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혼자 떠난 2박 3일 여행, 침묵 속에 평화로운 순간을 누리길
방금 전 남편이 캠퍼밴을 몰고 혼자 가는 로드 트립을 떠났다.
아마도 버지니아 쪽의 Blue Ridge 파크웨이를 따라 2박 3일간의 로드 트립을 할 예정인가 보다.
대충 꾸려 나선 길, 작정한 대로 2박 3일간 충분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고 환한 얼굴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사실 우리는 이번주에 플로리다에 다녀올 계획이었다.
저렴한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그곳의 지인들과 만날 계획을 세우고 간 김에 어디를 둘러보고 올지를 고민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대신 있어줄 스텝들과 일정을 협의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었다.
그렇게 비행기 티켓팅을 하려는 찰나, 근처에 있는 시설 원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스테이트 인스펙션이 나왔단다.
깐깐한 두 사람이 나와서 무려 6시간 30분 동안 낱낱이 살펴보고 여러 가지 지적사항을 적어갔단다.
에라잇, 젠장,,, 이번에도 또 여행은 틀렸다.
작년에도 연초에 점검이 나왔었는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인스펙션을 앞에 두고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는 수없이 플로리다행은 인스펙션 뒤로 미루기로 했다.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우리 부부가 함께 여행을 나서는 일은, 다시 말해 함께 자리를 비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작년에 우리를 대신해 줄 매니저를 한 명 채용했음에도 아직까지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집을 나서기는 마음 불편하다. 이제 겨우 몇 개월 차인 그에게 혼자서 스테이트의 까다로운 인스펙터들을 감당하라고 하긴 어려운 일이다.
이런 경우 쉽게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생각하는 나에 비해 남편은 쉽게 포기가 안되는가 보다.
며칠째 자신의 캠퍼밴을 이리저리 매만지더니 혼자만이라도 어디론가 다녀와도 되겠냐고 묻는다.
왜 안 되겠나, 나는 부디 혼자 잘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의 캠퍼밴'이라고 하니 뭐 거창한 RV나 BMW에서 나온 캠핑용 밴이라고 오해하진 마시라.
남편의 캠핑카는 이민 와서 맨 처음 샀던 미니밴을 혼자서 뚜닥뚜닥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캠핑카이다.
중고시장에서 3000불밖에 쳐주지 않는다는 낡은 밴이어서 원 없이 톱질하고 못 박아서 어설프게 만든 캠핑카이다. 그래도 있을 것을 다 있다. 의자를 빼낸 공간에는 폈다 접을 수 있는 침상을 만들고, 안에서 설거지와 세수도 할 수 있게 작은 개수대도 만들고, 무엇보다 이동식 변기와( 한밤중 차밖으로 나와 으스스한 화장실로 안 가도 된다는 기쁨이란!!.) 냉장고도 있다. 물론 냉장고를 가동할 배러리도 갖추고 있다.
남편은 단조로운 일상에 무기력해지거나 머리 복잡한 일이 있으면 드라이브 웨이에 놓여있는 자신의 캠핑카로 간다. 이를테면 그의 캠핑카 만들기 프로젝은 "언젠가는 세상 이곳저곳을 순례하리라."는 삶의 동기를 벼르고 단조로운 일상에 숨통을 틔워주는 일이다.
그 결과 오늘처럼 플로리다 대신 블루 릿지일지언정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늘 훌쩍 집을 나섰다.
첫날의 밤은 Blue Ridge Parkway의 어느 Visitors Center 주차장에 차를 세웠단다. 그가 보내준 사진에 보니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휑한 곳이다. 인터넷조차 잘 잡히지 않아서 카톡정도만 가능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그는 혼자 밥을 챙겨 먹고 씻고 잠자리에 들것이다. 인터넷이 잘 안되니 세상과도 잠시 단절이다.
무서울 정도로 인적이 없는 그곳에서 그는 어떤 시간을 보낼까?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할까?, 어쩌면 정말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얼마 전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그것으로 5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던 그는 과거와 현재를 재통합하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완전히 생업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먹고사는 문제'에서 조금 비껴나 조금씩 '순례' 또는 '수행'의 길로 가고자 하는 그의 노력에 같이 사는 도반으로서 응원을 보낸다.
침묵과 고요 속에서 참된 자신의 우주를 마주하길....
지금 이 시간, 역시 홀로 자판을 두드리는 나도, 캠핑카속의 그도, 우리는 가끔씩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