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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Dec 06. 2020

틀니로 씹는 음식, 그 삶의 아쉬움

먹는 즐거움과 기쁨은 사라지고...

아직 늙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나도 먹기가 조심스러운 것들이 있다. 

마른오징어같이 단단하게 말린 건어물과 엿같은 것들이다. 

이미 한번 수리했던 이빨들이 단단한 건어물과 엿같은 것에 다시 망가지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마른 오징어도 아니고 짬뽕의 해물을 씹다가 어금니에 붙어있던 작지않은 금조각도 먹어치운 경험이 있는 나다. 게다가 어금니 하나 흔들릴 때마다 기둥뿌리도 같이 흔들리지 않던가.

그럼에도 가끔씩은 그런것들이 먹고싶다.

말린 오징어를 연탄불에 구워 맥주 한잔이랑 먹는 맛. 가끔 생각나지만 생각으로만 그친다.

엿, 엿 중에서도 구멍 숭숭, 땅콩 범벅의 하얀 막대 엿을 한입 딱 깨물어 와그작 씹어 먹는 맛, 너무 먼 옛날 일이라 잊어버렸다. 앞으로도 잊어버려야할것같다.

이제 겨우 60이 된 나도 이럴진대 8-90대의 어르신들은 어떨까?

그들이 애써 외면해온 먹거리는 얼마나 많으며, 포기해버린 먹는 즐거움은 얼마나 클까?

먹는 즐거움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삶의 본능'의 핵심인데 말이다.




할머니는 눈만 멀뚱멀뚱, 도무지 숟가락을 들고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앞에 놓인 자신의 죽그릇과 시리얼 그릇을 쳐다보다가는 다시 옆 할머니의 접시를 들여다보기를 반복한다.

옆 할머니의 접시엔 익숙한 아침식사 음식들이 놓여있다.

데친 브로콜리와 컬리플라워, 그리고 당근과 토마토, 옆에는 1인치 두께로 잘라진 바나나와 사과, 그리고 오렌지 두 조각. 

오호, 어제는 과일 더미 위에 포도가 몇 알 있더니 오늘은 딸기가 두 알 얹어져 있네. 

그리고 앞쪽에 놓인 계란 프라이. 오늘 것은 센 불에 구웠는지 조금 단단해 보이네, 씹어먹기 힘들겠군.

그 옆에 놓인 작은 빵조각 하나, 그리고 시리얼. 


그런데 내 앞에 놓인 것은 그 모든 것을 갈아 만든 죽 한 그릇과 시리얼 한 그릇뿐이네.

왜, 내것은 다르지???

한 숟가락 떠서 먹어본다. 맛은 괜찮다. 달콤한 과일맛도 나고 고소한 우유맛도 난다. 

하지만 기분 나쁘다. 나도 저 할머니처럼 씹어먹고 싶다.


할머니는 아래위 모두 틀니이다.

틀니도 아주 잘 맞는 틀니여서 치솟질을 하기 위해 빼려 할 때마다 낑낑거려야 한다.

( 대부분은 잘 안맞아서 너무 헐겁거나 덜거덕거려서 글루로 붙이기까지 하는데도. )

그 덕에 어지간한 음식도 잘 먹는다.

아니, 잘 먹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분들의 틀니처럼 씹을 때 덜거덕 거리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단다.

그런데 문제는 대변이다. 자주 보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 이틀 만에 보는 변이 아주 무른 변이다.

그러다 보니 자주 실수를 하신다. 특히 씹기 힘든 음식을 먹은 날은 여지없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고심하다가 음식을 갈아드려 보기로 한 거다.

그라인더를 준비하고 할머니 앞에 음식 접시를 가져다 놓은 뒤에 큰소리로 설명을 드린다.

할머니 귀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케어 내용이 바뀌면 미리 이해시켜드려야 한다.


"할머니, 할머니 틀니 때문에 잘 못 씹으시잖아요, 그래서 먹고 나면 설사를 잘하시지요?"

"그런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래요. 그래서 설사하지 않게 음식을 갈아드리려고 해요, 괜찮겠지요?"

"....  알았어..."(못마땅한 듯 마지못해 대답한다.)


선뜻 내켜하지는 않지만 설명을 하고, 보는 앞에서 갈아드리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렇게 받아 든 죽 그릇이다. 같이 먹기 좋으라고 시리얼 그릇을 하나 더 만들어 놓아 드린다.

그런데도 자꾸 옆 할머니 접시를 쳐다본다. 보다 못한 내가 가서 몇 숟가락을 떠 먹여드린다.

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몇 번 받아먹는다.

그런 다음 다시 할머니 손에 숟가락을 들려주고 다른 일을 하다가 쳐다보니 다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있다.


짜증이 슬그머니 나려고 한다.

"아이참, 할머니 손으로 잡수셔야지요, 맨날 이렇게 혼자서 안 잡수시면 어떻게 해요?"

그러자 머뭇머뭇 할머니가 그러신다.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자기가 뭘 잘못해서 벌 받느라 죽을 주었다는 거다.

슬그머니 짜증이 나다가 "와하하"웃음이  터져버린다.


아무리 설명을 해 드려도, 아무리 앞에서 만드는 것을 보여 드려도, 할머니는 그냥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씹어먹고 싶은 거다. 

바나나의 쫀득한 질감도, 다른 맛이 섞이지 않은 새콤달콤 딸기맛도, 씹을수록 고소한 계란 프라이도, 

비록 틀니일망정 씹어먹고 싶은 거다. (먹고 난 뒤의 일은? 잘 모르겠다. 할머니 소관이 아니다.ㅎㅎ)


"그래요, 할머니 내일부터는 다시 원래대로 드릴게요. 까짓것 실수하시면 어때요. ㅎㅎㅎ"


언젠가 깍두기 김치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먹는 나를 보고 시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이 좋을 때 맛있게 씹어 많이 먹어라, 이 상하면 그 맛을 모르지.."


맛을 기억하는 뇌가 살아 왕성히 활동하는 한, 씹어먹는 맛을 포기하기엔 삶은 너무 맛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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