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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Nov 24. 2020

나쁜 치매가 불러온 머릿속 오작동

젊은 남자의 친절이 불러온 망상 이야기

할머니는 입소하면서부터 위태위태했었다.

이미 널싱홈에서도 욕지거리같은 문제행동으로 주목받고 있었고 널싱홈에 나름 적응한 할머니는 다른곳으로 옮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케이스 메니져는 널싱홈보다는 어시스티드 리빙이 그녀에게 더 적절한 시설이라고 판단했고 할머니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옮겨야 했다. 

마침 빈방이 생긴 우리 시설이 그녀의 새로운 집이 되었다.

할머니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노인 아파트에 살면서 매일 데이케어를 가던 예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된 거라 생각하며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할머니는 우리 시설에 들어온 첫날부터 뭔가 삐그덕거렸다. 

하지만 두어 주에서 길게는 한 달 정도의 적응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어르신들이 잘 적응해왔던 것에 비추어 우리는 할머니도 그럴 것이라 낙관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큰 오산이었다.





단출하게 꾸린 옷 보따리 몇 개를 들고 입소한 할머니는 자신의 짐을 스스로 풀어 서랍장에 넣었다. 

그 정도의 일은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 우리는 내심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 

할머니가 데이케어에는 언제 가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널싱홈에서 나오자마자 그다음 날부터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던가보다.

우리는 할머니에게 다시 신청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한 달 남짓의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하기 위해 그다음 날 바로 데이케어 신청을 하고, 소셜 오피스에도 다녀오기로 했다.


소셜 오피스에 가는 날.

보통의 중년 남자보다는 훨씬 상냥한 편인 남편이 할머니를 모시고 외출을 하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막 집을 나서는 참인데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아줌마는 안 가요?"

"????????, 음~ 예, 두 분이서 다녀오시면 돼요. 저는 집에서 할 일이 있어서 못 가겠네요."

그렇게 할머니를 모시고 남편은 집을 나섰다. 

그리고 꼭 본인이 가서 해야 하는 주소변경 등의 일처리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날 밤이었다.

새벽 세시쯤인데 위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올라가 보니 옆방 할머니가 거실에 나와 나를 부르고 계셨다.

왜 그러시느냐고 물으니 새로 들어온 할머니가 밤새 잠을 안 자고 짐을 싸고 있다는 거다.

할머니에게 무엇인지 문제가 생겼구나 직감한 나는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옆방 할머니 말대로 짐을 다 챙겨서 방 한구석에 모아놓고 침대에 오뚝하니 앉아있다.

"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나 나갈 거야, 집으로 갈 거야"

"할머니 여기가 할머니가 지내실 새로운 집이에요."

"뭐라고? 누가 뭐래도 나는 여기서 안 살아."

"왜요?, 할머니 여기서 사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이곳으로 이사 오신 거잖아요. 우선 지금은 새벽 세시이니까 조금 주무시고 아침 되면 다시 이야기해보도록해요."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막무가내로 나간다는 할머니와 진정시키려는 나.

대개의 경우는 우선 진정하게 하고 시간을 가진다음 한걸음 한걸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설득되기도 하고 감정이 가라앉기도 하는데 할머니는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흥분되어갔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러 이른 아침이 되었다.

우리는 가족에게 연락을 하고 출근 전인 할머니의 아들이 달려왔다. 

자신이 이야기하면 십 분 안에 해결될 거라 호언장담하면서.

하지만 아들은 십 분도 채 되기 전에 두 손 두발 다 들고 퇴장해버렸다. 


점점 흥분한 할머니는 이젠 어느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집구석에서는 한시도 살 수가 없어, 내가 아무러면 젊은 놈하고 그랬을까 봐 의심하고 지랄이야!!!"

엥,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할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라고 의아해하는 나에게 할머니는 삿대질까지 하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나? 내가 문제였던 거야? 공격의 대상이 나였던 거야? 나 때문에 나가신다는 거야? 왜~???

만류하는 내 손을 뿌리치고 할머니는 자신의 옷 보따리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할머니는 뭔지 모르지만 심각한 망상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가려고만 하는 할머니를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911을 불렀다.


하지만 문제행동으로 911을 부르면 구급차가 오는 게 아니라 경찰차가 온다.

