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리치몬드에서의 휴가
"엄마, 어디가 가고 싶어요?"
"글쎄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
"아휴, 호텔 예약해야 하니까, 어디로 가고 싶은지 지금 정해야 해요."
내 생일을 몇 주 앞두고 딸과 주고받던 전화였다.
딸은 늘 일에 허덕이고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생일 선물로 함께 떠나는 2박 3일 휴식을 권했다.
내 생일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이번 생일엔 저와 함께 여행을 가자며 일찌감치 근무조정도 해놓았단다.
집에서 두세 시간 거리, 정말 휴식을 위한 호텔 숙박, 너무 심심하지 않은 약간의 스케줄, 이런 여행의 조건을 충족하는 곳, 우리는 버지니아 리치먼드로 가기로 했다.
리치먼드는 미국 남부군의 중심이었지만 어쨌든 미국 역사가 녹아있는 오래된 도시이고 딸아이가 일 년 동안 머물며 공부하던 곳, 그리고 딸아이의 친구가 살고 있는 도시였다.
바닷가로 가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것도 좋겠지만 2박 3일간 머물기엔 바닷가보다 도시가 나을듯싶었다.
펜실베이니아 집에서 두 시간을 달려 메릴랜드 우리 집에 도착한 딸은 아빠에게 모든 뒷일을 부탁하고는 나와 함께 차에 올랐다.
자, 지금부터 우리는 버지니아 리치먼드로 간다. 산 좋고 물 좋은 휴양지가 아닌 그저 낯선 도시로의 여행이다. 낯선 도시로의 여행은 익숙한 일상을 벗어난다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 충분한 휴식이되겠지.
딸은 네비의 안내대로 능숙하게 운전을 하고 있다.
" 야, 이 복잡한 곳에서 거침없이 운전을 하네, 이젠 엄마가 네 운전실력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아이참, 엄마는. 내가 여기서 삼 년을 살았잖아요."
아, 맞다. 가는 도중 스쳐지나가는 워싱턴 DC는 딸이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이었다.
내가 세월 흘러가는 것을 또 잊었다.
이렇게 어른이 된 딸이 나에게 선물한 우리의 이박삼일 휴가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생일 선물.
세시간여를 달려 저녁무렵 우리는 버지니아 리치먼드에 도착했다.
딸의 친구집에 잠시 들렀던 우리는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우리가 묵을 호텔로 향했다.
럭셔리한 호텔은 아니지만 이틀을 쉬어가기엔 부족함이 없는 쾌적한 곳이었다. 하지만 짐을 풀고 침대에 털썩 앉으며 생각하니 그냥 그대로 쉬기에는 뭔가가 부족했다.
"이대로 잘 순 없지?, 나가자 우리. 근처에 Wegmans( 큰 식료품점)이 있던데 가서 와인 한 병 사 오자."
그렇게 Wegmans에 간 우리는 와인뿐만 아니라, 맥주 한 묶음, 모둠 과일, 치즈와 크래커, 아몬드 초콜릿까지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렇게 벌어진 한밤의 파티.
와인이나 맥주는 집에서도 종종 즐기는 편이지만 안주를 제대로 한 상 차려놓고 먹는 와인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건강상 한잔으로 제한하던 룰도, 늦은 밤의 고칼로리 안주도 생일을 하루 앞둔 특별한 날에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게다가 취기에 쏟아놓는 내 넋두리를 들어줄 딸이 옆에 있는 데에야...
초저녁에 시작된 둘만의 파티는 12시가 넘어 두눈이 뻑뻑해질때까지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내가 받은 첫번째 생일 선물은 노련한 경청자 딸에게서 받는 '중년여성의 상담치료' 였네..
두 번째 생일 선물
다음날 아침.
어딘가에 전화를 하던 딸이 오래간만에 '할일없이 누리는 게으름'에 푹 빠져있는 나를 깨웠다.
네일샾에 예약을 했단다. 이를테면 내 생일 선물 중 하나, 네일을 하러 가자는 거다.
네일이라...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이라 여태껏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미루어왔던 것인데 이번 생일엔 영락없이 하게 생겼다. 나는 사실 낯선이에게 내 몸을 맡겨 서비스 받는 것이 많이 불편한 사람이다.
그래도 오늘은 내 생일, 한번 해보지 뭐, 이런걸 생일날 해보지 언제 또 해보겠나.
네일샾에 들어서자 서너 명의 직원들이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딸은 네일 받을 사람은 엄마라며 오늘이 엄마 생일이라고 살짝 귀띔을 했다. 인도계의 친절한 아가씨는 더 친절한 태도로 무슨 색을 원하는지 내게 색깔 샘플을 보여주고 내 손톱을 다듬기 시작했다.
손가락 관절염으로 휘기 시작한 마디마디 손가락에 핑크색 매니큐어가 괜찮을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손톱이 다듬어지고 하나씩 핑크색으로 칠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다.
이때 갑자기 뒤쪽에서 생일 축하 노래가 들려오는것이 아닌가?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놀라 뒤를 바라보니 젊은 매니저가 초가 꽂힌 컵케잌 하나를 종이 접시에 받쳐 들고 내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이런, 넋 놓고 앉아있다가 갑작스러운 생일 축하에 나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낯선 곳에서, 낯선 경험을 하고 있는 지금, 낯선 이들로부터의 생일 축하라니...
그동안 늘 받던 생일 축하와는 다른 생경하면서도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즉석에서 해주는 생일 축하,
그것은 어떤 누구의 태어남도 축하할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서비스를 파는 곳에서의 재치 있는 부가적 서비스라 할지라도 나는 충분히 감동했고 감사했다.
세 번째 생일 선물
2박 3일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다른 가족들의 위임을 받아 엄마와의 생일 휴가를 전담한 딸은 돌아가는 길에 가족 모두의 식사자리를 주선했다. 다음날 한국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동생에게 시간을 내게 하고 집에 있는 아빠도 참석하기로 했다.
사실 바쁜 일정 중의 동생은 한 번쯤 불참해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아빠는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면 보게 될 사람이니 굳이 한 시간 반이나 걸려 역으로 차를 몰고 올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 고른 핫팟 음식점에 모두 모여 나는 다시 한번 거하게 생일 축하를 받았다.
요즘 핫하다는 핫팟 음식점의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과 왁자지껄 나누던 이야기들.
시간 약속을 잡기 위해 가족들이 서너 번씩 전화통화를 하고 서로간 조정을 위해 약간의 긴장이 생기기도 했지만 결국은 좋은 일에 작은 불협화음쯤이야... 끝이 좋으면 모두 좋은게 아니던가...
이렇게 또 한 번의 생일이 지나갔다.
육십 넘어 생일이 뭔 대수냐 싶다가도 가족들의 넘치는 생일 축하를 받고 나면 내 감정 항아리는 찰랑찰랑 넘쳐나는 기분이다. 나이 들면서 점점 어린아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축하할 일은 축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축하할 일에 생일만한 것이 없다. 우리 모두는 태어났으므로 '내'가 있는 것이니까.
그렇게 해마다 '존재하는 나'를 축하할만하니까.
딸은 곧 있을 아빠의 생일을 위해 또다시 휴가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엔 아빠 취향대로 둘이 함께 캠핑을 갈 예정이란다.
둘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별빛 아래에서 부녀의 돈독한 정을 나누겠지.
나나 남편에게 준 딸의 생일 선물이 특별했던 것처럼 딸도 자신이 준비한 축하 선물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