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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Aug 04. 2022

묵은 감정일랑 내려놓고 우리의 축제를 즐기자구요.

딸 결혼식에 언니와 동생을 초대했다.

이른 아침시간. 

카톡 전화가 울렸다. 수원 사는 동생이다. 

"언니, 나 생각해봤는데 조카결혼식에 가지 않기로 했어요. 조카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들하고 십여 일 동안 미국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자신이 없네. 이해해주시고 조카한테도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살다 보면 언젠가 다시 만나고 축하해줄 날이 있겠지..."

막냇동생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잊은 채 그저 며칠 더 생각해보고 결정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 형제자매는 모두 여섯이었다.

오래전 큰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전 남동생이 하늘나라로 가버려 이젠 자매만 넷이 남았다.

두 언니와 여동생, 그리고 나.

막내 여동생은 나하고 8살 차이가 나니 둘째 언니 하고는 무려 13살 차이가 난다.

말 그대로 세대차이가 나는 자매간이다. 게다가 막내 여동생 초등학교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나를 포함한 언니들은 모두 막내를 자신들이 업어 키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런 막내 여동생의 자의식이 남다른데 있다는 것이다. 

왜 안 그렇겠나?, 나이 드신 부모와 터울진 형제자매들 속에서 동떨어진 느낌 가운데 자랐을 것이고 우리들이 어떻게 한들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할 수 있었겠는가. 믿을 존재는 나 자신 뿐이라고 생각했겠지. 

어쨌든 강한 자의식의 여동생은 사회 정치적 견해도 뚜렷해서 지난 광화문 촛불과 서초동 촛불에 늘 자신의 촛불 하나를 보태곤 했었다. 무려 수원에서 말이다.

반면 독실한 개신교인인 둘째 언니는 전형적인 보수성향을 갖고 있어서 언젠가부터 우리 사이에는 정치적 대화가 금기시되어있었다. 


이렇게 세대차이 나고 확연히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갖는 둘째 언니와 막내 여동생은 걸핏하면 부딪혔고 그럴 때마다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입은 채 한 걸음씩 서로에게서 더 멀어졌다.

삼 년 전, 나의 한국 여행 중 넷이서 함께 다녀온 베트남 여행에서도 여지없이 말다툼이 불거졌었다.

소소하게 주고받던 대화중에 생긴 막냇동생과 언니들의 갈등은 하롱베이로 가는 리무진 안에서 터져 나오고 말았었다. 너무나 안락한 풀옵션 의자 위에서의 그 불편함이라니..

낱낱이 설명하기 어려운 우리들 간의 해묵은 오해와 갈등은 '정치적 이견'이라는 작은 문을 통해 그 검은 정체를 꾸역꾸역 토해내고 말았었다.


어쩌면 두 사람 간 정반대의 사회적 정치적 견해는 표면적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 간 다툼 끝의 늘 한결같은 멘트를 보면 그렇다.


"재는 왜 저런다니?, 새까맣게 어린것이 안하무인도 유분수지, 정말 걱정된다."

"언니 하고는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도무지 상식적 대화가 안돼.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아."


언니의 눈에 동생은 여전히 어리고 당돌한 막내로 머물러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동생의 눈엔 언니가 깨어있지 않은 꼰대의 모습으로 각인이 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 초등학생 동생과 이미 직장인이 되어있던 성인 언니의 간극이 그대로 박제된 채로 말이다.




나는 미국에서 치러지는 딸아이의 결혼식을 그런 자매들의 'family reunion'의 기회로 삼고 싶었다.

함께 비행기를 타고 12시간 넘게 미국 여행을 하고, '이모들'이라는 역할로 결혼식에 참여하면서 그동안의 서먹함과 불편함을 극복할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다른 말할 것 없이 여섯 형제자매 중 남은 네 명의 자매들이 서로를 더 애틋하게 바라보고 다둑이길 바랬다. 딸 결혼식에의 초대야말로 껄끄러운 자매들이 화해할 수 있는 '멍석깔이'가 아니고 뭐겠는가.. 


이런 내 바람이 전달되었던 것일까? 

"막내야, 이렇게 나이 들다가 언니들 순서도 없이 하나둘 떠나간다. 우리가 언제 다시 이런 시간을 갖겠니.."라는 언니의 진심어린 말에 동생은 날 선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 함께 오기로 다시 마음을 바꿨다. 

참 다행이다.


내 딸의 결혼식은 나에겐, 우리 가족에겐 축제의 시간이다.

장성해서 일가를 이루려는 딸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해주는 시간이다.

더불어 그 시간을 내 자매들과 함께 축하하며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우리들을 자축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살아온 모습이 조금 다르면 어떠랴, 조금 과격하거나 조금 꼰대면 어떠랴. 

그날만은, 이번 여행에서만은 서로의 다름과 이견을 내려놓고 그저 내 딸의 이모들로 와주었으면 좋겠다. 

둘째 이모는 오지랖 넓은 둘째 이모답게, 막내 이모는 수다쟁이 막내 이모답게.


부디 이 축제의 긍정적 에너지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성장케 하는 시간들이 되게 이끌어주기를...

새로 탄생하는 가족을 바라보며 우리를 키워냈던 가족의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되새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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