두 명의 젊은 백인 경찰관은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악다구니를 쓰는 할머니에게 조용히 하라고 엄포를 놓은 뒤, 자신들이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가족을 불러 가족과 함께 병원으로 데려가 입원을 하게 하는 게 좋겠다는 충고를 하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할머니는 불려 온 가족과 함께 다시 병원 응급실로 갔다.

하지만 할머니의 망상 증상은 우리에게만 드러내던 것이라 의사의 "별 이상이 없다"는 소견으로 퇴원해야 했다.

우리 집에 있고 싶지 않아서 망상까지 생기는 분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다.

당장 퇴원을 시키겠다는 병원과 실랑이를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갈 곳을 알아보기도 하다가 겨우 수소문해서 데이케어와 어시스티드 리빙을 한 건물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설로 재입소하도록 주선할수있었다.




며칠에 걸친 한바탕 소동으로 우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처음 겪는 일이라 어처구니가 없는 가운데에도 묘하게 퍼즐이 맞추어지는 시츄에이션이랄까.


우선 할머니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으로보인다.

할머니는 널싱홈에서 옮기고 나면 그다음 날부터 다시 자신이 다니던 데이케어에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 데이케어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나와 남편에 대해 불만이 생긴 것 같았다.


또 한 가지는 할머니에게 특이한 컴플렉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널싱홈에서도 흑인 남자 케어기버들과의 사이에 특히 트러블이 많았다는 할머니는 '남자'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90살이 넘은 할머니가 젊어서부터 청상과부로 살았다니 있을법한 컴플렉스다.

그런 할머니가 유난히 친절한 젊은(?) 남자와 둘이서만 차를 타고 소셜 오피스에 가고, 젊은 남자가 부축을 해주고 도와주는 경험을 하면서  할머니 마음속의 무엇인가가 작동된 것이 아닐까?

젊은 남자의 친절이 좋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런 감정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무의식적 작용 같은것 말이다. 


매일 데이케어를 가고 싶은 열망과 친절한 남성에 대한 컴플렉스, 그 컴플렉스와 연관된 방어기제들.

그것들의 뒤섞임 가운데, 할머니의 머릿속에선  이런 혼자말이 흘러가지 않았을까?


 "저 젊은 남자가 나한테 지나치게 친절하게 구는구나. 기분은 괜찮지만 저 남자의 마누라가 싫어하지 않을까?"

 "저 여자가 나를 좋아하지않는게 틀림없어.  제 남편에게 내가 수작이라도 부릴까 봐 나를 의심하고 있어." 

 "아니, 저 X이 나를 쫓아내려고 내 짐을 몽땅 싸놨네. 이런 나쁜 X"

 ( 그 짐들은 하루 전날 한밤중에 스스로 싸놓은 것이었다. ) 

이렇게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할머니의 언행이 설명이 되지않았다.




치매로인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활동이 어려워진 할머니는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자신의 욕구와 방어기제를 재료 삼아 망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전형적인 '나쁜 치매'를 앓는 경우였다.

그녀의 딸은 " 예전 엄마 같지가 않아요, 무슨 엄마가 그런 쌍욕을 저렇게 해댄대요."라고 하소연했었다.


불과 며칠 정도의 해프닝이었지만 나는 인간 뇌의 오작동이 어떻게 문제 행동으로 드러나는지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 나 역시도 말할 필요 없이 힘들었다.

'나쁜 치매'는 당사자를 포함한 주변인 모두에게 고통을 준다.


그런 '나쁜 치매'는 본인의 의지와는 관련이 없어보인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말년의 모습이고, 비록 치매에 걸리더라도 부디 '나쁜 치매'만은 아니기를 우리 모두는 바랄뿐이다.


하지만 어쩌면 조금 예방할 수는 있지 않을까? 

만일 '나'를 잘 성장시키며 '자아 통합'을 이루면서 노년을 향해 살아간다면?.


만약 할머니가 청상과부의 삶을 잘 극복하고 타인들, 특히 이성들과 친절한 관계를 주고받는 능력을 갖고 있었더라면, 

만약 할머니가 아무리 원하는대로  하고 싶어도 세상일이 순서가 있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융통성을 갖고 있었더라면 상황은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나는 '나쁜 치매'를 앓는 노인분들을 볼 때마다 옷깃을 여미며 '오늘'도 잘살아야겠다고 늘 마음을 다잡는다.

할머니가 새로 찾아간 시설에서는 부디 '착한 치매'로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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