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강 May 20. 2023

나는 이대로 괜찮지 않다.

독일 여행 포기후 직면한 내 패자 각본

지금 막 남편과 딸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왔다.

연초에 계획해 비행기 티켓은 물론이고 호텔, 심지어 오케스트라 연주회 티켓팅까지 다 되어있는 마당에 나만 여행을 포기하고 가족들만 떠난 것이다. 지금 이 기분을 뭐라 할 수 있을까?, 회오리가 지나간 뒤의 피곤한 공허?, 아니면 또다시 반복된 패자 각본의 씁쓸한 실패감?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나는 이 순간 내 영혼을 아프게 하는 그 감정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독일 여행 계획은 딸의 초대로 시작되었다.

베를린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기로 한 사위와 독일 여행을 계획한 딸은 작년과 같이 올해도 함께 여행을 하자며 우리를 초대했다. 때마침 싼 비행기 티켓을 찾아낸 아이들과 우리들은 큰 고민 없이 티켓팅을 했다. 그렇게 구체화되기 시작한 여행 스케줄에는 급기야 아들도 합류하기로해 온 가족이 참여하는 독일 여행이 될뻔했었다.


여행에서의 문제는 항상 우리 부부가 처한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24시간 모니터 하며 돌봐야 하는 노인 케어시설을 운영하는 우리 부부는 여행, 그것도 함께 가는 여행 앞에서는 늘 조심스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가 자리를 비웠을 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늘 만전을 기해도 불안한 마음을 안고 출발하기 일쑤였다. 아무리 스텝들이 24시간 자리를 지켜도 발생되는 일들은 있게 마련이어서 우리는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다가도 전화를 받고 다시 걷어 집으로 온 적도 있고, 펜실베이니아에서 911에 전화한 뒤 메릴랜드의 911팀으로 전화 연결을 요청하고 우리 집으로 앰뷸런스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기왕지사 벌어진 일. 

나는 직원들에게 두 달 전에 운을 뗀 뒤 바로 두 주 전에 우리의 여행 계획을 공식화했다.

앗,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작년에 우리의 빈자리를 지키며 밤근무와 강아지 돌봄까지 책임 줘주던 직원이 over night은 못하겠단다.

자신의 집이 아니라 샤워, 메이컵 등이 불편하고 너무 장시간 근무가 힘들단다. 작년에 기꺼이 해주었던 사람이라 올해도 당연히 해줄 것으로 생각한 나는 너무 당황했다. 지난봄에 한 달간 한국여행을 다녀오도록 배려한 보람도 없이 그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대신 옆집의 직원 중 한 분이 over night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되묻고 있었다. 

자, 이제 어쩐다???

여행에 차질이 생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미 모든 티켓팅은 거의 환불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게다가 이즈음 우리 시설의 어르신들 중 두세 분이 급격히 쇠약해지고 있었다. 그들의 달라진 컨디션은 세심히 모니터 하고 여차하면 병원으로 보내드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옆집의 다른 직원은 흔쾌히 자신이 over night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업무만으로도 과부하 상태였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나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구했다.

어떤 이는 "살까 말까 할 땐 사지 말고, 갈까 말까 할 땐 가라."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어느 쪽이 덜 마음 불편할지에 따라 결정하라고 했다. 결국 고민 끝에 나는 독일행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안 가면 모든 티켓팅 비용은 날아가고 일주일간의 여행으로 기분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리는 거였지만 내가 포기함으로써 남편은 아슬아슬한 집 상황을 나에게 온전히 맡기고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을 터였다.

곰곰 생각하니 가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포기함으로써 얻을 안정감과 마음 편안함이 조금 더 커 보였다.

그렇게 씩씩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결정을 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렇게 애써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가보다.

여행 출발 사흘 전에 내가 안 가기로 했음을 알리자 내 부탁을 거절했던 직원은 오히려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또 어쩔 수 없이 대신 over night을 해주겠다고 했던 직원도 짐을 던 듯 홀가분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포기해서 모두가 평화로우면 괜찮은 거겠지."싶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스멀스멀 화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주 노련하게 내 안의 감정을 잘 다둑이고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여행 바로 전날, over night을 거절했던 직원과 남편이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바로 딱 그 한 장면에 그만 나는 애써 눌러놨던 감정이 지표면을 쪼개고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아니, 나는 이렇게 화가 나는데 저 사람은 최소한의 미안함도 없나?, 아니, 저 사람은 불과 일주일의 불편을 참지 못해 거절해 놓고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남편은 어쩌면 저렇게도 내 감정을 모를 수가 있지? 내가 가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포기한 걸 모르다니..."

한번 터져 나온 내 안의 감정은 화남의 회오리 속에서 점점 증폭되어 나갔다.

감정을 감추는데 취약한 나는 끝내 저녁 밥상머리에서 남편에게 분통을 터뜨렸고 결국 화남과 씁쓸한 감정에 휩싸인 채 밤잠을 설쳐야 했다.




나는 또다시 삶의 '패자 각본'을 선택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나를 중심에 두고 하는 선택'이 아니라 '상황과 타인을 중심으로 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내 욕망을 외면하고 그럼으로써 결국 나도, 남들도 패자로 만드는 선택...

나의 패자 각본은 '양보'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처음엔 남들도 심지어 나 자신도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합리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 스스로를 속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거짓 없는 감정에 의해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알고 나 자신도, 타인도 패자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나의 가지 않기로 한 결정은 나도, 남편도, 가족 모두도 당황스럽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날 밤, 나는 또다시 패자 각본에 빠진 나 자신에 화가 나고 마음이 무너져서 쉬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젊은 날처럼 억울해하며 울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들지 않고 내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는 양보하지 않을 거야, 언제나 나를 가장 중심에 둘 거야!!"를 되뇌면서 말이다.


베를린에서 남편과 가족들은 남편의 어린 시절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파독 간호사로 6년간이나 떨어져 살던 시어머니를 파독 간호사 협회의 사진들 속에서, 어머니가 일하셨다는 병원에서, 어머니와 함께 일하셨다는 여사님과의 대화 속에서 발견하고 남편의 '어린이 자아'는 울컥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못 가는 바람에 남게 된 오케스트라 음악회 티켓으로 남편은 여사님과 나란히 앉아 어린 시절 못 이루었던 '어머니와의 시간'을 보내고 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잘못된 결정으로 남편 삶의 이런 순간에 함께 하지 못하게 된 것이 많이 아쉽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귀한 시간들을 놓친 게 마음 아프다. 

이렇게 나는 여전히 실수를 반복하고 여전히 괜찮지 않다. 

어제 그리고 오늘, 나는 평생에 걸친 반복된 실수로 휘청거리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중이다.

내일 아침이면 괜찮아지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딸과 함께 한 생일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