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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an 18. 2021

새해 첫새벽부터 시작된 시련

새해 첫날부터 이어진 불운?, 아니, 그저 우연일 뿐.

새해 첫날 새벽.

둔탁한 '쿵'하는 소리에 이어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린다.

또 누군가 화장실을 가러 일어나다 엉덩방아를 찧은 것 같다. 하지만 쨍그랑 소리는 낯설다.

지난밤 카운트다운을 하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던 나는 투덜거리며 일어나 얼른 옷을 걸친다.

이층 할아버지들 방에서 난 소리이다.

서둘러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벽면에 걸려있던 커다란 거울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크고 작은 유리 파편들이 방바닥에 널려있다.

두 분 할아버지들은 얌전히 침대에 누워있다. 아마도 쿵 소리는 옆방의 누군가가 신 새벽에 일어나다 균형을 잃고 벽에 부딪혀 난 소리이고 그 충격으로 반대편 벽면의 거울이 떨어진 것 같다.

우선 다친 사람은 없으니 안심하고 흩어져있는 거울 조각들을 치운다.


새해 첫날의 시작치고는 께름칙하다.

좋은 꿈으로 시작해도 부족한 마당에 거울이 깨지다니...

찜찜한 마음을 털어버리려고 "우리 새해 벽두부터 액땜했네."라고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새해 첫 3일을 주말로 시작한 나는 휴일이 끝난 월요일부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일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월요일.

그날은 드디어 새로 마련했던 옆집의 Rental License Inspection을 받는 날이었다.

그 집이 시설로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는지 점검하는 과정으로 그동안 설치했던 스프링클러나 화재경보장치, 핸드레일, 창문위치와 크기 등등을 체크하는 것.

카우니에서 나온 할아버지 인스펙터는 꼼꼼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장장 13개의 지적사항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다시 재점검을 받으라고 이르고는 가버렸다.

이를테면 점검에서 보기 좋게 fail 한 거다. 

새해 첫 업무를 제대로 망쳤다. 물론 몇 가지 지적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다시 신청해서 점검받아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우리집 시설관리인인 남편을 너무 믿었던것인가??


하지만 그 일은 맛보기 정도. 더 어마무시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일과가 끝나고 모두들 잠자리에 든 시간. 느긋하게 넷플릭스 드라마 한 편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위층에서 쿵하는 예사롭지 않은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얼른 이층으로 뛰어올라간다.


화장실 안이다. 화장실 안의 샤워룸 바닥에 S할아버지가 가로질러 누워있다. 

치매와 균형감 상실로 걸음걸이가 제대로 되지않은 분이 혼자서 화장실에 다녀오다 넘어진거다. 

할아버지의 눈은 초점 없이 위로 홉뜨고 있고 입가엔 거품이 물려있다.

순간 심장이 방망이질을 하고 머릿속은 하얘진다. "falling"이다. 

말 그대로 가장 두려운 낙상사고가 난 것이다.

나와 남편은 할아버지를 조심스럽게 끌어 다시 방바닥으로 옮겨 눕혀놓고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남편은 911에 전화를 하고 나는 응급구조요원들에게 줄 할아버지의 서류를 복사하기 시작한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복사를 하는 손가락은 과호흡으로 인해 저려오기 시작한다.

문득, " 아, 이러면 안 된다. 정신을 차려야지." 하고는 하던 일을 멈추고 심호흡을 크게 두 번 한다.

남편은 911과 아직도 전화를 하고 있다. 911에서는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전화를 끊지 않고 할아버지의 상태와 정보를 계속적으로 요구한다.

드디어 소방차가 도착했다. 다행히 밤이라 왱왱거리지 않아 줘서 그 와중에도 무척 고맙다.

요즈음은 도착 후 코비드용 보호장비를 하고 들어오느라 시간이 좀 지체된다.

