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 지어진 집들은 누구를 위한곳이었을까?
마지막 일정의 처음 계획은 모뉴먼트 밸리였다.
포레스트 검프가 제니가 선물한 운동화를 신고 무념무상 뛰었던 그곳.
지난번 여행에서도 들렀던 곳이지만 그때는 포레스트와 반대방향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그 명장면을 놓쳤던 곳. 이번엔 포레스트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밸리 안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두세 곳의 뷰포인트에서 내려 포레스트처럼 폼도 잡아보고 뛰기도 하면서 도착한 모뉴먼트 밸리는 코비드 여파로 현재 클로즈 상태였다.
다른 곳들과 달리 나바호족의 거류지로 나바호족의 관리하에 있는 그들의 성지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국립공원들은 오픈을 했는데도 아직 클로즈 상태인 것이다.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입구에서부터 차로 이동하며 바라보는 밸리 안의 기암괴석들은 그곳이 나바호족의 성지라는 것을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이번에는 준비해 간 캠핑 의자에 앉아 오래 머물며 신령스러운 그곳의 기운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수포로 돌아갔다.
( 포레스트 검프가 바라보며 달렸던 길 )
자, 그러면 온전히 비워진 하루를 어떻게 한다?
우리는 세 시간에 걸친 드라이빙으로 Mesa Verde라는 곳으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Mesa란 테이블형 대지를 말한다. 융기한 땅의 주변이 침식으로 가라앉고 남겨진 평평한 고지대의 평지.
Verde는 초록색이라는 뜻이다. 초록색이란 그곳에 나무와 많은 식물들이 있었다는 소리고 그곳의 프에블로 인디언들은 옥수수 농사와 사냥을 하면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현재는 흔적만 남은 인디언 유적지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 곳을 무려 세 시간이나 달려가서 빈 돌집만 보고 온다고??
하지만 특별한 대안이 없으니 찾아가야 했고 도착한 그곳엔 이번 여행의 테마, 고소공포증이 웃으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ㅠㅠㅠ)
메사는 입구에서 20마일 가까이 차로 이동하게 되어있는데 정상으로 올라가는 차들이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몇 개의 산을 휘감으며 닦아놓은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반드시 한편은 아찔한 절벽이다.
운전을 하고 있는 남편도 약간 긴장한듯하다가 어느 순간 두려움을 뛰어넘는 호기심에 "와우"를 외치며 절벽 밑을 바라본다. 그때는 내가 "악"소리를 지르며 운전에 집중하라고 소리치는 순간이다.
( 사진 찍을 여유가 없어서 검색해 얻은 사진. 실제는 훨씬 가파르다.)
그저 편안한 관광일 것으로 넋 놓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절벽길 드라이빙으로 아랫배가 꼬여온다.
나는 아픈 아랫배를 달래 가며 메사 버드의 유적들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메사 버드의 압권은 역시 벼랑의 움푹 들어간 알코브 ( Alcove )에 만들어진 벼랑 거주지인 Cliff Dwelling이다. 벼랑의 움푹 파진 곳에는 예외 없이 집들이 지어져있다. 붉은 모래 벽돌을 이용한 작은 집들이다.
발코니 하우스, 롱하우스, 스퀘어 타워 하우스, 클리프 팰리스 등
어떤 곳에는 130개의 방이 있고 60에서 90명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100여 년이 지나 몇 년간의 가뭄을 거친 후 그들은 벼랑 거주지를 포기하고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문자나 그림으로 그들이 왜 떠났는지를 남기지 않아 후대의 학자들은 경제적, 정치적, 또는 알수없는 이유로 떠났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뉴멕시코나 애리조나로 이주한 그들의 후예들은 "그저 그들은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떠났을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 Cliff Dwelling중 한곳 )
하지만 나는 벼랑 거주지(Cliff Dwelling)라는 용어 자체에 강한 의구심이 든다.
아무리 높은 메사에 오르는 것을 일상으로 하는 부족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가족을 이루고 그곳에서 자손을 이어가는 부족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절벽에 집을 짓고 살 필요가 있었을까?
메사에는 벼랑 거주지 말고도 많은 주거시설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처음에는 사방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둥그렇게 땅을 파 지붕을 얹은 Pithouse를 짓고 살다가 그 형태가 점점 발전하게 된다. 필요에 의해 더 깊이 첫 번째 집을 파고 뒤에 다시 그 위쪽으로 집 한 칸을 덧이어 만드는 형태도 있고, 그냥 땅을 파는 것이 아니라 돌이나 벽돌을 이용해 움집의 벽을 두르는 형태 등 점점 발전했었음을 보여준다.
( 돌과 벽돌을 이용해 만든 PitHouse. 환기구가 눈여겨보여졌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바로 둥근형태의 집 구조이다. 이것은 인디언들의 삶에서 둥글게 둘러앉아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평등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삶의 방식이 가장 중요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들은 1200년대까지 Pithouse에서 살다가 그 이후에 Cliff Dwelling을 지었다.
단 100여 년 동안.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절벽에 집을 짓고 또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을까?
