리를 유지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앞의 위성은 10시간마다 한 번씩 화성을 회전하고 뒤의 위성은 21시간 반마다 회전한다는 사실 역시 알았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무려 150여 년 전에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인터넷에 떠도는 것처럼 그는 시간 여행자인가?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든 발견과 창작이 상상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걸리버 여행기는 여실히 보여준다.




내 어린 시절 동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익숙했던  걸리버 여행기는 사실 성인용이다. 

그것도 지독한 풍자소설이다.

이성을 가진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스스로 우쭐대는 성인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고 혹독하게 다그치는 풍자소설이다. 그런 맥락에서 '말의 나라'는 어쩌면 걸리버 여행기의 핵심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인다.

이성적 존재 후이늠을 통해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고나 할까.


먹고살만하면서도 남의 것에 탐욕을 보이고 서로 미워하며 질투하는 '야후'의 속성을 가진 우리들이 천성적으로 덕성을 지향하고 악이란 것을 모르는 이성적 동물인 후이늠처럼 이성을 고양시키고 이성의 지배에 따라 행동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걸리버 여행기 출판업자가 감옥에 갇히고 금서로 묶였던 것이 이해되고도 남았다.

지금 읽어도 넌덜머리나는 현실의 정치와 맞아떨어지는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걸리버 여행기에 내가 무릎을 치며 공감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완역본을 정독했으면 싶다.

누구보다도 현실 정치와 사회제도에 지친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그것이 조나단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를 쓴 이유였기 때문이다.


[이성에 따라서 행동하는 후이늠들은 그들이 소유한 훌륭한 덕성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는다. 마치 내가 팔다리를 가졌다고 해서 자랑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팔다리가 없다면 아주 불행한  일이 되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있다고 해서 자랑하지 않는다. 내가 이 주제에 관해서 이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하나의 야후에 불과한 나 자신이 살아가는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살 만한 것으로 만들려는 소망 때문이다.]


삼백여 년 전 우연히 '이성'을 갖게 된 한 야후의 진심 어린 충고와 조언이 현대를 사는 우리 모든 야후들의 '이성'에서 싹을 틔울 빛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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