5분 여가 지나자 두 사람이 들어와 간단한 체크를 한 뒤 할아버지를 들것에 싣고 나간다.

할아버지는 다행히 5분 정도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의식이 돌아와 있다. 하지만 머리를 화장실 벽에 부딪힌 게 분명한 낙상사고이므로 무조건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 

아무리 코로나 상황이 무서워도 뇌출혈은 더 무섭다.


새해 첫 월요일을 아무 정신없이 보냈다.

새해 시작부터 좋은 일만 있을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건 좀 너무한다 싶다.

하지만 나에게 불운은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전날의 힘듦을 뒤로하고 화요일인 그다음 날 다시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하자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또 할아버지 한분이 이상하다.

평소보다 기력이 없고 식사를 못한다.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다는 소리다.

늘 하던 대로 바이탈 체크를 한다. 당 체크도 평소와 같고, 혈압도 특이사항 없고, 체온도 수치상으로는 정상이다. 하지만 손으로 짚어본 이마에서는 약간의 미열이 감지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소포화도가 비정상이다.

마침 방광에 직접 꽂혀있는 suprapubic catheter를 교체하기 위해 홈헬스 컴퍼니에서 간호사가 방문한다.

그녀 역시 다시 바이탈을 체크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청진기로부터 들려오는 폐소리도 나쁘지 않단다.

그러면 뭐지???

심란한 마음에 자꾸 산소포화도를 재본다. 

예전 같으면 비정상적인 컨디션만으로도 주저 없이 응급실행을 결정했겠지만 지금은 코비드 상황. 병원 응급실의 절반이 코비드 환자라는 흉흉한 소문이 있다. 게다가 어제 한분이 벌써 병원에 계시지 않나. 물론 두 분이 연일 응급실행을 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지만 내 마음은 조금 더 멈칫거린다.

하지만 삼십분이 지나서 다시 재봐도, 누워있던 분을 의자에 앉혀서 다시 재봐도 산소포화도는 정상이 아니다.

하는 수없이 어제에 이어 다시 911에 전화를 건다. 이날 저녁엔 소방차가 두대나 들이닥친다.


가장 케어가 많이 필요하던 두 분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보냈다.

화요일 오전에는 낙상 할아버지건으로 병원과 통화를 하고 수요일 오전에는 초기 폐렴으로 진단받은 할아버지건으로 병원과 통화를 한다. 코비드로 병원 방문이 안되니 전화로 의사소통해야 하고 두 분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잘 모르는 상황에서의 판단과 결정은 많이 어렵게 느껴지고 불안감이 증폭된다.

이틀째 이어진 응급상황에 체력은 방전이 되기 시작하고 스트레스는 끓어 넘쳐 불쑥불쑥 행동으로 드러난다.


가까스로 추스르며 하루하루 애써 힘을 내던 금요일.

아침 케어를 시작하던 선생님이 다급하게 내려와 위층 할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알려준다.

파킨슨 할아버지이다.

새벽녘에 화장실을 다녀온 뒤 다시 침대에 누우려다가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나보다.

오른팔을 베드 레일과 매트리스 사이에 끼운 채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할아버지는 파킨슨 증세로 몸이 굳으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마도 낀 팔을 빼지 못한 채 옴짝달싹을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서둘러 일으켜 세우고 오른팔을 살펴본다. 레일에 닿았던 부분이 부어있고 팔을 전혀 움직이질 못한다. 우선 할아버지를 안정시킨 뒤 가족에게 전화를 건다.

내가 상황을 설명하고 응급실에 보낼 것인지 가족의 의견을 구한다. 그 할아버지에 관해서는 가족이 우리보다 잘 안다. 십여 년을 겪었던 일들이라 할머니는 크게 놀라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며칠 두고 본 뒤에 판단하자고 한다. 그러다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어나기도 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할아버지는 팔에 힘이 없을 뿐 아프지는 않다고 하니 응급실로 직행하는 것은 잠시 유보하기로 한다.

