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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an 25. 2024

베를린은 그의 잃어버린 어린 시절

베를린에서 그는 어린 자신과 젊은 어머니를 만났다.

작은 역사 안이었다.

밤새 걸어 지친 우리는 작은 기차역사 안 나무의자 위에 앉아있었다.

새벽의 찬 기운을 서로의 체온으로 녹이며 우리는 말없이 앉아있는 중이었다.

이제 곧 여명이 밝아오면 그는 광주 훈련소로 떠나기 위해 용산역으로 떠날 참이었다.

그때 그가 주머니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내 손바닥 위에 쥐어주고는 가만히 내 손을 감싸주었다.

펼쳐본 손바닥 위엔 작은 펜던트가 있는 목걸이가 놓여있었다.

황소 모양의 펜던트였다.

4월생인 그의 별자리가 매달려있는 목걸이, 그것은 멀리 베를린에서 중학생이 된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가 보내준 것이라 했다.

그때부터 지니고 있던 목걸이를 내게 쥐어준 그는 훈련소로 떠났고 얼마뒤 네 장이나 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는 사실 내게 보낸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어머니에게 써 보낸 것을 그대로 복사를 해서 내게도 보내준 것이었다.

그가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평생 함께하고 싶은 여자를 만났노라'라고 전하는 그 편지엔 어머니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이 담겨있었다.



어머니에게 그는 특별한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시부모님 결혼 후 군대에 가버린 남편의 부재를 지탱케해 준 존재였고 불안정한 결혼생활을 붙잡아주었던 의미 그 자체였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아들과 가족 모두를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너무도 먼 나라, 독일의 베를린으로.


나의 시어머니는 파독 간호사였다.

그녀 나이 삼십 중반에 남편과 어린 자녀들을 두고 나선 독일살이였다.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은 시부모님의 인생이니 덮어두더라도 어린 자녀들의 삶에는 깊은 자국을 남겼다.

그는 어머니와 유난히 친밀했던 만큼 어머니의 부재를 힘겨워했다. 막 시작된 사춘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독일로 가도록 상황을 만든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어머니가 없는 가족보다 또래들과의 보이스카웃 활동에 몰입하며 외로움을 견뎠다. 

나와 연애 할때부터 술을 먹으면 드러나는 그의 지독한 고독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그만의 멍에였다.


몇 년 전 시부모님이 요양원에 들어가실 때 남편은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모든 사진들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정리하며 디지털 자료로 만들었다. 적지 않은 사진들을 스캔하고 자료화하는 동안 그는 내가 알 수 없는 과거의 시간으로 다녀오고는 했다.


"이곳이 내가 태어난 곳 이래.., 여기서 여러 번 전학을 다녔어..., 이 사진은 입학식날 어머니에게 보내려고 아버지와 찍은 거야..., 음,, 어머니의 독일 사진은 따로 정리해야겠다.."


남편은 그렇게 정리된 사진 자료를 부모님께도 보내고 동생들에게도 보냈다. 아마도 부모님은 당신들 전화기로 불러낼 수 있는 젊을적 사진들을 보면서 지나온 인생을 반추해보고는 했을 것이다.


작년은 파독 간호사, 광부 50주년이던 해였다.

남편은 북클럽 멤버들과의 대화 중에 파독 간호사였던 어머니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는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선의에 의해 다시금 현재의 이야기가 되어갔다. 어머니가 근무했던 병원이 찾아지고 함께 근무했던 동료가 찾아졌다. 이미 많이 진행된 치매로 자신의 과거와 무덤덤하게 마주하는 어머니와 달리 남편은 자신의 잃어버린 어린 시절과 마주해야 했다. 남편은 용기를 내어 '베를린의 그 시간'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나만큼이나 아빠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아빠가 묻어버린 과거와 마주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함께 해주었다.


7박 8일 동안의 베를린 여행에서 그는 젊은 시절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어린 자신을 만났다. 살면서 머리로는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어머니의 부재가 베를린에서는 눈물과 슬픔 속에서 또다시 재현되었다. 어머니가 일하시던 병원 건물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다니던 길을 걸으며 어린 그는 그리웠던 젊은 어머니를 만났다. 그동안 의연한 척 억압되었던 슬픔과 외로움이 사진 속 어머니가 서있던 그 자리에 서면서 쏟아져 나왔다. "아, 여기구나, 그리운 어머니가 서 계셨던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그에게 있어 베를린여행은 어린 시절에 겪은 어머니 부재라는 상실과 슬픔을 극복하는 자기 성장의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어린 자신'과 마주하며 '어린 자신'을 보듬었다.

그 과거로의 여행에는 딸과 아들, 어머니의 옛 친구와 지인들이 함께 해주었고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잃어버렸던 어릴적 삶의 시간들을 메꾸어 나갔다.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자기 삶의 중요한 순간을 유튜브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사진들을 고르고 들려줄 내용을 녹음하고, 배경음악을 고르고, 몇 번의 수정을 거친 후 그는 어제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그 영상을 가까운 친척들과 지인들에게 보냈다. 

그가 겸연쩍음을 무릅쓰고 공개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착한 치매에 걸려 지워져 가는 어머니의 기억과 흔적을, 어머니의 삶을 기리고 싶었던 거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울던 자신의 inner child를 위로함은 그의 효심에 하늘이 준 선물이었던 거다. 


옆에서 남편의 그런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아프고도 뭉클하다.

반백의 머리카락과 주름 속에 숨겨진 어린 그가 가엽고 눈물 흘리는 그와 함께 내 눈시울도 붉어진다. 

또한 그리움으로 채색되었던 베를린을 찾아가고 지나온 삶을 마주하며 성장하는 그가 자랑스럽다. 

무엇보다 많이 가벼워질 그의 고독과 내면의 평화가 기대된다.


아래는 남편이 정성드려 만든 유투브 영상이다.


https://youtu.be/-bi7adFIj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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