반원 형태의 절벽을 따라 여러 개의 알코브에 지어진 벽돌집들을 반대편의 뷰포인트에서 바라보며 걷는다.
그러다 나는 Sun Temple에 다다른다.
말 그대로 종교적 역할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이는 구조물이다.
벽돌로 쌓은 둥근 건물엔 안으로 미로 같은 좁은 복도가 있을 뿐이다. 알 수가 없다. 표지판에는 그곳에서 태평양 연안이나 다른 지역에서 온듯한 조개껍질이나 터키석, 구리 등이 나왔다고 한다. 그들이 먼 곳의 사람들과 교역을 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썬 템플을 한 바퀴 돌면서 템플의 위쪽에서 까치발을 하고 구조물 안과 전방을 쳐다보다가 "아하"하고 직관의 소리를 듣는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서있는 썬 템플에서는 절벽과 절벽 안의 몇몇 Cliff Dwelling 이 잘보인다는것.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으며 템플의 한가운데에 선 그 누군가는 벼랑 거주민들을 내려다볼 수 있었을까?
아니면 썬 템플에서 절벽으로 찾아드는 신적 존재들을 가장 먼저 맞이했었을까?
썬 템플은 위치만으로도 존재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듯했다.
( Sun Temple 의 모습, 카메라 앵글의 위치에서 보면 절벽이 잘 보인다.)
다시 한번 나는 오금이 저리고, 남편은 스릴을 느끼며, 메사 버드를 내려오면서 우리 둘은 난상토론을 벌인다.
"왜 그랬을까?"
"도저히 불가능해. 힘 있는 남자들은 가능하다고 보자, 어린이와 노인들은? 거기에 어떻게 접근하지?"
"밧줄과 사다리를 이용했다고 하지만 그곳이 주 생활공간이 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아."
"아니, 나는 무슨 음모가 있지 않을까 싶어. 1888년 카우보이 한 사람이 발견했고 유물들이 스웨덴과 유럽으로 흘러들어 가자 미국 정부가 190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잖아. 그때 무슨 시도를 한 것이 아닐까? 메사 버드의 Pithouse 같은 유적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서 벼랑 거주지를 그때 만든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유적지 조작 같은."
"에이, 설마, 나는 그것보단 벼랑 거주지의 용도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
"벼랑 거주지가 생활공간이 아니고 식량보관용이거나 종교적 의미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어떤 종교적 의미?"
이때부터 나는 맘껏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어느 날, 부족의 지도자가 별들의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다. 그것이 일식이거나 월식이거나 아니면 몇백 년에 한 번 나타난다는 별들의 접근일 수도 있다.
아니면 북남미 아메리카에 자주 출몰하는 UFO였을까?
지도자는 그런 하늘의 이상 기운을 통해 신들의 존재를 감지하고 그 신들께 기원과 숭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는 Sun Temple을 짓는다. 해발 2600미터나 되는 메사에서 하늘과 접신하기에는 썬 템플이 필수적이다. 썬 템플에서 그믐밤마다 별들을 바라보던 지도자에게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렇게 신들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신들을 위한 집을 짓자. 신들은 인간들과 다르니, 또는 같은 공간에서 살 수가 없으니 그들만을 위한 공간에 집을 짓자. 그러면 그들은 그곳에 찾아와 지내며 우리들을 돌보아줄 것이다. 신들이 그곳에 깃드는지는 썬 템플에서 매일, 일 년 열두 달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벼랑 거주지 아닐까?
나의 상상일뿐이지만 그럴듯하다.
벼랑 거주지에 대한 사실적인 역사 배경 설명을 찾을 수 없었던 우리는 상상력을 동원한 추론을 이어가며 이해불가와 의혹을 가라앉힌다. ( 보통은 입구에 visitor center가 있지만 그곳엔 visitor & research center라고 적혀있었다. 아직도 연구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소리다.)
그렇지. 어떻게 우리가 과거의 일들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고고학적 또는 문화인류학적 설명도 객관적 사실 자료가 없으면 추론에 불과한 것이지 않나.
마치 모든 생명체는 우주 먼지로부터 기원한다는 설명처럼 그곳이 만들어진 이유도 무한대로 수렴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곳은 그들이 신봉하는 신적 존재들이 머물 수 있도록 준비되었던 일종의 성소 같은 곳이었다고.
( 입구에서 받은 메사 버드 안내서. 이 안내서에는 Cliff Dwelling에서 생활을 했다고 설명하고있다.)
이렇게 짧은 여행이 끝났다.
4박 5일 중 이틀은 온전히 동부에서 서부로, 서부에서 동부로 오가는데 쓰였다.
그리고 삼일 동안 놀라운 지구의 멋진 모습과 어느 고대인들 삶의 생멸을 들여다보았다.
짧은 시간동안 나는 여행의 모든 요소를 다 경험했다.
기대와 두려움, 즐거움과 어려움, 불편함과 편안함, 낯섬과 익숙함.
무엇보다도 여행중 나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경험했다. 이것으로 족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다시 일상의 모드로 나를 재조정한다.
마치 여행지로 가면서 일상의 모드에서 나를 여행 모드로 조정했던 것처럼.