하지만 놀란탓인지 할아버지는 기운을 못 차리신다. 병원에 계신 두 분을 케어하는 것보다도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밀착 케어를 시작한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왜 새해 첫날부터 이런 일들이 기다렸다는듯이 들이닥치는것일까?

이 일들의 전조로 새해 첫새벽에 둥그런 거울이 깨진 것일까? 

"아, 그렇지. 그 거울이 깨진 방의 두 할아버지들에게  모두 사고가 생겼구나." 

어느 순간 내 머릿속은 온갖 미신과 삿된 생각들로 가득 찬다.

그러다가 코로나를 핑계로 일 년이 넘게 참석하지 않은 미사도 걸리고 일 년의 첫날을 평소처럼 주말이라고 뭉개며 게으름 피웠던 것도 께름칙하게 마음에 걸린다. 

공연히 하늘을 원망했다가, 내 복없음을 탓하기도 했다가, 하느님께 날 좀 도와달라고 징징거리기도한다.


그러다 불현듯 '이 모든 것은 그저 우연'이라는 목소리가 60갑자를 산 내 묵은 가슴속에서 바람처럼 들려온다.

방안의 집기들을 가만히 놔두지않고 옮기고 손대는 통에 느슨해진 못으로 거울이 떨어져 깨진 것일 뿐이고,

치매가 심해져서 생각도 걸음걸이도 휘청거리던 할아버지가 본능대로, 습관대로 화장실을 가다 벌어진 일이고,

날씨가 차가워지는 겨울이면 파킨슨 증상이 심해지는 탓에 끼인 팔을 빼지 못해 생긴 일이고,

그동안 떨어진 신장기능으로 겨우 버티던 할아버지가 더 이상 폐렴을 이기지 못해 생긴 일이라는 사실,

그런 것들이 우연히 한꺼번에 일어났을 뿐이라는 사실.

어쩌면 지난 한 해 맥시멈까지 버티다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을 뿐이라는 사실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매일 아침 묵상과 기도를 하면서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아이들이 "늘 담대하게"헤쳐나가기를 기도했었는데 문득 지금 나 스스로는 담대하게 대처하고있는가 질문하게 된다.

이런 일들에 압도되어 불운을 탓하고 미신을 끌어당기고 어린아이처럼 도와달라고 신에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차마 아니라고 말 못 하겠다. 그러면서 아직도 이 모습인게 스스로에게 조금 민망하다.

그러면서 다시 나를 바로 세우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나 자신뿐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부끄럽지 않도록.



지난 며칠 동안 할아버지들로 인해 마음 쓰느라 소진된 나에게 '그저 마음 놓으라'고 말해주려한다.

그분들이 우리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또는 더 힘든 환자가 되어 돌아오더라도 하루하루 내 할바를 찾아서 하면 될 것이라고 다둑이려한다.

시련은 나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것이므로 너무 그것에 함몰되어 평정을 잃지말라고 다둑이려한다.

신도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은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무엇보다도 세분 할아버지가 삶의 마지막 위업을 잘 마무리할수있도록, 그리고 그들의 남은 삶에 신의 따뜻한 은총이 있기를 바라면서....


*** 새해 첫날부터 벌어진 일들을 겪으며 스스로를 추스리는 마음으로 썼던 글입니다.

글을 써 놓고도 현재 진행중인 일들에 마음을 뺏겨 발행을 못했습니다. 

여전히 "이게 무슨일인걸까?"하는 당황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며칠동안 낙상으로 입원했던 한분은 호스피스를 받으면서 다른곳으로 보내드렸고 다른 한분은 산소통을 달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파킨슨 할아버지는 엑스레이 결과 부러진것은 아니라고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점점 심해지는 증상으로 두분은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있고 또다른 할머니 한분이 마지막을 향해 걸어가고계십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숨가쁘게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 애써 '담대하게' 살아보려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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